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왕 루이14세(재위 1643-1715)는 집정 후반기에 중국의 황제 캉시(Kangxi)로부터 예물을 증정 받은 적이 있다. 1697년 중국에서 포교하던 예수회선교사 조아장 부베(Joachim Bouvet 1656-1730, 중국명 백진(白晉))가 파리로 돌아오면서 가져온 것이다. 부베 신부는 루이14세가 중국 포교를 위해 파견한 6명의 선교사 중 한 사람이다.
루브르 2층 43번 방 모습
이들 일행이 파리를 떠난 것은 1685년3월이었다. 오랜 항해 끝에 아시아의 타이에 도착했고 이어서 상하이 인근의 닝포(寧波)를 통해 중국 대륙에 발을 디뎠다. 베이징은 육로를 거쳐 1688년 2월에 도착했다. 파리를 떠난 지 35개월만이었다.
부베 일행은 자금성에서 캉시 황제, 즉 강희제(康熙帝, 재위 1654-1722)를 알현하고 포교를 허락받았다. 선교의 한 방편으로 다양한 과학지식을 습득하고 있던 이들에게 황제는 호의를 보이며 유럽의 수학과 기하학과 같은 학문을 직접 배웠다. 또 학질에 걸렸을 때는 부베의 동료 수도사였던 장 드 퐁타네(Jean de Fontaney 1643-1710)와 클로드 드 비스델루(Claude de Visdelou 1656-1737)의 치료를 받기도 했다.
43번 방에 장식된 중국의 수출용 도자기
부베가 1693년 파리 예수회에 선교활동의 보고를 위해 귀국하려하자 강희제는 그를 프랑스 왕에게 보내는 사절로 삼아 루이14세에의 예물도 함께 보냈다. 강희제가 보낸 예물은 중국에 관한 한적(漢籍) 49권이었다. 이 책을 받은 루이14세가 이를 왕립도서관에 보내 보관하게끔 했다. 오늘날 이 책은 파리국립도서관에 소장돼있는 것으로 전한다.
보베는 그후 1699년에 두 번째로 베이징에 파견됐다. 이때 타고 간 배가 앞서 소개한 앙피트리테(Amphitrite) 호이다. 이 배에는 반대로 루이14세가 강희제에게 보내는 답례품이 실려 있었다. 답례품은 프랑스 판화였다.
부베는 루이14세와 강희제 사이를 오가며 사절 역할을 하면서 덤으로 유럽의 수학 발전에도 공헌했다. 그가 프랑스에 올 때 가져온 북송의 유학자 소옹(邵雍 1011-1077)이 그린 육십사괘(일명 선천도(先天圖)라고도 한다)를 가져와 독일의 라이프니치(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에게 보냈는데 이것이 그의 이진법 관련 논문에 큰 도움이 됐다.
이 일도 그렇지만 더 의미 있는 일은 그가 유럽 최초로 중국 황제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를 제공한 데 있다. 그는 프랑스에 와 있는 동안인 1697년에 『강희제전』을 펴냈다. 이 책의 원제목은 『중국 황제의 역사적 초상(Portrait historique de l'empereur de la Chine)』이다.
부베가 쓴『중국 황제의 역사적 초상』 속표지
이 책이 출판으로 당시 궁금증으로 가득 찬 동양의 지배자에 대한 수수께끼가 얼마간 풀어질 수 있었다. 뿐만이 아니라 부베가 묘사한 대로 강희제는 현명하고 이성적일 뿐만 아니라 학구적인 그야말로 이상적인 지도자상으로 부각됐다. 이런 강희제상을 통해 유럽에서는 그의 휘하에 있는 중국 관료들에 대해서조차도 호의적인 인상을 갖게 됐다.
부베는 이 책에서 ‘오래 전부터 예수회가 유럽 제국과 세계 여러 민족에 대한 이야기를 황제에게 전했으며 또한 여러 기회를 통해 외국의 진귀한 미술품을 헌상했다. 이런 바탕 위에 황제는 유럽의 예술과 학문을 연구했고 그 결과 학문상 또한 최고 수준의 미술에 있어서도 중국만이 군자, 학자, 명공을 독점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에 도달했다’고 적어 유럽 나라에 대한 강희제 이해까지 소개했다.
보베 공방에서 제작한 태피스트리 <천문학자들> 1722-1724년경 339.5x315cm
부베의 이 책은 신비의 나라로만 여긴 중국과 그곳의 통치자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끌었다. 부베의 책이 나온 뒤인 1722년에서 1724년 사이에 프랑스 왕립태피스트리 제작소인 보베 공방에서 중국 황제를 소재로 한 작품이 제작됐다.
43번방에 걸린 두 점의 대형 태피스트리는 당시 보베에서 만든 것이다. 장-밥티스트 모누와이에(Jean-Baptiste Monnoyer 1636-1699)와 G.L.베르낭살(G.L.Vernansal 미상)이 그린 밑그림을 가지고 짠 ≪중국황제 이야기(L'Histoire de l'Empereur de Chine)≫ 6점 연작 중 두 점이다.
그 중 하나가 <천문학자들(Les Astronomes)>이다. 태피스트리 속에는 성자처럼 흰 수염을 길게 기르고 지구의 앞에 앉은 강희제 곁에 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찰하거나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선교사들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베이징고궁박물원에 있는 강희제 초상은 태피스트리 속의 묘사와 달리 검은 수염에 듬성듬성 나 있는 모습이다.)
<천문학자들> 부분
강희제의 두터운 신임 아래 공부시랑(工部侍郞)까지 올랐던 페르디낭 베르비스트가 파리에 돌아와 쓴 회고록에는 ‘매일 아침 일찍 궁정에 들어가면 곧 내전으로 불려가 오후 3-4시가 돼서야 물러날 수 있었다. 나 혼자 황제와 함께 있으면서 황제를 위해 각종 문제를 강론했다. 2년 동안 수학, 기하학, 정역학 그리고 천문학을 강론했다’는 내용이 있다. 강희제는 그림에서처럼 실제로 수도사들과 천문학에 대해 강론을 듣고 토론한 것이 사실이었다.
태피스트리가 걸려있는 이 방의 타이틀은 중국 방(Cabinet Chinois)이다. 대형 태피스트리 외에 중국 도자기가 장식품으로 전시돼 있다. 또 일본 칠기항아리도 있다.
황동장식이 더해진 일본 칠기항아리
오른쪽 거울 앞에 놓인 화병은 강희제 때 북송의 청자를 모방해 만든 것이다. 황동 장식은 파리에 전해진 이후인 1745년에서 1749년 사이에 더해졌다.
왼쪽 태피스트리 아래에 놓인 항아리 두 점은 도자기가 아니다. 일본의 칠기 항아리를 수입해 황동 장식을 입힌 것이다. 이 역시 루이14, 15세 시절인 1680년에서 1730년 사이에 프랑스에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황동 장식은 1750년경에 입힌 것이라고 설명돼 있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