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문(李寅文, 1745-1821) <십우도十友圖> 종이에 수묵담채, 127.3x56.3cm 국립중앙박물관
그림 안에 중 유일하게 조선의 복식을 하고 있는 사람이 서직수(1735-1796)라는 인물이다. 그가 49세 되던 1783년에 자신의 호인 십우헌十友軒의 십우를 소재로 화가 이인문에게 아회도를 부탁했다. 서직수가 좋아하던 역사인물들을 결합하여 가상의 아회를 그린 것이다.
서직수는 밀양부사를 지낸 서명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고위관직에 오르지 못했지만 꾸준히 관료생활을 유지하며 말년에는 인천부사와 정삼품의 돈녕도정에 이르렀다. 조선시대의 호적등본이라 할 수 있는 서직수의 준호구(準戶口) 두 장을 통해 재산규모를 파악해 보면 1771년 당시 8명이었던 솔거노비가 1789년에는 32명으로 증가하여 상당히 부유했음을 알 수 있다. 18세기 후반 당대 최고의 화가로 이름을 날리던 김홍도와 이명기가 함께 서직수의 초상화를 남기기도 해서 이 인물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진다.
십우도라고 하는데 사람은 몇 명 안 보이고 인물들 주위에는 두루마리 그림, 도자기, 기이한 형태의 필통에 꽂힌 붓, 서적, 칼 등이 있다. 서직수의 십우는 실재하는 사람 친구가 아니라 문인이 평생의 벗으로 여길만한 과거의 위대한 인물이나 사물들이다. 화가는 십우의 일부는 의인화시키고 일부는 기물로 그렸다. 중앙에 주인답게 앉은 서직수 자신이며 인물로 묘사된 친구들은 승려모습이 철형대사⑴, 그 옆에 왕표⑵, 류안⑶, 두보⑷, 수경도인⑸ 순으로 앉아있고, 주변에 놓인 사물들 중 두루마리 그림이 심주⑹, 화려한 붓은 동기창⑺ 필법, 도자 병은 술⑻을 나타내며, 옆에 놓인 책 청대의 원예서『비전화경秘傳花鏡』는 원예취미⑼라는 친구를 의미하며, 옆에 놓인 검⑽이 사심을 없앤다는 의미의 친구이다. 사실 서직수는 일본도 수집 취미도 있어 십우로 선택한 대상은 실제로 그가 수집과 감상을 즐긴 대상임을 알 수 있다.
서직수가 직접 글과 글씨를 쓴 제발을 보면 자신이 평생의 벗으로 여긴 열 가지가 무엇인지 설명해 놓았다. 구양수가 만년에 ‘육일거사六一居士’라고 스스로 불렀던 연유가 된 여섯 가지에 문방사우 네 가지를 더해 열 개가 된 것으로, 차례대로 철형대사(澈瀅大師-유람취미를 의미), 수경도(水鏡道-세상과 인물을 꿰뚫어보는 예지), 동기창(필법), 검(사심을 없앤다는 의미), 두보(초당시), 심주의 그림, 왕표의 음악, 술, 원예취미, 회남왕 류안이 편찬한 『회남자淮南子』이다.
생각해 보면 서직수의 거창한 요구에 맞게 화폭에 이들을 펼쳐낸 이인문의 솜씨가 드러나는 그림이다.
서직수의 제발에는 자신이 스무 살을 전후해 황해도 구월산과 대동강의 기생집에서 음악과 여색에 빠져 지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또 그가 돈녕도정을 지낼 때 정조가 관리들을 불러 당부하며 서직수에 대해서는 "대저 성격이 거칠고 철저하지 못하다."라고 지적한 일도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근면 성실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요즘 플렉스(Flex)라 부르면서 사치성 소비를 오히려 자랑하거나 동경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18세기말의 고동서화 유행이 그 시대의 플렉스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