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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 덮인 산으로는 왜 들어가시는지? - <파교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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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교심매灞橋尋梅> 심사정, 1766년, 비단에 수묵담채, 115.0x50.5cm, 국립중앙박물관

겨울인 듯 나무와 길가에 눈이 쌓여 있는 깊은 산 속. 당나귀를 탄 남자가 개울의 작은 다리를 건너려고 합니다. 짜임새 있는 그림의 구성에 아늑하고도 쓸쓸한 분위기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이야기 속으로 함께 들어갈 것만 같습니다.

‘당나귀를 탄 선비/처사’라는 요소를 지닌 그림은 말 그대로 ‘기려도(騎驢圖)’라고 합니다. ‘기려’ 장면은 중국 그림이나 일본 그림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요소이고 유명한 스토리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당나귀가 말보다는 느려서일까요. 값이 싸서 일까요. 당나귀를 타고 간다는 것은 어디로 속히 간다기보다는 속세를 떠난 처사가 세상과 경치를 완상하는 의미가 더 컸나봅니다. 대개 시인이나 문장가들이 남긴 장면에 당나귀가 잘 등장합니다. 두보 등의 유명인도 기려와 관련된 고사를 남기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그림처럼 당나귀와 함께 개울 위 다리가 등장하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은 매화에 미친 남자 맹호연(孟浩然, 689-740)이 이른 봄에 첫 번째 핀 매화를 찾아 파교를 건너 설산으로 간다는 ‘파교탐매(灞橋探梅)/심매(尋梅)/답설심매’ 테마입니다.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지금의 서안)를 끼고 흐르던 강, 위수에 세 개의 다리가 있었답니다. 그 중 가장 동쪽에 있는 다리의 이름이 파교(혹은 패교).

이런 낭만적인 고사(故事)는 『고씨화보(顧氏畵譜)』나 『당시화보(唐詩畵譜)』등에도 등장하여, 중국 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많은 화가들도 이 소재를 즐겨 그리게 됩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커다란 0자 속에 어떤 남자가 정면을 향해 총을 쏘고 있으면 “아, 007” 하듯, 그 때의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고 맹호연의 고사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당나라 때의 불우한 시인 맹호연은 여차저차 벼슬길에 나서지 못하고 도연명을 롤모델 삼아 고독한 전원생활을 하면서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시를 남겼습니다.)

이 그림은 1766년 현재 심사정에 의해 그려진 <파교심매도>입니다. 못 알아볼까봐 상단에 글씨로써도 밝히고 있습니다.


灞橋尋梅 丙戌初夏 玄齋  
파교심매, 병술년 초여름, 현재(심사정의 호)

 

당나귀를 타고 가는 모습의 원형은 청나라 때의 유명한 회화학습책인 『개자원화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개자원화전 인물옥우(人物屋宇)편
“둑으로 가는 나귀 잔등에서 시상에 잠기다(정계鄭棨의 시구)”

개자원화전 요 페이지 바로 아래에는 나귀가 아닌 말(馬)로 비슷한 도상도 존재합니다.

이 모습을 보면 일본 야마토분카간(大和文華館) 소장의 파교심매와 유사하네요. 돌아보는 방향이 다를 뿐 타고 있는 동물도 말 같이 보입니다.


야마토분카간 소장 <파교심매>

김명국의 <설중귀려도> 또한 개자원화전의 말탄 이 모습과 유사한데, 뒤돌아보는 듯한 모습 때문에 파교탐매 고사와 관련이 있는지가 의문이나 다리를 건너가는 나귀의 모습에 주목해서 참고해 둘만 합니다.


김명국, <설중귀려도>, 17세기, 모시에 수묵, 101.7cm x 54.9cm, 국립중앙박물관

이와 비슷하게 파교를 건너가지는 않지만 나귀를 타고 있는 그림들(기려도)이 있는데, 중앙에서 물러나 쓸쓸히 어디론가 가는 정서에 대한 클리셰처럼 자주 등장합니다.


김명국, <기려도>, 종이에 수묵, 29.3cm x  24.6cm, 개인소장


함윤덕, <기려도>, 견에 담채, 15.6cm x  19.2cm, 국립중앙박물관

어쨌든 현재 심사정의 그림에는 상단의 파교심매 글씨가 분명하므로, 이 사람은 맹호연이며 파교를 건너 설산중의 매화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심사정은 조부가 과거부정사건과 영조 독살미수사건에 연루되어 집안이 몰락하여 과거를 통한 출세가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평생을 직업화가로 살면서 이렇듯 후대에까지 이름을 남기게 될 줄은 몰랐을 테니, 나이 60에 이 그림을 그리면서 출세와 거리가 멀었던 자신의 인생을 맹호연과 겹쳐 보며 위안을 삼았을 것입니다. 

   수구한천설화표  數九寒天雪花飄, 아득한 겨울 하늘 눈꽃이 나부끼고
   대설분비사아모  大雪紛飛似鵝毛。 큰 눈은 오리털처럼 휘날리는데
   호연불사풍상고  浩然不辭風霜苦, 호연은 바람과 추위를 무릅쓰고
   답설심매낙소요  踏雪尋梅樂逍遙。 눈 밟으며 매화 찾아 떠돌아다니네

 

 

 

- 참고할 책 / 논문

이원섭 외 역,『완역 개자원화전』, 능성출판사, 1997

송희경, 「조선시대 기려도의 유형과 자연관」, 『미술사학보』 , 미술사학연구회, 2001

 

 

편집 스마트K
업데이트 2024.11.1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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