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두서 <석공공석도>, 비단에 수묵, 23×15.8cm
2층의 낯부끄러운 춘화들의 인상이 워낙 강한 탓에 1층에 놓여 있던 작은 풍속화들은 잊고 지내고 있었는데, 더운 여름 뙤약볕에 공사 중인 분들을 보다가 문득 이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몇 발짝 걷고도 덥다고 투덜대는 우리들과는 달리, 묵묵히 도로 위에서 뜨거운 아스팔트를 다루거나 맨홀을 오르내리며 도시 위의 화려함을 위해 땅 밑을 고쳐나가는 사람들. 노동, 노동자에 대한 생각이 과거와 지금 어떻게 달라진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조선시대에 이들을 화폭에 옮겨 담는 것이 획기적인 일이었음은 쉽게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림이라고 하면 관념을 산수로 표현하거나 중국의 시나 고사를 옮기는 것이 대부분이었던 때에, 눈에 보이는 삶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도 같습니다.
윤두서가 남긴 풍속화 중에는 노동을 하는 평민, 나물 캐는 여인들이나 짚을 삼는 노인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민중에 대해 애정 어린 시선이 있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양반 아닌 평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린 것이라기보다는 ‘일하는’ 사람들에 주목한 것으로 보입니다.
윤두서 <짚신 삼는 노인> 모시에 수묵 32.4×21.1cm 해남 윤씨 고화첩
윤두서는 ‘전가서사(田家書事)라는 시에서
모기는 일어나고 파리는 잠드니 날이 더울까 두렵고
시퍼런 보리는 아직 익지 않아 밥을 끓일 수도 없다
이웃집 개는 짖고 외상 술빚은 급한데
고을 관리는 세금 독촉하러 깊은 밤 대문을 두드린다.
蚊起蠅眠畏日德
靑黃麥飯不成饋
隣家犬吠忙賑酒
縣吏催租夜到門
(「田家書事」, 『棠岳遺事』)
(「田家書事」, 『棠岳遺事』)
라고 읊어, 현실비판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윤두서의 그림들이 김홍도의 풍속도보다 거의 한 세기 가량 앞선 그림이라 생각해 보면, 다소 기존의 산수인물화와 유사한, 생동감 없는 모습이지만 획기적인 주제의식이라고 할 만합니다.
윤두서의 그림들이 김홍도의 풍속도보다 거의 한 세기 가량 앞선 그림이라 생각해 보면, 다소 기존의 산수인물화와 유사한, 생동감 없는 모습이지만 획기적인 주제의식이라고 할 만합니다.
이 <석공공석도>는 영,정조 시절 어의를 지냈던 수집가 석농 김광국의 화첩 『석농화원』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석농은 네덜란드 화가의 그림도 수집했을 정도로 방대한 컬렉션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림에 예의를 갖춰 글을 써 넣거나 인장을 찍기도 했죠. 이 그림에도 김광국은 옆에 다음과 같은 글을 덧붙여 놓았습니다.
오른쪽 <석공공석도>는 공재가 그린 것으로 세상에서 말하는 소위 속화이다.
자못 형사를 얻었으나 관아재(조영석)에 비한다면 오히려 한 수 아래라 하겠다.
右石工攻石圖 乃恭齋戱墨 而俗所謂俗畵也 頗得形似 視諸觀我齋猶遜一籌
윤두서 아들의 기록에 따르면 ‘인물이나 동식물을 그릴 때는 종일토록 대상을 주목해서 그 진형을 터득한 후에야 붓을 들었’다고 하는데, 이 덕에 당시로서는 획기적으로 대상의 현실적 묘사가 가능했던 듯합니다. 형사를 얻은 것이 조선 후기에 와서도 찬양받지 못하였던 것이 개인적으로는 조금 안타까워지네요.
그렇지만 당시에도 그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담졸 강희언(姜熙彦, 1710∼1784)의 돌 깨는 그림이 소장되어 있는데, 이 그림은 김광국의 또다른 화첩 『화원별집(畵苑別集)』 중에 포함되어 「담졸학공재석공공석도(澹拙學恭齋石工攻石圖)」라는 제목이 달려 있었다고 하니 강희언이 공재 윤두서의 그림을 본떠 이 그림을 그린 것이라 여겨집니다.
강희언 <석공공석도> 견본수묵 22.8x15.5cm. 국립중앙박물관
이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서양 그림이 한 점이 자연스럽게 연상됩니다.
쿠르베 <돌 깨는 사람들The Stonebreakers> 1849 캔버스에 유화 190x300cm 게맬데 갤러리(파괴됨)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1819-1877)의 <돌 깨는 사람들>은 윤두서의 <석공들>보다는 훨씬 큰 그림입니다. 당시에는 이미 노동하는 사람들을 그리는 것이 흔한 일이었지만, 역사화의 스케일로 평범한 사람들을 그려 1850년의 살롱전에 출품함으로써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었지요.
돌을 깨는 사람이라는 제재. 두 남자 인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 한 사람은 노인이고 한 사람은 젊은이라는 점이 이 두 그림의 가장 큰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시대도 공간도 다르지만, 윤두서도 쿠르베도 이 세상을 돌아가게 만드는 가난한 노동자들에 대해 나름의 경의를 표하고자 했던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