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근현대미술 작품과 고미술 중에 미술품을 처음 소장하고자 하는 개인 소장자가 구매할 만한 것들을 추렸을 터.
물론 2억이 넘어가는 인기 작가의 작품들도 간혹 있었지만, 고미술 작품들 중에는 그래도 중산층도 구매할 만하다 싶은 가성비가 있는 경우가 꽤 눈에 띄었습니다.
그 중 묵포도도 한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안정되고 완숙한 필치로 포도를 그린 이 사람은 소치 허련의 후계자인 넷째아들이자 남농 허건의 아버지인 미산米山 허형許瀅(1862-1938)입니다.
아버지 허련과 유산 정학연(酉山 丁學淵)에게 그림을 배웠고, 호남 화단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의재 허백련과 아들 남농 허건에게 그림을 가르쳤습니다.
허형 <묵포도도> 종이에 먹 79.4x92 cm
아침부터 출산율에 대한 기사를 보고 집을 나와서 그랬던 것도 같습니다. 다산을 의미하는 포도 그림이야말로 저출산 시대에 정책적으로 적극 권장해야 할만한 것 아니겠습니까?
큰 화면에 가득하도록 힘있게 휘어진 가지와 진하고 생생한 포도열매의 표현이 어쩐지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미래를 암시하는 듯 활달함을 공간에 뿌릴 것만 같습니다. 줄기가 곡선을 이루며 율동적으로 묘사되고, 선염 효과보다는 독특한 형태로 포도송이를 그려 진한 먹색이 강조되어 색다른 입체감을 줍니다.
포도 그림은 중국 송나라에서 시작되어 사군자 같은 문인화 소재로 부각되었지만, 중국보다도 조선에서 훨씬 자주 그려지고 훌륭한 작품도 많이 있습니다.
영곡(影谷) 황집중(黃執中, 1533-1593) <묵포도도>《화원별집》16세기, 비단에 먹, 27x22.1cm 국립중앙박물관
휴휴당(休休堂) 이계호(李繼祜1574∼1645) <포도도> 17세기, 비단에 먹, 각 폭 121.5x36.4cm 국립중앙박물관
다시 돌아와 경매에 올라왔던 포도 그림을 봅니다. 허형은 생애 내내 그림으로 생계를 이어갔으나 삶은 어려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그림도 아마 주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61세인 1923년에야 제2회 조선미술전람회에 허준(許準)이라는 이름으로 「하경산수(夏景山水)」를 출품하여 입선하고, 1928년에 개인전을 열게 됩니다.
아버지의 화법을 이어받아 호남 지방의 전통회화를 근, 현대로 이어주는 역할을 하였지만 사실상 아버지의 화격에는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아들 허건, 허림, 방계 친척인 허백련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호남화단이 유지되도록 한 것이 그의 역할로 평가됩니다. 그래서인지, 이 그림은 추정가에 훨씬 못 미치는 가격인 백만원에 낙찰되었다고 합니다.
실망감으로 그림을 다시보니 구성과 배치에서 다소 강약이 부족하고 화면을 꽉 채워 다소 답답한 감이 있습니다. 파격적인 구성이라기보다는 당시에 전통화단에 유행하던 몇몇 구도 중 화면을 가득 채우는 방식을 답습한 듯하고, 잎의 형태나 포도송이의 모양에서 다양성이 떨어지는 것도 같습니다. 그래도 백만원의 가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걸작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의 근대를 이어간 주요 한국화가의 작품, 소품도 아니고 80cm, 90cm에 이르는 큼직한 그림이 그 가격에 거래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다른 화가들의 경우도 몇몇을 제외하면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습니다. 현대미술의 가격이 기록을 갱신하는 이때, 고미술이 아직 본격적인 투자(투기)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는 것에 스스로 위로하는 것이 좋을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