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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소리를 자장가 삼아 - <오수도>
  • 7050      


<오수도午睡圖> 소당 이재관(小塘 李在寬), 18c중~19c초, 122.3×56.3cm, 호암미술관 소장

아직 매미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오기 전, 햇볕은 따갑지만 바람은 시원한 이 때가
일 년 중 낮잠을 즐기기 가장 좋을 때가 아닐까요.
이럴 때 낮잠을 불러오는 그림 하나를 펼쳐 봅니다.
이 낮잠 그림은 먹선 조차도 자연스럽고 부드러워서 마치 초여름 바람에 붓을 실어 그린 듯합니다.

이재관(1783-1849)은 조선시대 후기에 활동한 문인이자 화가로, 5대조까지는 벼슬을 했었다고 하는데
할아버지와 아버지 등 그 이하의 분들이 벼슬을 하지 못해 가세가 기울어 성문 밖에 거주하며 직업화가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비슷한 처지의 여항문인들과도 열심히 교유하며 중인계층의 조희룡, 김양원 등과도 시화를 주고 받는 친한 사이였고, 김홍도의 아들 김양기 등의 화원화가들과도 친하게 지냈다고 합니다.

특히 조희룡의 경우 이재관의 그림 대부분에 제발을 쓰기도 하고, 「이재관전」 등 그에 관한 많은 기록을 남기는 좋은 친구였다고 하네요(조희룡이 6살 어립니다). 


이재관, <파엽신선>, 19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이재관은 정식으로 그림을 사사받은 일 없이 고씨화보나 개자원화전 등의 화보집을 보고 베껴 그리며 스스로 그림을 익혔습니다. 그렇지만 실력은 알려져 있어 창경궁연건도감을 만들 때 등 방외화사(계약직 화원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로 발탁되기도 하고 태조어진 모사에도 참여했으며, 김정희의 추천을 받은 기록도 있습니다. 

화조, 영모, 초상화 등에서 골고루 찬사가 남아있지만 남아 있는 작품이 많지 않아 그 실제를 가늠하기는 어렵네요.
<오수도>에서 보듯 남종문인화풍을 토대로 하는 이재관의 그림에서는 김홍도, 강세황, 이인상의 화풍이 언뜻언뜻 비춰지기도 합니다.

<오수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선비 한 명이 책을 쌓아 등에 기대고 밖을 보다 막 스스르 눈을 감고 있네요.
시동에게는 차를 끓이라 시켰는지 불을 때고 있고 마당에는 소나무 아래 학 두 마리가 평화로이 서 있습니다.

화면 좌우에 괴석과 학이 배치된 것은 동양화에서 쓰이는 상징물로써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태호석(괴석)은 신선이 사는 유토피아의 모습으로 자연의 은거를 나타내며
천년 장수하는 것으로 알려진 학은 (청나라 때의 경우 이민족의 지배 아래) 출사를 거부하는 은자의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

선비들이 학에 매료된 나머지 집 안에서 학을 길렀다는 기록이 있는데,
선비의 거처에는 으레 마당에 한 두마리의 학이 노닐기도 했다고 합니다.
선비와 마당을 노니는 학은 옛 그림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김홍도 <단원도檀園圖> 지본담채 135×78.5cm, 개인소장 
중앙 하단 마당에 노니는 학의 모습이 보인다.

학이란 원래 집에서 기르는 동물이 아니기에, 마당에서 학이 노니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야생 학을 잡아다 길러야 했습니다.
조선 후기 서유구(徐有榘)의 《금화경독기》에는 야생 학을 잡아 길들이는 법을 설명한 대목이 있습니다.

매년 가을이나 겨울에 들판에 나락이 떨어져 있을 때가 되면 학이 밭에 많이 모여든다. ..비단 실을 꼬아서 올가미를 만들고 말뚝에다 이를 매고는 학이 이르는 곳을 헤아려 말뚝을 묻는데 십여 걸음을 잇대어 놓는다... 학이 내려앉기를 기다렸다가 한 사람이 털벙거지를 쓰고 소매 넓은 옷을 입고는 취한 사람이 비틀대는 듯한 걸음걸이로 천천히 접근한다. 그러면 학 또한 천천히 걸어 피하는데, 올가미 안에 발이 들어가는 것을 보면 마침내 급히 이를 쫓는다. 학은 놀라 날다가 발이 올가미에 걸리고 만다. 이에 급히 이를 덮치는데, 솜을 둔 두꺼운 옷소매로 그 부리를 뒤집어씌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을 쪼기 때문이다. 잡아와서는 그 깃촉을 잘라 날아가지 못하게 하고 뜰 가운데 며칠 두었다가 주리고 지치기를 기다려 조금씩 익은 음식을 준다. 이렇게 몇 달을 먹이면 마침내 길들여 기를 수 있다.

학은 기르기만 한 것이 아니고 춤도 가르쳤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학의 훈련방법은 이덕무의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에 자세히 나와 있지요.

깨끗이 청소한 평평하고 미끄러운 방에다... 둥글게 잘 구르는 나무 한 개만을 놓아두고 학을 방에 가둔다. 온돌에다 불을 때어 방을 뜨겁게 달구면...반드시 구르게 되어 있는 둥근 나무 위에 올라섰다가는 넘어지니, 두 날개를 오므렸다 폈다 하기를 쉴새없이 하고, 굽어보고 올려보기를 끊임없이 한다. 그 때 창 밖에서 피리를 불고 거문고를 연주하여...학이 자빠지고 넘어지는 것과 서로 박자를 맞추듯이 하면 학은, 마음은 열 때문에 번잡하고 귀는 소리 때문에 시끄럽다가도 이따금 기뻐하며 그 수고로움을 잊는다. 그렇게 한참 지난 후에야 놓아준다. 그 뒤 여러 날이 지나 또 피리를 불고 거문고를 연주하면 학이 갑자기 기쁜 듯이 날개를 치고 목을 빼어들며 박자에 맞추어 날개를 퍼덕인다.

파블로프 박사의 조건반사 실험이 있었던 것이 1900년이므로, 그 이전에 조건반사 실험을 한 예라고 기뻐해야 할까요. 동물 학대임이 분명한 이런 일들을 해서라도 선비의 멋을 누리고자 했던 것에 다소 씁쓸해집니다.

<오수도> 그림 상단에 써있는 화제는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금성상하오수초족   소당
禽聲上下午睡初足  小塘

소당은 김재관의 호이고, 그 뒤의 주문방인(글자가 붉은 네모난 인장) "簫下無一點鹿"이 찍혀 있습니다.
‘금성상하오수초족’ 8글자는 중국 남송(南宋) 때의 학자인 나대경의 산문집 ‘학림옥로(鶴林玉露)’ 중 산속 생활의 즐거움을 읊은 ‘산거(山居)’ 편에 나온 문장입니다. 

山靜似太古 日長如小年         산은 태고인 양 고요하고 해는 어린시절처럼 길기도 하다
余家深山之中 每春夏之交       내 집은 깊은 산 속에 있어 매년 봄이 가고 여름이 올 때면
蒼蘚盈階 落花滿徑             푸른 이끼 섬돌에 차오르고 떨어진 꽃이 길바닥에 가득하네
門無剝啄 松影參差             문에는 두드리는 사람 없고 솔 그림자 들쑥날쑥하니
禽聲上下 午睡初足            
새 소리 위아래로 오르내릴 제 낮잠이 막 깊이 드네
旋汲山泉 拾松枝 煮苦茗啜之    돌아가 산골 샘물 긷고 솔가지 주워와 쓴 차를 끓여 마시네

학림옥로를 제재로 한 그림은 심사정, 이인문, 김홍도 등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중 첫문장 '산정사태고 일장여소년(일명 산정일장)'은 원래 북송 때의 시인 당경(唐庚, 1071-1121)의 의 ‘술에 취해 자다(醉眠)’라는 시의 한 구절을 포스트모던적으로 인용한 것입니다. 마치 한 사람이 쓴 시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에 감탄하게 됩니다.  

나대경의 이 문장은, 일년 중 해가 가장 긴 계절에 깊은 산 속에 머물며 봄꽃이 마당에 떨어져 흩어진 것을 보다가 새소리에 잠이 드는 서정적인 모습을 담은 시입니다. <오수도>는 이 시를 그대로 화폭에 옮기고 “새소리에 막 잠이 드는” 화제를 써 넣은 그림인 것입니다.

학이 우는 소리가 잠을 청하기에 알맞은 소리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마당의 학도 새는 새이니
새 소리가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장면은 맞을 듯합니다.

 

 

- 더 읽어볼 책

오주석, 『이인문의 강산무진도』, 신구문화사
정민, 『한시속의 새, 그림 속의 새-첫째 권』 , 효형출판

 

편집 스마트K
업데이트 2024.12.0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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