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메뉴타이틀
  • 파리가 사랑한 동양미술관
  • 최열의 그림읽기
  • 영화 속 미술관
  • 조은정의 세계미술관 산책
  • 미술사 속 숨은 이야기
  • 경성미술지도-1930년대
  • 김영복의 서예이야기: 조선의 글씨
  • 한국미술 명작스크랩
  • 도전! C여사의 한국미술 책읽기
  • 왕릉을 찾아서
  • 시의도-시와 그림
  • 근대의 고미술품 수장가
타이틀
  • 삼현수간三賢手簡 - 율곡 이이, 우계 성혼, 구봉 송익필의 서간첩
  • 1716      
언급했듯이 우계 성혼은 율곡 이이와 친분이 깊었는데, 율곡, 우계와 구봉(龜峯) 송익필(宋翼弼, 1534∼1599)이 쓴 서간을 모아서 펴낸 간찰집이 있습니다. 이 『삼현수간(三賢手簡)』은 구봉 송익필의 아들이 모아서 펴냈으며 현재 리움에 소장된 서간집 네 권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6세기 성리학의 대가이 이기(理氣)·심성(心性)·사단(四端)·예론(禮論) 등 성리학을 둘러싸고 토론·논의한 편지를 모아 엮어 놓은 것이니 학술적으로 중요한 자료입니다. 편지 내용은 구봉집(龜峯集), 우계집(牛溪集), 율곡전서(栗谷全書)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16편이나 됩니다. 

이 세 사람은 파주 언저리에 살거나 오간 적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세 사람 중에서 율곡의 서간 글씨는 귀한 편인데, 이 책 안에는 율곡이 구봉에게 보낸 편지가 13편이나 들어있고, 구봉의 정갈한 초서 글씨와 우계의 부드러운 서체로 서예사적으로도 중요한 자료입니다. 


성혼이 구봉에게 쓴 편지. 『삼현수간(三賢手簡)』. 31x39.5cm (학고재 도록)



『삼현수간』 보물 제1415호. 삼성미술관 리움


율곡의 글씨는 우계와 비슷한 점이 많아 살이 쪄 있고 활달한 편인데, 글자의 짜임새는 우계보다 조금 부족한 것 같습니다. 율곡의 글씨는 어울림과 조화 부분에서 다소 부족한 느낌이고 명필이라 하기 어려워도 뭔가 트여 있다는 느낌인데, 반면 우계는 그런 시원한 느낌은 없습니다. 

율곡은 비석 글씨를 어려워했다고 합니다. 비석에 새길 용도로 쓰는 글씨는 특별한 얇은 방안지 같은 종이를 쓰거나 유지를 겹쳐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런 종이에 글씨를 정연하게 쓴다는 것이 어려워 대부분 일반적인 경우보다는 비석 글씨를 더 어렵다고들 합니다. 며칠에 걸쳐 쓰다가 다시 써야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구봉 송익필의 삶과 글씨
구봉 송익필은 괄괄하고 활달한, 막힘없는 글씨를 썼습니다. 송익필은 성혼이 벼슬을 하지 않고 있으니 ‘우리나라가 구멍 뚫린 배와 같은데 자네 같은 사람이 왜 나서지 않는가’라며 나무라기도 했습니다. (우계는 몸이 약했다고 합니다. 글씨도 왠지 조심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파주시 교하읍 심학산 자락인 구봉에서 태어난 송익필은 복잡한 신분 문제를 가지고 있던 사람입니다. 양반 가문이지만 아버지는 서자였고 어머니는 노비였습니다. 신분 문제가 평생 그를 억눌렀고, 그와 관련된 어떤 사건 때문에 구봉이 도망다니게 되었을 때 율곡과 우계 두 사람이 감싸주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전해오는 말로는 구봉의 생김새가 마치 도인 같아서 그가 눈을 치켜뜨면 어떤 이도 그것을 마주보지 못했다고도 합니다. 

성격이 활달하고 거침이 없어서 율곡이 인사권을 쥔 이조전랑을 할 때 인사를 천거해 보라고 하니 송익필이 즉시 종이 한 가득 빽빽하게 써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글씨만큼이나 활달했던 구봉의 성격으로 보았을 때 그가 출신이 좋았다면 한 시대를 휘어잡았을 것이라고들 얘기하지요.

서얼이었던 송익필의 아버지 송사련은 신분의 한계를 악착같이 극복하려던 사람이었습니다. 송사련은 신분의 한계로 5품 관상감 이상 오르지 못하고 있던 와중에 외숙부 안당의 가문을 역모죄로 고발해 쑥대밭을 만들고 자신은 그 공로로 직위도 오르고 자식들을 유복한 환경에서 가르치며 사대부 집안과 혼인케 할 수 있었습니다. 타고난 재능을 지녔던 송익필은 학문에 힘쓰면서 이이, 성혼, 정철 등 당대의 학자들과 교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벼슬길에 오르는 것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송익필은 열심히 공부하여 예학 등의 대가로 손꼽혔고 정치적인 감각도 뛰어나 많은 사람들을 주위에 그러모으고, 그의 학맥은 김집(金集)을 거쳐 노론의 영수 송시열(宋時烈)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안 씨 집안의 역모가 조작된 사건임이 밝혀지고, 송익필의 외할머니가 안 씨 집안의 천첩이었다는 것을 밝혀내면서 송익필 형제들을 포함한 후손들이 안 씨 집안의 사노비로 환속됩니다. 이를 피해 도망다니는 와중에 정여립 역모 관련 기축옥사가 일어납니다. 1000여 명의 동인들이 제거되고 이를 처리한 인물 정철이 송익필과 절친했기에 송익필의 신분은 회복됩니다. 송익필은 기축옥사를 막후에서 조종하여 무고한 사람들을 죽게 만든 인물로 지목되고 있지요.

송익필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죽은 이의 신분을 쓰는 명정銘旌을 맡은 이이가 친구의 어머니인데도 ‘사비막덕지구(私婢莫德之柩, 막덕은 어머니의 이름)’이라고 썼다고 하지요. 율곡의 깐깐한 면을 볼 수 있습니다. 
SmartK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20 22:16

  

SNS 댓글

최근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