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크리스마스를 한국 명절에 견주면 추석이 가장 가깝다고 할만하다. 이때는 역마다 북새통을 이룬다. 외지에 나가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기차에 올라 고향 집을 향한다. 그리고 온 가족이 한 집에 모여 음식을 잔뜩 차려놓고 놓고 웃고 떠들면서 크리스마스 바캉스를 즐긴다. 이때의 성찬(盛饌)에 빠지지 않은 음식이 생굴이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슈퍼이고 동네 장이고 간에 가게마다 산더미처럼 굴을 쌓아놓고 판다.
센 강에서 멀지 않은 생토노레가는 루브르가 있는 리볼리가에서 한 블록 안쪽에 있는 대로이다. 이 길은 방돔 광장으로 통하고 있어 예부터 고급 패션거리로 유명하다. 이 거리에 오래된 생선가게 레큠 생토노레가 있다. 레큠은 비말(飛沫)이란 뜻이다. 이곳도 겨울 한철은 굴 장사 시즌이다. 높다랗게 쌓아놓고 팔 뿐만 아니라 가게 안쪽에 작은 테이블을 들여놓아 즉석 생굴 바도 연다.
생토노레 가에 있는 생선가게 레큠 생토노레의 명함
동네 명소가 된 이 집의 명함은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흰 비말을 일으키는 큰 파도 사이로 갈마기가 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자세히 보면 그 아래에 가게에서 파는 메인 상품인 굴이며 새우며 조개며 생선 등이 보인다.
그런데 이 명함은 누가 봐도 한 눈에 일본의 우키요에(浮世繪)화가 가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齋 1760-1849)가 그린 <가나가와의 큰 파도>에서 따온 것임을 알 수 있다. 가게 주인도 호쿠사이를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파리지엥 중에는 후쿠사이 팬들이 많다. 그는 19세기 후반부터 파리에서 유행한 일본 취향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다.
그 무렵 유행한 일본 취향은 시누와즈리처럼 자포네즈리(japonaiserie)라고 불렸다. 시누와즈리처럼 보편적인 취향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범위를 좀 더 좁혀 후쿠사이의 우키요에 판화나 당시 전해진 일본 미술 공예품에서 직접 영향을 받은 프랑스 미술을 가리킬 때는 달리 자포니즘(japonisme)이란 말을 쓴다. 자포니즘은 프랑스 산이란 의미가 강하게 담겨있다. 그래서 이 둘 말을 구분해 자포네스리를 쟈포니즘 전단계의 느슨한 경향 정도로 해석하기도 한다.
1878년 파리 만국박람회 모습
파리의 자포니즘은 만국박람회를 통해 본격화됐다고 할 수 있다. 그 계기는 1878년에 열린 만국박람회였다. 이 박람회는 보불전쟁에 진 프랑스의 부흥을 자축하기 위해 성대하게 마련됐다. 샤이요 언덕에 트로카데로 궁이 건설됐고 강 건너 맞은편의 샹 드 마르스 공원에 거대한 파빌리온이 세워졌다. 5월부터 11월까지 열린 박람회에는 무려 1616만명이 찾은 것으로 기록돼있다. 일본이 파리의 만국박람회에 참가한 것은 이때가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제2제정 때인 1867년 만국박람회였다. 이때는 아직 메이지 정부가 들어서기 이전이었다. 그래서 막부 외에 사쓰마 번, 사가 번도 지방정부 이름으로 개별 참가했다. 이때만 해도 파리에서는 일본에 대해 막연한 호기심은 있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1878년 박람회에서 일본이 큰 관심을 끌면서 사회적인 어떤 유행까지 생겨나게 한 것은 무엇보다 메이지정부의 용의주도한 사전 준비가 한 몫을 했다고 할 수 있다. 1873년 빈 만국박람회 때 내놓은 일본 공예품이 예상치 않게 많이 팔렸다. 이를 본 메이지정부는 박람회를 상품 수출의 장으로 적극 활용키로 했다.
그래서 정부출자의 반관반민 회사인 기류공상회사(起立工商會社)를 세웠다. 이 회사가 처음 참가한 1876년의 필라델피아 만국박람회였다. 필라델피아 만국박람회는 예상대로 큰 성공을 거두며 미국 내에서 일본 붐을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그 여세를 몰아 참가한 것이 1878년 파리 만국박람회였다. 기류공상회사는 유럽에서 팔릴만한 미술 공예품을 일본 전국에 걸쳐 면밀하게 수집했다. 또 인적 자원으로 프랑스어가 능통한 직원도 고용해 만반의 채비를 갖췄다. 당시 뽑은 프랑스어 통역원이, 앞서 세브르 도자박물관에 일본의 다도구를 다수 기증했다고 소개한 하야시 다다마사(林忠正 1853-1906)였다.
그는 도야마 다카오카(富山 高岡)의 난학(蘭學)의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소년기에 도야마번(富山藩)의 고급무사인 하야시 집안의 양자가 돼 하야시 성을 쓰게 됐다. 막부 말기에 에도로 올라와 나중에 도쿄대학이 되는 대학남교(大學南校)에서 프랑스어를 배웠다. 그런 그가 기류공사회사의 통역원에 지원한 것이다.
당시 하야시 집안의 사촌형으로 이소베 집안으로 양자를 간 이소베 시로(磯部四郞 1851-1923)가 파리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있었던 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됐다. 이소베는 나중에 귀국해 법관, 변호사를 거쳐 귀족원 의원까지 지냈다.
1878년 만국박람회에서 일본은 트로카데로 궁 옆에 일본 민가를 짓고 다실을 꾸몄다. 그리고 기모노를 입은 여인들을 동원해 차를 무료로 나눠주면서 파리지엥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곳에 진작부터 일본 우키요에 판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인상파 화가들(이들의 첫 번째 전시는 1874년 사진가 나다르의 스튜디오에서 이미 열였다)이 대거 찾아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프랑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하야시를 만난 것이다.
미국의 동양미술사학자 마이클 설리반은 ‘호쿠사이 만화의 발견이 파리에 있어 일본 붐을 상징한다’고 했는데 파리에 『호쿠사이 만화(北齋漫畵)』가 전해진 것은 실은 1878년 만국박람회보다 훨씬 이전이다.
평생 이사를 93번이나 했다는 기인(畸人)화가 호쿠사이가 『호쿠사이 만화(北齋漫畵)』를 그린 것은 1814년이다. 애초에 이는 초보자를 위해 그림 교본으로 만들었다. 말하자면 18세기 초에 중국에서 전해진 중국 화보(畵譜)들의 일본 버전이다. 목판화로 찍은 이 교본은 큰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계속해 후속편을 그려 15권까지 펴내게 됐다.
19세기 중반 이 『호쿠사이 만화』가 어딘가에 섞여 파리에 전해진 것이다. 전하는 말에는 암스텔담에 들어온 이마리(伊万里) 도자기의 포장 완충재로 쓰였다고 한다. 당시 이를 처음 본 사람은 펠릭스 브라크몽(Félix Braquemond 1833-1914)이었다.
엥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1780-1887)의 손제자쯤 되는 브라크몽은 화가이면서 판화가였다. 또 세브르에서 도자기 밑그림을 그린 적도 있었다. 그가 우연히 판화공 드라토르의 공방에서 이를 봤다. 참신한 내용에 놀란 그는 이를 즉각 주변 사람들에 소개했고 그 덕분에 호쿠사이 이름이 파리의 화가들에게 알려지게 됐다.
그가 호쿠사이를 소개한 화가들 중에 마네, 드가가 있었다. 또 코로, 밀레, 로뎅도 있었으며 나중에 유럽에서 최초로 호쿠사이와 기타가와 우타마로(喜多川歌閭 1753-1806)에 대한 단행본을 낸 공쿠르 형제도 들어있었다. 이들 모두는 단번에 호쿠사이 그림에 매료됐다.
호쿠사이 판화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
인상파도 그랬지만 코로나 밀레도 모두 당시의 아카데믹한 전통 화풍을 거부하던 전위파였다. 이들에게 호쿠사이 그림이 보여주는 기발한 구도와 교묘한 형태 그리고 풍부한 색채와 회화적 독창성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전위적 성격과 딱 들어맞는 것처럼 여겨졌다.
1872년에 미술평론가로 『가제트 데 보자르』 등에 글을 쓰던 필립 뷔르티(Philippe Burty 1830-1890)는 젊은 화가들에 열중하고 있던 일본 미술에의 영향을 ‘자포니즘’이란 말로 설명하면서 자포니즘이란 용어가 정식으로 탄생했다.
바우하우스 전에 소개된 장식미술관 소장의 『호쿠사이 만화』
장식미술관에 소장된 『호쿠사이 만화』는 평소에는 그다지 공개될 기회가 없는데 2016년 12월 에 열린 특별전 ‘바우하우스의 정신(L'Esprit du Bauhaus)’전에 나왔다. 『호쿠사이 만화』 뿐만 아니라 다른 우키요에 판화와 일본 다도구 등이 바우하우스 운동에 영감을 준 일본미술로 소개됐다.
모더니즘 미술운동의 하나인 바우하우스와 일본 미술 내지는 일본 공예와 관계는 쉽게 짐작되지 않는 구석이 있다. 일본 미학자이자 조형평론가인 미츠이 히데키(三井秀樹) 교수는 『미(美)의 자포니즘』에서 이런 말로 둘을 연관시키고 있다.
장식미술관의 우키요에 소장품
‘바우하우스 시대에는 이미 유럽에 자포니즘의 유행은 지났다. 그러나 자포니즘의 저작(詛嚼)과 이해 위에 비대칭적 구성이라는 새로운 디자인 개념을 바우하우스 출신들이 개척했다.’ 그리고 덧붙여 이 무렵 많이 보이는 비스듬한 사선 구도의 바우하우스 작품들 역시 그 사례라고 설명하고 있다.
파리 장식미술관은 『호쿠사이 만화』를 비롯해 다수의 일본 판화와 미술공예품을 소장하고 있다. 이런 소장품으로 인해 이곳은 프랑스 전체에서 자포니즘 미술을 가장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는 곳으로 이름 높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