정종여 <지리산 조운도> 종이에 먹, 126.5x380cm, 1948년, 개인 소장
청계 정종여(鄭鍾汝, 1914~1984)는 월북화가 중 그 수가 몇 되지 않는 동양화가이다.
북한에서 그는 민족적 주체 미술양식이라고 내세워졌던 조선화의 정립에 기여하여 평양미술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는 등 높은 지위에 있었다.
국내에서는 유족의 노력으로 치러진 1989년의 회고전 《청계 정종여전》 이후, 1990년 해금작가 유화전, 1998년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근대미술: 수묵.채색화-근대를 보는 눈》 전 등에 이어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렸던 《근대 미술가의 재발견 1 : 절필시대》전에서도 일반에게 소개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정종여는 경남 거창 출생으로 지리산, 해인사 등 남쪽의 산야를 그린 풍경화-산수화들을 남겼다. 이 작품 <지리산 조운도>는 화면 우측 하단의 낙관 ‘지리산조운도 무자초추 청계(智異山朝雲圖 戊子初秋 靑谿)’를 통해 무자년 1948년 초가을, 즉 해방 후 한국전쟁 이전 시기에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높은 능선 위에서 내려다 본 운무가 가득 덮인 지리산의 정경을 담아낸 이 작품은 드문 드문 드러난 봉우리 외에는 안개구름의 바다가 만드는 광활한 경치만을 화폭에 담은 과감한 산수화이다. 8첩 병풍의 대작으로 그는 이미 1942년에 <금강산전망>을 이미 10폭 연폭의 병풍으로 제작했던 적이 있다.
<지리산 조운도>에서 그는 기존 수묵 산수화에서 즐겨 사용하는 준법을 활용하기보다는 발묵을 많이 사용한다거나 서양화의 기법 받아들여 웅장하고 사실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정종여가 사사했다고 알려진 이상범의 산수를 떠올리며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