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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9. 치과의사 함석태: 함석태의 수장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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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1935년 6월에 간행된 월간 종합지 『三千里』 제7권 제5호에서 춘원 이광수는 그의 처 허영숙에게 보낸 편지에서 "세계에 자랑할 온갖 도기 등 미술 공예품을 가지고 있는 인사" 가운데 장택상의 도자기 5점과 김찬영의 도자기 5점, 함석태의 도자기 "李朝染付竹梅長甁, 李朝鐵砂龍筆筒, 李朝白磁四角甁, 李朝辰砂水滴"의 4점을 꼽았다. 이 가운데 '李朝辰砂水滴'을 ‘금강산연적’으로 본다면, 『삼천리』에 언급된 다른 자기들은 자기의 명칭으로 볼 때 『조선고적도보』 15권에 실린 자기들과는 겹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이광수가 언급한 함석태의 도자기 4점은 1935년에 간행된 『조선고적도보』 15권 출간 이후 수집한 것이 아닐까 싶다. 


「조선중국명작고서화전람회」 목록(함석태 부분), 『동아일보』, 1934. 6. 22. 3면.

백자 수집가로 유명한 박병래가 언급한 것처럼 함석태는 도자기와 민속품을 주로 수집한 수장가이지만 그의 서화 소장품도 일제강점기 주요 수장가의 반열에 들 정도였음을 1930년대에 개최된 여러 전람회에 출품한 그의 소장품을 통해 그 대강을 짐작할 수 있다. 1930년 10월 17일에서 22일까지 6일간에 걸쳐 동아일보사 주최로 동아일보사 3층 홀에서 개최된 '조선고서화진장품전람회'에 함석태는 "최북의 금강총도(金剛總圖), 추사의 예서10폭병((隸書十幅屛), 석파대원군(石坡大院君) 란(蘭), 단원(檀園)의 동물(動物)" 등 4점을 출품하였다. 1932년 10월 1일에서 5일까지 5일간 역시 동아일보사 주최로 개최된 같은 이름의 전람회에 함석태는 "단원 김홍도의 구룡폭(九龍瀑), 소치 허련의 산거도(山居圖), 북산(北山) 김수철(金秀哲)의 선면매죽(扇面梅竹)" 등 3점을 출품하였다. 1934년 6월 22일부터 30일까지 9일간 동아일보사 주최, 동아일보사 3층 로 개최된 '조선중국명작고서화전람회'에 함석태는 장택상, 이병직, 김찬영, 김은호, 박창훈, 김영진, 김용진, 이한복 등 당대의 주요한 수장가들과 함께 출품을 하였는데 그가 출품한 작품 수는 모두 10인의 작품 20점이었다.

蓮潭 金明國    仙人圖
峀雲 柳德章    墨竹
謙齋 鄭  敾    金剛全景額
    上同       虎溪三笑
玄齋 沈師正    梅島(圖의 오류)&
    上同       墨蓮
檀園 金弘道    花鳥對幅
    上同       九龍瀑
    上同       老猊掀夔
彛齋 權敦仁    墨蘭 阮堂提跋
阮堂 金正喜    行書七言對聯
    上同       積古堂隸額
    上同       芙蓉秋水比鄰居額
    上同       墨蘭
毫生館 崔北    金剛全景扇面
北山 金秀哲    花卉對幅
大院君         墨蘭對幅

















김홍도, <노예흔기>(늙은 사자), 25.4×30.8㎝, 북한 소재.


전 최북, <금강총도>, 26×72㎝, 평양미술박물관 소장.

  김홍도의 <노예흔기(老猊掀夔)>(북한명: 늙은 사자)는 일어서려는 늙은 사자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배경을 생략하고 그리고자 하는 대상만을 포착한 것은 그의 풍속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이다. 능숙한 솜씨로 붓의 강약과 먹의 농담(濃淡)을 조절하여 사자의 잠재된 운동감을 느끼게 하는 등 대가다운 솜씨를 발휘한 수작이다. 김홍도 특유의 활달한 붓놀림이 인상적이다. 근대의 화가이자 미술이론가인 근원 김용준이 1948년에 간행한 『근원수필』에서 함석태 소장 최북의 <금강산선면>을 언급한 바 있는데, 김용준이 언급한 작품이 평양의 조선미술박물관 소장의 <금강전경선면>으로 추정된다. 최북의 작품 가운데 부채에 그려진 금강산그림은 오직 이 작품만이 알려져 있기 때문인데, 작품 전반에서 최북 특유의 필치보다는 태점(苔點)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등 다소 정형화된 느낌을 준다.


허련, <산거도>(산골 살이), 1851, 34×76㎝, 평양미술박물관 소장.

1932년 10월 동아일보사 주최로 열린 '조선고서화진장품전람회'에 함석태 소장으로 출품된 허련의 <산거도>(북한명: 산골 살이) 역시 평양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으로 추정된다. <산거도>의 다소 거친 듯한 붓질로 표현된 나지막한 산들과 스산한 느낌의 피마준, 산 정상 언저리의 苔點, 울타리 주변의 직선으로 올라온 침엽수 표현 등은 허련의 그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내용이다. 화제는 "山居圖 辛亥秋 睡軒先生 疋鑒 小癡宗下(신해년(1851) 가을에 수헌선생 疋(雅와 같은 글자: 필자)鑒 宗人 소치가 그리다)"로 되어 있는데 커다란 두 그루 소나무 밑의 초가에서 화병을 들고 오는 동자를 바라보는 인물이 제목 그대로 산 속에서 은거하며 사는 수헌선생으로 여겨진다. 허련의 그림은 대체로 까슬하고 소방한 필치로 된 것이 많은데 <산거도>는 문중의 어른께 드리는 그림이어서인지 붓놀림이 단정하다.

 

편집 스마트K
업데이트 2024.11.12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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