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필 <금강산도>, 종이에 수묵, 21.8x58.8cm, 고려대학교박물관
한낮 더운 날씨에 밖을 다니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휴대용 선풍기를 손에 들고 있습니다. 집 안에서도 에어컨과 선풍기에 자리를 내어준 부채가 이제 밖에서도 잘 눈에 띄지 않게 됐네요. 선풍기보다 친환경적이고 팔운동에도 도움이 되는 데다 햇빛 가리개 역할도 해 줄 수 있는 부채가 유행을 좀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원한 산과 계곡 그림이 담겨진 금강산 부채 그림을 골라 보았습니다.
금강산을 문학과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이래 18세기만큼 그 양와 질이 폭발적 발전을 한 예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선의 진경산수 중에서도 금강산을 그린 『해악전신첩』이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은 금강산의 아름다움에 대한 당시의 인식도 한 몫을 했을 것입니다.
그림 상단 가운데에서 살짝 왼쪽으로 ‘연객(煙客)’이라는 관서가 있는 것으로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헤비 스모커 연객 허필(許佖, 1709-1768) 임을 알 수 있습니다. 허필은 당시 삼절로 칭송될 만큼 시도 잘 짓고 글씨도 잘 쓰고 그림까지 잘 그린 사람이니 금강산의 정취를 남기지 않았을 리가 없지요. 그는 실제로 금강산을 주제로도 평생 꽤 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선면에 금강산의 모습을 넓게 담은 이 그림은, 금강산의 주요 지형을 배치하여 표현하고 그 사이에 작은 건물들도 이름과 함께 그려 넣었습니다. 마치 금강산 안내도처럼 비로봉, 만폭동, 정양사 등의 명칭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 금강산 부채그림은 정선이나 김홍도 등 다른 이들의 금강산 그림처럼 웅장하고 화려하거나 필묵의 힘을 느끼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부의 아름다움을 묘사하여 꽉 채운 나름대로 독특한 금강산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부채그림 속에 작게 그려진 비로봉의 모습을 정선이 남긴 비로봉도와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1~2cm 크기로 작게 묘사된 봉우리에도 특징을 살리고자 한 흔적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여름 이 부채로 바람을 일으키면 금강산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느껴질 것만 같습니다. 혹시 박물관이나 관광상품용 굿즈로 부채를 만든다면 이 그림도 추천 리스트에 포함시키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