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누치의 중국컬렉션 가운데 회화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2006년 재개관 때 소개된 자료를 보면 250여 점 있는 것으로 전한다. 이것도 고화보다는 파리에 유학했던 중국화가가 기증한 것이 대부분이다.
고화 중에 손꼽을 만한 것은 당나라 말기의 것으로 전하는 <말과 마부>그림 두루마리가 있다. 이는 제3대 관장으로 1952년부터 1982년까지 30년 동안 장수 관장을 지낸 바딤 엘리세프(Vadime Eliseeff 1918-2002) 시대에 구입한 것이다.
말과 마부 당나라
그림에는 당나라 때 말 그림의 명수로 불린 한간(韓幹 715년경-781년 이후)의 서명이 있다. 하지만 이는 후대에 써 넣은 것에 불과하다. 어쨌거나 이 그림은 소개되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무덤출토 벽화이기는 하지만 상설 전시된 그림으로 요나라 무덤의 시녀도가 있다. 붉은 옷을 걸치고 무엇인가를 공손히 바치는 시녀의 모습을 그렸다. 전하는 요나라 그림이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주목할 만한 자료이다. 이 역시 세르누치 수집이 아니라 엘리세프 시대인 1966년에 구입한 것이다.
이 벽화를 제외하고 그림은 보통 1층 현관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복도 갤러리에 몇 점 걸려있는 게 보통이다. 이들 대부분은 파리유학 화가들이 기증한 것이다. 이 소장품은 세르누치가 일찍부터 중국전문 미술관으로 자리 잡은 일과도 관련이 깊다.
벽화인물도 요, 10-12세기 143x73cm
파리에 쉬베이홍(徐悲鴻 1895-1953), 린펑미엔(林風眠 1900-1991), 판위량(潘玉浪 1895-1977) 같은 중국의 근대 화가들이 유학 오기 시작한 것은 1920년부터이다. 당시 중국에는 서구를 배우려는 열기가 무척 높았다. 독일유학생 출신으로 북경대 총장이 된 카이위안페이(蔡元培 1868-1940)는 좋은 롤 모델이 됐고 또 스스로 학생들에게 서구 유학을 적극 권했다.
1세대 유학파였던 쉬베이홍은 졸업 후 파리에 남았다. 1933년 주드폼에서 파리화가 앙드레 드자루와(André Dezarrois 1889-1979) 와 함께 2인전을 열어 중국 그림을 파리에 소개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에는 우관중(吳冠中 1919-2010), 자우키(趙無極), 주태춘(朱德群 1920-2014) 등이 대거 파리로 몰려왔다.
장다첸 <아미산(蛾眉山)> 비단에 채색 190.8x87.7cm
세르누치에서 중국화가들 전시는 1946년에 열린 자우키 전시부터 시작된다. 1953년 이후부터거의 매년 중국화가의 개인전이 열렸다. 기증도 이 무렵부터 시작됐다. 최초는 역시 파리유학생 출신으로 나중에 유네스코사무총장의 아시아담당고문이 된 궈요슈(郭有守 1901-1977)였다.
그는 장다첸의 사촌동생이었다. 쉬베이홍과 함께 1920년대 파리에서 유학 와 천구회(天狗會)라는 유학생 친목모임을 만들었다. 그가 쉬베이홍 등의 그림을 세르누치에 기증했다. 1956년에 파리에 온 장다첸(張大千 1899-1983)은 파리 근대미술관 전시에 이어 세르누치에도 초대를 받았다. 이때 장 역시 그림의 일부를 세르누치에 기증했다. 또 중국으로 돌아간 린펑미엔도 50년대와 70년대에 그림을 보내왔다.
이런 중국화가들 사이에 끼어 이응로(李應魯 1904-1989)도 세르누치와 인연을 맺었다. 이응로가 파리에 온 것은 1960년이다. 세르누치와의 인연은 엘리세프 관장을 통해 이뤄졌다. 그녀와 이응로는 매우 가깝게 교류했다. 그는 엘리세프 등이 주동이 돼 1964년에 동양미술학교를 만들었을 때 선생으로 초대됐다.
주태춘 추상풍경 종이에 수묵 57.3 69.4 1993년
이때 이응로 외에 발기인 겸 지도교수로 장다첸, 자우키 그리고 일본의 후지타 쓰구하루(藤田次嗣 1886-1968)가 힘을 합쳤다. 1971년에 이들이 가르친 동양미술학교 학생들의 전시가 세르누치에서 열렸을 때 당연히 이응로도 출품했다. 그리고 1978년 들어 세르누치는 이응로의 그림을 구입했다.
이응로 작품의 기증에 대해서는 2층 계단의 안쪽에 걸려있는 패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패널에 기증자들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있는데 여기에 부인 박인경의 이름이 보인다. 이를 보면 세르누치는 이응로 화백이 세상을 떠난 뒤에 박인경 여사를 통해 작품을 기증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1989년 이응로가 86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넉 달 뒤인 5월12일부터 반년 동안 ‘서울-파리’라는 타이틀의 이응로 추모전이 세르누치에서 열렸다.
세르누치에는 한국 고미술품은 소장돼 있지 않다. 다만 이응로 그림 외에 현대 한국도예작가 작품 몇 점이 소장돼있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