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르 도자기의 명성은 형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화려한 채색이 먼저이다. 특히 짙은 곤색은 프랑스 왕가의 색답게 왕립 시절의 세브르를 대표한다. 그 외에 하늘빛의 연한 블루와 진초록의 녹색 그리고 수선화 꽃 같은 노란색 채색도 세브르 자기의 더욱 유명하게 만든 색들이다.
왕의 블루를 사용한 세브르 도자기
이들 채색 유약은 멀리는 팔리시에서 비롯되지만 그 결실을 본 것은 총명하고 아름다웠던 한 여인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18세기 프랑스의 문화, 예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성인 루이 15세의 애첩 퐁파두르 후작부인(La Marquise de Pompadour 1721-1764)이다.
그녀는 타고난 미모 외에 재주가 많았고 교양도 풍부했다. 그녀의 살롱에 볼테르, 디드로와 같은 백과사전파 지식인들이 출입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녀는 이들과 지적인 분야에서 교류한 외에도 패션, 건축, 디자인, 가구, 회화, 보석 등에 두루 관심이 많았다. 도예도 그 중의 하나였다.
방센느에 있던 도자공방을 세브르로 옮기자는 아이디어는 그녀에게서 나왔다. 방센느는 샹티이 성의 도자공방에 있던 도공 뒤보아 형제가 옮겨와 만든 것이다. 도자기에 관심이 많았던 퐁파두르 부인은 이 공장의 경영에 깊숙이 관여했다.
당시 수입되고 있는 동양 자기나 독일 마이센의 자기를 대체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마이센에서는 이미 1709년에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Johann Friedrich Böttger, 1682-1719)가 동양과 같은 자기 제작에 성공하고 있었다. 그녀는 루이 15세를 움직여 방센느 공방 이외에는 프랑스의 어디에서도 마이센풍 자기와 일본 가키에몬(柿右衛門)풍의 자기를 만들어 판매할 수 없도록 했다. 방센느에 독점권을 준 것이다.
이런 지원 아래 방센느 공방는 당연히 발전을 거듭했다. 그녀는 이 방센느를 베르사이유와 파리의 중간이자 자신이 거처하던 벨뷰 궁(Château de Bellevue)에서 가까운 세브르로 옮기게 한 것이다. 퐁파두르 부인에 빠져있던 루이15세는 그녀의 제안에 동의했고 나아가 공방에 직접 출자해 왕실 재정을 돕게 했다.
이런 뒷받침 아래서 개발된 채색 유약이 ‘왕의 블루(Bleu de Roi)’이다. 푸른색은 전통적으로 프랑스 왕가의 색상이었다. 방센느에 이어 세브르에서 이를 도자기 유약으로 재현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세브르에서는 아직 자기를 굽지 못했다.
유럽 최초의 자기는 앞서 소개한 것처럼 프랑스에 앞서 독일에서 먼저 만들어졌다. 작센 선제후 아우구스투스2세 아래에서 연금술사로 있던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가 1709년 유럽 최초로 자기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자기의 비밀이 흙에 있다는 사실은 일찍부터 유럽에 알려져 있었으나 아무도 그 흙을 찾아내지 못했다. 뵈트거의 성공은 마이센 근처에서 자토(磁土) 즉 카오링을 찾아낸 데 있다. 프랑스에서 자토가 발견된 것은 이보다 훨씬 뒤로 1768년 리모주 근처에서 발견됐다.
세브르는 자토가 발견되기 이전까지 연질 자기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단지 거기에 아름다운 채색을 입혀 가치를 높였을 뿐이다. 왕의 블루에 이어 퐁파두르 부인이 특히 좋아했던 장미색, 즉 ‘로즈 드 퐁파두르(Rose de Pompadour)’도 개발됐다.
이는 장미색이라고 해도 핑크에 더 가까운 색이다. 이 유약은 당시 프랑스 과학아카데미 총재이자 장식 미술가였던 장 에로가 개발했다. 하지만 그가 죽으면서 제조법을 남기지 않아 그 후 단절되고 말았다.
로즈 드 퐁파두르로 제작된 도자기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배 모습을 한 포프리 향(香) 항아리이다. 포푸리(Pot-pourri)는 여러 향료를 배합해 방안에 놓아두는 단지 또는 항아리를 말한다. 루이14세 무렵 프랑스는 유럽 최대의 향료 소비국이었다. 실내에 좋은 향내를 내기 위한 여러 도구가 고안됐는데 포프리도 그중 하나였다.
로즈 드 퐁파두르를 대표하는 포프리 향(香)항아리
퐁파두르 부인의 의뢰로 배 모습을 한 포푸리가 제작됐다. 이탈리아 출신의 금은세공가로 방센느 시절부터 디자인을 맡았던 장-클로드 뒤플레시(Jean-Claude Duplessis 1695-1774)가 만들었다. 1760년에 12개가 만든 것 중 현재 10개가 남아있다. 콩데 집안의 8대 당주인 앙리조셉 공도 이를 하나 구입한 것으로 전한다. 당시 구입가격은 1,200리브르였다.
퐁파두르 후작부인 시대부터 세브르에서 만든 도자기는 모두 박물관 2층에 전시돼 있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영광의 홀 중앙에 놓인 3미터 높이의 백자항아리 넵튠(le vase de Neptune)이다.
2층 영광의 홀 중앙에 놓인 백자 넵튠항아리
크기가 큰 도자기는 불 속에서 흙이 용융될 때 자기의 흙 무게를 견디지 못해 주저앉는 경우가 흔히 있다. 일정 크기 이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교한 제작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초대형의 이 백자 항아리는 1867년에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 때 세브르의 기술을 과시하기 위해 상징적으로 출품된 것이다.
세브르 이외의 프랑스 여타 도요지에서 만든 도자기를 비롯해 서양 각국의 도자기는 1층에 전시돼있다. 한중일(韓中日)의 동양 도자기 역시 이들과 함께 1층 전시실의 한 쪽을 차지하고 있다.(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