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카페에 싸구려 잡화점 골목으로 변모했지만 서울 인사동하면 고미술, 화랑을 먼저 떠올리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길 좌우에는 화랑과 고미술상이 즐비했다. 인사동처럼 골동가게가 밀집한 거리는 다른 나라에도 많이 있다.
강희제 때부터 자리 잡았다는 베이징의 유리창(琉璃廠)은 말할 것도 없다. 일본도 도쿄의 교바시(京橋)에서 니혼바시(日本橋)에 이르는 뒷길은 골동가로 유명하다. 일본 골동시장의 산증인이나 다름없는 개업 100년 이상의 시니세(老鋪) 고주쿄(壺中居)와 마유야마 료센도(繭山龍泉堂)도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파리에도 이런 곳에 견줄만한 곳이 있다. 다른 점은 골목이나 길거리가 아니라 건물 하나 아니면 블록 한 곳에 밀집해 있다는 점이 다르다. 루브르 데 장티케르(Louvre des Antiquaires)가 건물 하나에 밀집된 아케이드식 미술시장이라면 빌라쥐 쉬스(Village Suisse), 빌라쥐 생폴(Village Saint-Paul) 같은 곳은 거리의 한 블록 전체가 골동가이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이 루브르 데장티케르이다. 이 건물은 루브르 바로 옆에 있다. 리볼리가 건너편의 길다란 3층 건물이다. 제2제정이 시작될 무렵인 1855년에 지어졌다. 파리8구의 개발자인 페레르 형제가 오스망 남작이 요청을 받아 지었다.
당시 이곳에는 유럽에서 가장 큰 호텔이 들어서 화제가 됐다. 신축과 함께 개업한 그랑 오텔 뒤 루브르는 객실 700개에 엘리베이터 20대, 300명이 한꺼번에 만찬을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 등 유럽 최고 수준의 호텔로 유명했다.
19세기후반 자연주의 소설로 이름을 떨친 에밀 졸라(Émile Zola 1840-1902)가 파리 부르조아들의 표리부동한 위선을 폭로한 소설 『살림』에도 이 호텔이 조스랑 씨의 둘째딸 떼오필의 결혼피로연 무도회장으로 쓰인 것으로 등장한다.*
그토록 이름났으나 경영진이 바뀌면서 19세기말에는 절반은 호텔, 절반은 백화점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20세기 후반 들어 호텔이 골동가로 바뀌었다. 1975년에는 그랑 마가쟁 뒤 루브르 백화점이 정식으로 문을 닫고 3년 뒤에 3개 층 모두에 골동 가게가 입주한 명실상부한 골동아케이드로 변신했다.
루브르 데장티케르의 내부 모습
2000년대 초만 해도 이곳은 성업 중이었다. 회화, 도자기, 조각, 금속, 보석, 무구, 우표 등을 다루는 250곳 넘는 가게가 영업하고 있었다. 그랬던 곳이지만 이곳은 2015년 말로 문을 닫았다. 건물 전면에 간판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건물 자체가 팔렸다.
새 건물주는 2017년부터 개조공사에 들어가 2020년에 이곳에 현대식 쇼핑몰로 개관할 계획으로 전한다. 이로 인해 이곳의 골동가게들은 파리 시내로 전부 흩어졌다. 에콜 드 보자르 근처의 화랑가로 이전한 곳이 있는가 하면 싼 집세를 택해 조금 변두리로 나간 곳도 있다.
한 시대를 풍비하던 루브르 데장티케르가 이렇게 막을 내렸다면 아직도 집단을 이뤄 영업 중인 곳이 빌라쥐 쉬스이다. 이곳은 에펠탑이 있는 샹드 마르스 공원의 남쪽 끝 수플렌가에 있다. 중정을 끼고 둘러서 있는 건물을 따라 고미술상이 밀집해 있다. 특이하게 이 건물의 북쪽 끝에 기아자동차 판매대리점도 있다.
빌라쥐 쉬스
빌라쥐 쉬스는 1900년의 만국박람회 때 스위스 마을이 설치됐던 데서 유래한다. 그후 한때 고물장사들이 몰려 살기도 했다. 고미술, 화랑 거리로 바뀐 것은 일대가 재개발된 1967년 이후이다. 이곳에는 현재 회화, 골동, 장식미술 등을 다루는 가게 30곳 이상 있다.
그중 하나인 레라블도 있다. 주인은 경력 30년이 넘는 장 바르비에(Jean Barbier) 씨이다. 그가 다루는 물건은 빌라쥐 쉬스에도 흔치 않은 동양 미술이다. 바르비에 씨는 동양미술을 찾는 사람들이 점차 줄어든다며 중국과 일본 도자기, 조각, 금속 외에 서양 미술도 약간씩 다루게 됐다고 말한다. 이곳은 규모도 그렇거니며 전성기 때의 루브르 데장티케르에 비하면 다루는 물건의 수준이 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빌라쥐 쉬스의 골동가게 레라블의 주인 장 바르비에 씨
빌라쥐 쉬스가 세느강 남쪽을 대표한다면 빌라쥐 생-폴은 그 반대편으로 파리의 구시가에 해당하는 마레 지구에 있다. 이곳은 근세초기 수공업자들이 몰려 살던 곳으로 지금도 아기자기한 공예 공방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곳의 자르뎅 생폴 가와 생폴 가 사이의 작은 중정을 둘러싸듯 있는 곳이 빌라쥐 생폴이다. 가게는 60여 곳을 넘는다. 그중에 중국과 일본 골동을 다루는 곳은 그렇게 많지 않다.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집은 2곳뿐이다. 나머지는 회화, 디자인, 공예, 보석, 의상 등을 다룬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근사한 레스토랑이 많아 구경삼아 한번 가볼만하다.(y)
[주]
*에밀 졸라, 임희근번역 『살림(상)(하)』, 창작과 비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