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암꽃게가 맛있는 게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게 그림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게는 딱딱한 껍데기로 온 몸이 덮인 갑각류로 특이한 옆걸음 때문에 속담이나 전승설화에 등장하곤 하지요.
게는 한자로 해(蟹)인데 이 발음 때문에 장원급제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지역 향시(鄕試)에서 합격한 사람만 중앙으로 올라가 전시(殿試)에 응시할 수 있었는데 이 일차 선발을 “발해(發解)”라고 했습니다. 해(解)와 해(蟹)가 발음이 같아서 발해에 뽑히길 기원하는 의미로 게를 그렸다고 볼 수 있다네요.
또 게의 딱딱한 등껍데기를 뜻하는 갑(甲)은 예전 시험에서 1등을 ‘갑’이라고 불렀으므로 그와 같은 의미를 가지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게 그림은 “1등 하자”라는 기원.
또 갑옷처럼 외피가 단단하니 천둥 번개 같은 즉 외부로부터의 압력에 굴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찾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 게와 갈대가 만난 그림은 장원급제의 의미가 더욱 또렷해지기도 합니다.
김홍도 <해탐노화 蟹貪蘆花> 종이에 수묵담채 23.1×27.5cm 간송미술관
최북 <손끝으로 그린 게 指頭蟹圖> 종이에 수묵 26.0x36.7cm 선문대박물관
예전 과거시험을 보면 황제/임금이 납시어 장원으로 급제한 사람을 불러서 귀한 음식을 나눠주는 행사가 있었는데 이를 ‘전려(傳臚)’라고 했습니다(臚는 급제자에게 나누어 주던 고기 음식을 뜻한다고). 두 마리의 게는 이갑(二甲), 즉 대과와 소과로 이루어진 과거시험에서 각각 TOP을 하라는 것이며, ‘전로(傳蘆 갈대를 옮기다)’라고 쓰면 ‘전려’와 중국어 발음이 같아지므로, 게가 갈대를 옮겨주는 그림은 이갑전려(二甲傳臚), 즉 “소과와 대과 모두 일등해서 과거급제하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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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二甲 |
전려傳臚/전로傳蘆 |
그림 |
두 마리의 게 |
갈대를 옮기다 |
의미 |
소과와 대과 두 가지(二) 모두에서 일등(甲)해서 |
과거급제해라(傳臚를 받아라) |
김홍도의 그림에서는 화제를 통해 과거 급제한 후 마땅히 그래야 하는 선비의 기개를 덧붙여 놓아 그 의미가 더해집니다. 쓰여 있는 글은 당대의 시인 피일휴(皮日休)의 시 “영해(咏蟹)”의 네 번째 구, 해룡왕처야횡행(海龍王處也橫行)입니다. 시의 전문을 통해 그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咏蟹 (영해) 게를 노래함
未遊滄海早知名 (미유창해조지명) 푸른 바다 건너지 않아도 이름을 알고 있네
有骨還從肉上生 (유골환종육상생) 도리어 살 밖의 살을 따라 뼈가 생겨나니
莫道無心畏雷電 (막도무심외뢰전) 생각 없이 우레와 번개를 두려워 하지 않고
海龍王處也橫行 (해룡왕처야횡행) 바다용왕 있는 곳에서도 옆으로 걸어간다오*
최근 갑(甲)과 을(乙) 때문에 온통 시끌시끌합니다. 어떤 조직이든 좀더 유리한 고지에 있는 사람과 그에게 잘 보여야만 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당연한데, 가진 자가 여유를 보여주기는커녕 약간의 권리를 악용하여 횡포를 부려대는 갑들이 우리가 사는 곳을 후지게 만들곤 합니다. 갑이 되고자 하는 것에는 뭐라 하고 싶진 않습니다. 적어도 염치가 있는 갑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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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전시도록 68권 93번 그림인데 이에 대한 도록의 해설에서는 “바다용왕의 처소라서 옆으로 기어가네”라고 되어 있습니다. 바다용왕을 존중해서 그렇게 간다고 여기기에는 시의 의미가 잘 맞지 않는 듯한데, 참고삼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