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메에는 중국 불상이 2층 메인 홀을 장식하고 있다. 하지만 기메 때부터 수집된 것은 의외로 적다. 애초에 그는 종교박물관 설립을 꿈꾸었지만 그의 시절만 해도 유럽에서 구할 수 있는 동양 유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기메의 중국불상실을 장식하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20세기 후반의 기증품이다. 그중 백미라고 할 만한 것으로 사각 대좌 위에 두 부처가 나란히 걸터앉은 금동불이다. 이는 다보불과 석가여래불을 함께 조각한 것이다. 『묘법연화경』에는 ‘다보불이 보탑 자리의 반을 석가모니께 내주며 그곳에 앉으시기를 청하였다. 석가모니는 즉 보탑으로 들어가 결가부좌를 하고 다보불과 자리를 나누어 앉으셨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장면을 금동으로 새긴 것이 이 조각상이다.
금동석가다보불, 518년 북위 높이 26cm
『묘법연화경』이란 『법화경』을 가리킨다. 이 경전에는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법하는 곳에는 반드시 다보탑이 나타나 그 설법을 증명한다고 했다. 경전과 달리 여기는 결가부좌가 아니다. 두 부처가 사이좋게 반쯤 서로를 쳐다보며 반가부좌한 자세로 걸터앉아 있다.
흔한 연꽃 대좌가 아닌 네모난 방형 대좌는 북위(北魏 386-534)시대의 불상에 보이는 전형적인 특징이다. 두 부처의 두꺼워 보이는 의복 표현과 강하게 꺾인 주름에서 북위 시대에 조영된 용문석굴 불상의 솜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기메의 중국불상실은 실로 다양한 사람들의 기증작으로 채워져 있다. 그 중에는 현대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이름을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벨기에 출신의 컬렉터 귀 울렌스(Guy Ullens 1936-)의 기증품도 있다. 울렌스는 일찍부터 중국 현대미술을 수집해 큰돈을 번 컬렉터로도 유명하다. 2011년 봄에 홍콩 소더비에서 그가 모은 106점의 중국현대 미술작품의 단독경매가 열렸는데 이때 전 작품이 낙찰되면서 낙찰총액만 500억 원이 넘어 화제가 됐다.
석조 관음보살입상, 6세기 동위 높이 116 cm
그는 동위(東魏 534-550)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손꼽히는 관음보살상 한 구를 기증했다.
연화 대좌 위에 살짝 발을 보이며 서있는 관음보살은 가녀린 몸매에 정교하게 부조된 엷은 의상을 두르고 있다. 무엇보다 미소를 띠고 있는 평온한 표정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평안, 자비의 마음이 떠오르게 한다.
부처나 보살은 아니지만 깨달음의 최고 경지에 이른 사람을 아라한이라고 한다. 나한은 이를 줄일 말이다. 이 나한을 거의 등신대 크기의 빚어 채색한 것도 이곳의 또 다른 대표작이다. 이는 거란이 세운 요(遼 916-1125) 시대에 제작된 것이다.
당삼채 나한좌상, 요 높이 110cm
벽돌처럼 보이는 암석 위에 손에 염주를 쥐고 결가부좌한 모습이다. 꾹 다문 입에 늘어진 귓불과 쳐진 볼 살 등 마치 살아있는 수도승을 보는 것처럼 사실적이다. 벽돌처럼 보이는 암석은 중국 고대에 산수화가 탄생한 과정을 연구한 마이클 설리반(Michael Sullivan 1916-2013)에 의하면 인도의 고대 산수묘사 방식이 중국에 전해진 것이라고 한다.
이 삼채 나한상을 기증한 사람은 홍콩의 사업가이자 컬렉터인 추이친탕(徐展堂 1941-2010)이다. 강서성 길안 출신인 그는 생전에 사업에 성공하며 3천여 점에 이르는 중국 미술품을 수집했다. 한때는 미술관도 열었으나 90년대에 문을 닫았다. 이 보살상은 그가 기메에 기증한 것 가운데 가장 대표적이다.
기메는 세르누치 못지않게 중국 고대청동기를 체계적으로 갖춘 곳이기도 하다. 앞에서도 소개했지만 세르누치를 대표하는 중국 청동기는 단연 호유(虎卣)이다 있다. 지상의 존재와 무관해 보이는 괴수(최근에는 호랑이로 해석하는 편이다)가 아이를 품고 있는 형상이다. 이를 보면 누구나 아득한 고대의 주술이 난무하는 상상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그 흡인력이 바로 명품임을 말해준다.
상준이 전시된 고대 유물실
그에 필적하는 기메의 걸작이 초대형 상준(象尊)이다. 짧고 뭉툭한 발, 큰 머리, 위로 치켜진 코 그리고 커다란 귓바퀴는 영락없는 코끼리를 본떴음을 말해준다. 준은 제사 때 술을 담아 신 앞에 바치는 용기이다.
원래는 깔때기 두 개를 아래위로 이어놓은 것처럼 생긴 것이 보통이다. 동물 형상을 한 것은 그 변형이다. 이 상준에는 위쪽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어 이곳으로 술을 담을 수 있도록 했다.
만들어진 시대는 BC12-11세기로 상나라 후기에 해당한다. 상의 세력권은 갑골문으로 유명한 은허(殷墟)이다. 오늘날 하남성 안양현(安陽縣)에 해당하며 서해의 청도에서 서쪽으로 곧장 400내지 500km 떨어진 곳이다.
고대 중국에 코끼리가 어느 위도까지 서식했는지 알 수 없으나 동물 형상을 한 준 가운데 이렇게 코끼리 모습으로 만든 사례는 몇 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유명한 미국 프리어갤러리 소장품을 포함해 이들 모두는 고작 20cm 내외의 크기에 불과하다. 이렇게 큰 것은 없다. 이 상준은 높이가 64cm나 되며 길이는 무려 96cm에 이른다.(위로 뻗은 코 부분은 훼손되고 없다.)
이삭 드 카몽도 구장(舊藏)의 상준, 기원전12-12세기 높이 96cm
고대에서 크기는 즉 권력이었다. 도자기도 그렇지만 무엇이 됐든 두 배, 세배 차이 나는 거대한 크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차원이 다른 제조 방법과 능력이 동원돼야 한다. 이 거대한 준은 기메가 구한 것이 아니다. 유명한 컬렉터 이삭 드 카몽도의 소장품이었다. 1911년 그가 죽은 뒤 루브르에 유증된 물건 속에 들어 있었다. 그래서 루브르를 거쳐 기메로 이관되었다. 이삭이 언제 어디서 이를 구했는지를 말해주는 자료는 현재로서는 전하지 않는다.
이 청동기실에는 갑골문이 적힌 소 견갑골도 몇 점 소개돼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한나라 때 만들어진 칠기 소반(小盤)이다. 이 소반 역시 부장품이다. 오랜 세월 땅 속에 있으면서 크게 뒤틀리며 변형됐다. 그런데 눈을 뗄 수 없는 것이 네 귀퉁이에서 소반을 받치고 있는 금속제 발(足)이다. 쉽게 짐작이 가지 않는 동물 형상을 하고 있다. 문양 대신 군데군데 금박 상감을 넣어 화려하게 장식했다.
세테 루가 기증한 한대 칠기소반
한나라 때 가리개로 쓴 목제 병풍에는 동물 형상을 한 다리를 다는 게 보통이다. 대개는 곰이나 호랑이의 형상을 빌렸다. 거기에 금박 상감을 하거나 터키석 같은 돌을 박아 넣었다. 아예 옥을 빗어 만든 것도 있다.
이처럼 괴수 형상의 다리를 한 칠기 소반은 드물다. 이를 기증한 사람은 세테 루이다. 그 역시 이삭 드 카몽도처럼 파리의 여러 미술관에 유물을 기증했다. 기메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해 유럽 최고의 동양미술 컬렉션을 이루었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