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3년 중국 닝포(寧派)를 떠나 일본 하카타(博多)로 향하던 무역선 한 척이 신안 앞바다에 좌초했다. 이것이 1976년부터 본격 발굴되면서 세상을 놀라게 한 신안해저선 유물이다. 9년 동안 발굴조사 끝에 건져 올린 유물은 2만4천여 점에 이른다.
그중에 중국도자기만 2만점 이상이었다. 이 수자는 14세기 일본과 중국을 오간, 길이 34m에 약 200톤 배수량의 무역선에 실린 양이 그렇다. 그렇다면 17,18세기에 동서양을 왕래한 무역선에는 과연 얼마나 많은 도자기들이 실려 있었는가.
방병선 교수의 『중국도자연구』에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세워진 이후 연간 수백만점의 도자기가 바다를 건넜다고 했다. 도쿄 네즈(根津)미술관의 니시다 히로코(西田広子) 고문이 쓴 논문 「청조의 수출도자」(『세계도자전집』 15권, 쇼가쿠칸)에는 당시 동방무역을 뛰던 무역선에는 배 밑창에 평균 120상자의 도자기가 실려 있었다고 했다.
이를 수자로 헤아리면 약 10만8400점 가량 된다는 그녀는 말했다. 또 다른 기록을 보면 1721년에 네 척의 영국배가 80여만 점의 동양도자기를 가져왔고 1741년에는 프랑스, 영국, 스웨덴, 덴마크 배들이 120만점을 실어왔다는 내용도 있다.
유럽에 전해진 이처럼 많은 중국, 일본 도자기들은 그 후 다 어떻게 되었을까. 유럽에는 전쟁이 많았다. 하지만 제아무리 전쟁이 잦았다하더라도 남을 것은 남는다. 그것은 조선의 미술 사정을 봐도 그렇다.
미술관, 박물관 이외에서 이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미술시장이다. 파리에서 동양미술을 다루는 시장은 유럽 어느 곳보다 일찍 탄생했다. 이들 가운데 이른바 미술시장을 통해 팔려나간 미술품이 재차 시장에 다시 나와 거래되는 대표적인 세컨더리 마켓이 경매회사이다.
드루오가 9번지의 호텔 드루오
파리에서 일찍부터 그 역할을 맡고 있는 곳이 경매회사 드루오(Drouot)이다. 이는 군소 경매회사 70개가 연합해 만든 경매회사이다. 1852년에 탄생한 뒤 그 후 여러 과정을 거치며 아래 현재는 BNP파리바 산하의 한 자회사가 됐다.
이곳에서는 드루오가 마련한 큰 빌딩을 거점으로 각 경매회사가 자기 사정에 맞는 스케줄에 따라 연중 경매를 연다. 드루오 경매의 옥션하우스는 파리 시내에 4곳이나 있다. 그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이 드루오-리슐리외다. 이곳을 보통 호텔 드루오라고 부른다.
호텔 드루오는 파리 메트로 9호선의 리슐리외-드루오 역에서 걸어서 3, 4분 거리에 있다. 지하 2층, 지상3층 건물에 16개의 경매룸이 들어있다. 각 경매회사가 사정에 맞게 이 경매룸을 이용해 경매를 개최하는 것이다. 따라서 각양각종의 경매가 일요일 제외하고 거의 매일 열린다.
드루오 경매장 모습
호텔 드루오의 1층에 들어서면 ‘드루오에는 모든 미술애호가가 다 모인다(Drouot, tous les amatueur d'art s'y retrouvent)’라고 커다랗게 쓴 캐치프레이즈가 걸려있다. 실제로 누구나 간단한 신청서를 써내면 경매에 참가할 수 있다. 경매에 참가하지 않더라도 구경은 무료이다. 물건을 낙찰 받을 경우 일부 고가의 물건을 제외하고 현금 지불이다.
드루오에서는 프랑스에 있었던 모든 미술품을 다룬다. 따라서 어느 것이 메이저, 즉 주요 품목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동양미술도 여러 장르 중 하나일 뿐이다. 동양미술 경매는 대략 한 달에 한번 정도 열린다. 하루에 대여섯 건의 경매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것을 생각하면 결코 많다고는 할 수 없다.
드루오의 동양미술 경매를 보면 중국 쪽의 자료는 정리된 게 거의 없어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일본미술 경매는 일찍부터 시작됐다. 파리 드루오에 일본미술품이 처음 소개된 것은 1882년이었다. 이해 1월23일과 24일 이틀 동안 당시 문학평론가이자 에세이스트였던 폴 드 생-빅트와(Paul de Saint-Victoir 1827-1881)의 유품 경매가 열렸다. 일본 도자기 15점, 청동기 10점 그리고 그림 21점이 경매에 나와 거래됐다. 그리고 곧 이은 자포니즘의 유행과 함께 거의 매년 일본미술품 경매가 열렸다.
[참고] 2016년 12월 드루오경매에 2100만 유로에 낙찰된 건륭제 인장
근래 열린 동양미술 경매에서 눈길을 끌었던 것은 2016년 말 아시아미술 경매라고 할 수 있다. 이때 건륭제 인장이 나와 예상가의 20배가 넘는 2,100만 유로에 낙찰되면서 화제가 됐다. 하지만 이는 매우 특별한 경우이다. 드루오 경매에 나오는 것들은 대부분 저가이다. 그래서 낙찰 규모로 보면 파리에서도 소더비, 크리스티, 아르큐리알, 타장에 이어 5위 정도이다.
실제로 소규모 경매회사인 테지어 사루(Tessier Sarrou)가 2016년 12월19일에 연 아시아미술(Art d'Asie) 경매를 보면 이런 사정을 잘 알 수 있다. 이 경매에는 중국, 일본, 베트남, 인도네시아, 티벳, 캄보디아, 버마, 인도 등의 미술, 공예품 280여점이 나왔다. 이들의 평균 예상가는 4백에서 5백 유로이다. 비싼 것이라도 1만 유로를 넘지 않는다. 초보자 대환영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가격이 아닐 수 없다.
테지어 사루의 경매도록 일부
경매 전에 출품작을 보여주는 프리뷰는 보통 이틀 열린다. 경매 전날 하루 종일과 경매 당일 오전에 열린다. 프리뷰 전시라고 해도 따로 벽에 걸거나 진열장을 별도로 마련하는 일은 없다. 벽을 따라 출품작을 죽 세워놓고 큰 유리장 안에 소품들을 한꺼번에 늘어놓은 정도이다. 현장에서 마음에 드는 도자기와 그림을 얼마든지 만져보고 뒤집어 볼 수 있다. 물론 전문 감정사가 있어 자문도 해준다.
중국 고미술 경매의 프리뷰 모습
이런 프리뷰 현장에 최근 중국 상인들의 모습이 부쩍 늘었다. 이전까지 드루오는 일본 상인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중국 미술시장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중국 상인들이 는 것이다. 반면 한국 상인의 모습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다.
우선 드루오에 한국 고미술이 경매에 나오는 일은 거의 없다. 또 한국 물건 이외에는 일체 관심을 보이지 않는 한국의 고객을 위해 한국의 상인이 멀리 이곳까지 올 이유도 달리 없는 까닭도 있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