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메뉴타이틀
  • 파리가 사랑한 동양미술관
  • 최열의 그림읽기
  • 영화 속 미술관
  • 조은정의 세계미술관 산책
  • 미술사 속 숨은 이야기
  • 경성미술지도-1930년대
  • 김영복의 서예이야기: 조선의 글씨
  • 한국미술 명작스크랩
  • 도전! C여사의 한국미술 책읽기
  • 왕릉을 찾아서
  • 시의도-시와 그림
  • 근대의 고미술품 수장가
타이틀
  • 어부와 나무꾼의 대화 - <어초문답도>
  • 9352      
이명욱(李明郁) <어초문답도(漁樵問答圖)> 17세기


이명욱(李明郁) <어초문답도(漁樵問答圖)> 17세기 지본담채 173x94.6cm 간송미술관  

 

어부와 나무꾼(漁樵).
‘어부’와 ‘나무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동화, 우화, 설화에 자주 등장하는 인기 캐릭터이지요.
옛 어르신들의 고귀하신 말씀에도 이 두 인물이 등장합니다.

어부와 나무꾼이 묻고 대답하는 그림인 어초문답도는
오른쪽 인물이 어부로, 한 손에 물고기를 다른 한 손에는 낚싯대를 들고 있으며,
허리춤에 도끼를 차고 있는 왼쪽 인물이 초부입니다.

 

중국의 문학작품 속에서 어부와 초부는 종종 복잡한 세상을 피해 유유자적하며 숨어 사는 은자의 표상으로 등장하는데,
그림의 주제가 되는 원전인 화인(畵因)으로
송대 소옹(邵雍)의 저서 『어초문답』, 고금곡(古琴曲) 중의 『어초문답』, 원곡(元曲) 중의 『어초기』 등이 언급됩니다.

 

그 이전으로 올라가면 도연명의 『도화원기』를 시로 읊은 당나라 왕유(王維, 701-761)의 『도원행桃源行』에도 ‘어초’가 등장합니다.
도화원기에서는 어부가 도원을 다녀오지만(스마트K 회화이야기 “도원도” 참조)
도원행에서는 초부가 도원을 방문하고, 그곳 도원에서 사람들의 생활 모습 속에 어부와 초부가 함께 등장합니다.
    “해질녘에 어부와 초부가 물길타고 들어온다” (薄暮漁樵乘水入)
세상의 복잡한 일을 떠난 평화로운 모습을 상징하는 정도였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밖에도 많은 옛글에서 어부와 초부를 볼 수 있지만 몇 가지만 더 보도록 하겠습니다.

소식(蘇軾 1036~1101)의 『전적벽부前赤壁賦』(두 번 쓴 적벽부 중 먼저 쓴 것)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등장합니다.

 

況吾與子,魚樵於江渚之上     하물며 나와 그대는 강가에서 어부와 초부 노릇을 하며
侶魚蝦而友麋鹿                  물고기나 새우를 짝하고 사슴들과 벗함이라
駕一葉之扁舟                     일엽편주에 몸을 담아
舉匏尊以相屬                     바가지 술잔을 서로 권하며
寄蜉蝣於天地                     하루살이같이 천지간에 기탁하고 있으니,
渺滄海之一粟                     바로 그 아주 작음이 푸른 바다의 한 톨 좁쌀이라,
哀吾生之須臾                     실로 우리 삶이 잠깐임을 슬퍼하고,
羡長江之無窮                     장강의 무궁함을 부러워하도다.

 

이 송나라 때부터 어부와 초부가 속세를 피해 고상한 대화를 하는 은자의 대명사로 떠오른 듯합니다.

소강절(邵康節 1011~1077)도 소동파와 비슷한 시기의 사람으로 이분이 지은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에
드디어 어부와 초부가 세상의 이치에 대한 철학적 대화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어초문대魚樵問對」)

 

漁者垂釣于伊水之上。樵者過之,弛擔息肩,坐于磐石之上,而問於漁者
어부가 물위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나무꾼이 그 옆을 지나가다 짊어진 짐을 벗어놓고 너럭바위 위에 앉아 쉬면서 어부에게 물어 가로되
...
乃析薪烹魚而食之飫,而論《易》
땔감을 쪼개어 물고기를 구워먹으면서 易에 대해서 의논하였다.
漁者與樵者遊于伊水之上。漁者歎曰
어부와 초부는 같이 伊水가에서 노닐었는데, 어부가 탄식하여 말하기를
...
漁者謂樵者曰 “子知觀天地萬物之道乎?”
樵者曰 “未也。願聞其方。”
漁者曰 “夫所以謂之觀物者...
어부가 초부에게 말하기를 너는 천지만물을 보는 道를 아느냐.
초자가 말하기를 아직 모른다하고 그 방도를 듣기 원하자
어부가 말하기를 무릇 소위 말하는 관물이라는 것은.
...


길게 세상을 보는 이치에 대하여 대화를 이어나갑니다.

그림에서 등장하는 어부와 초부는 세상을 다스리는 이치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것으로,
이들은 단순한 어부와 초부가 아니고 숨은 현자(賢者)입니다(속된 말로 일반인 코스프레?).
이분들이 묻고 대답하는 것은 오늘의 수확량이나 내일의 날씨 이야기가 아닌 것이지요.

 

홍득구가 그렸다고 알려진 그림도 비슷한 모양새입니다.


홍득구 <어초문답도>  지본채색 37x29cm 간송미술관


송나라 이후에는 이러한 구도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의 어초문답도가 그려졌다고 합니다.

이명욱의 어초문답에 등장하는 인물은 중국 옷차림을 하고 있고 중국의 어초문답도들과 비슷한 구도인데 반해,
겸재 정선의 그림에는 지게도 등장하고 조선 선비들 사이에서도 유행한 적 있던 학창의를 입고 있으며
구도도 이명욱의 어초문답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정선 <어초문답도> 33x23.5cm 간송미술관

 

나무꾼은 산수 자연을 좋아하는 지자(智者), 어부는 강호 자연 속에서 세월을 낚는 인자(仁者)의 상징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공자님 말씀을 따라 생각해 보면 물을 좋아하는 어부가 지자, 산을 좋아하는 초부가 인자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智者樂水 仁者樂山).



이인상 <어초문답도> 지본담채 26.5x60.5cm 국립중앙박물관

 


=============
익지(益之) 이명욱(李明郁)
조선 중기의 화원 화가. 화원 한시각(韓時覺)의 사위. 산수, 인물을 잘 그려 이징(李澄) 이후 최고라는 찬사는 들었으나 요절했다. 유작으로 <어초문답도> 한 점만 전한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21 17:46

  

SNS 댓글

최근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