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메뉴타이틀
  • 파리가 사랑한 동양미술관
  • 최열의 그림읽기
  • 영화 속 미술관
  • 조은정의 세계미술관 산책
  • 미술사 속 숨은 이야기
  • 경성미술지도-1930년대
  • 김영복의 서예이야기: 조선의 글씨
  • 한국미술 명작스크랩
  • 도전! C여사의 한국미술 책읽기
  • 왕릉을 찾아서
  • 시의도-시와 그림
  • 근대의 고미술품 수장가
타이틀
  • 45. 치과의사 함석태: '호고(好古)일당'의 나들이
  • 3374      

인곡(仁谷) 박창수(朴昌洙: 1895-1961), 청정(靑汀) 이여성(李如星: 1901-?), 상허(尙虛) 이태준(李泰俊: 1904-?), 근원(近園) 김용준(金瑢俊: 1904-1967), 김기림(金起林: 1908-?) 등 이른바 '好古일당'은 경기도 광주의 분원과 양수리를 답사한 후, 이여성은 『춘추』에 「李朝白磁와 分院」, 김기림은 「分院遊記」를 3권 7호에, 이태준은 「도변야화」를 3권 8호에 게재하였다. 특히 이태준의 글은 1930년대 문인, 화가 등의 고완풍조(古翫風調)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내용이 많은데, 여기에서는 함석태에 대한 부분만을 뽑았다.

 
박목월․조지훈․박두진 공저, 김용준 장정, 『청록집(靑鹿集)』, 을유문화사, 서울, 1946.
      근대의 도서 장정은 근대 문학가와 미술가들 간의 교류의 증거이다. 

…土禪先生(함석태: 필자)께서는 일찍이 분원백자로 반상기를 한 벌 구하시고 여름철 입맛 고달플 때는 그것으로 상을 받으신다 하였다. 미각도 감각이려니 好古士의 결벽이 아니려니와 음식을 장만하는 그 손부터도 자랑할 만한 솜씨라면 먹는 사람 이상으로 한번 품 높은 그릇에 담아 보고 싶을 것이 아닌가.

  …한 서울 안에 제짝끼리 있으면서 떨어진 지 삼십년을 그저 만나지 못하는 슬픈 짝들이 있다. 삼각정 토선 댁 철 문짝과 본정 삼목정 어느 부호의 집에 있는 만세문 들이다. 워낙 광화문 네거리 동북부에 있는 비각의 정면 울타리요 문이었다. 길을 넓히느라고 뜯어 경매할 제 토선께서 그 문짝의 공예성의 우수함을 보고 철공소로 가 부서질 것을 구해 내인 것이었다. 그때는 하숙 시대라 문만도 파출소 뒤에다 여러 달을 두었다 하니 그 거창한 울타리며 석물들까지야 샀어도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울타리와 석물은 어느 철공소로 갔었는데 그 철공소에 별장 문을 맞추러 왔던 진고개 부호가 그 울타리에 흥미를 가진 것이다. 돈이면 으레 될 줄 믿고 토선께 문짝까지 교섭이 왔으나 벽처에 있는 개인의 별장을 꾸미려는 것이라 그 물건에 대한 심경이 양편이 너무나 거리가 있었다. 여러 번 거액으로 탐내 왔으나 토선은 굳게 문짝을 보관해 온 것이요, 저쪽도 별장에는 단념하고 진고개 저의 집 울타리로 써 버린 것이다.
  이 어엿한 由緖가 있는 만세문이 어서 한자리에 어울려 제 모양대로 길이 보전되기를 누가 바라지 않으리오!
  물건도 이렇듯 別離邂逅의 哀樂이 있다. 생각하면 세상 섭리란 渺然할 따름이다.


★세종로 상공에서 종로 1가 쪽을 바라 본 사진. 세로로 비스듬히 보이는 큰 길이 종로이다.
앞쪽 오른편의 흰 건물이 동아일보 사옥이고, 종로 건너편에 흔히 광화문 비각(碑閣)으로 불리는
고종즉위사십년칭경기념비각(高宗卽位四十年稱慶記念碑閣)이 보인다. 1933.(사진 문치장)


함석태의 가규(家規)
『삼천리』 제7권 제2호(1935년 2월 1일)의 「삼천리 싸론」에서 상업은행 두취(頭取: 총재) 박영철, 윤치호, 한상룡, 함석태 등 4인의 가규(家規: 집안의 규율이나 예법)을 소개하였는데, 아래는 함석태 부분이다. 함석태의 철저한 근검절약 정신을 알 수 있다.

의학박사 함석태씨는 절대로 여름에 부채와 흰 구두 흰 모자 흰 양복을 아니 입으며 또 어린아이들을 아무리 늦어도 전차(電車)를 아니 태운답니다. 지금 제2고보(高普: 현 경복고등학교)에 다니는 그 아드님도 그 먼 곳으로 도보(徒步)를 시키지요.


 

편집 스마트K
업데이트 2024.11.12 19:30

  

SNS 댓글

최근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