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바람이 선선한 데다 추석도 성큼 다가와서 올 여름이 고맙게도 빨리 마무리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가을 계곡에는 여름의 시끌벅적함과 생기 대신 물기를 잃어가는 나뭇잎의 바람 소리와 조용히 흐르는 물소리가 채우게 됩니다.
변관식(卞寬植 1899~1976) <계정추림谿亭秋林> 1923년 비단에 수묵담채, 137.4x49.9cm, 국립중앙박물관 동원 이홍근기증품
소정 변관식의 가을 계곡 수풀 속 정자 같은 곳이라면 조용하고도 충만한 정취로 가득해서 쓸쓸함도 느끼지 못할 것 같습니다.
소정이 25세 청년 시절에 그린 산수로 유학을 다녀오기 전이어서 50년대 이후의 대표작과 달리 안중식의 산수처럼 세밀한 필선을 보입니다. 바위, 원경의 침엽수림, 물들기 시작한 각종 활엽수들을 비롯, 계곡의 풍경을 빽빽하다 싶을 정도로 채워 넣었습니다. 먹의 번짐과 다양한 농도의 먹을 이용해 구성의 단순함을 누그러뜨렸는데, 나무 사이로 보여야 할 계곡물 부분을 흰 여백으로 남겨 물안개인지 선경의 표현인지 모를 궁금함을 자아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