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보』는 1936년 4월부터 당시의 신흥부자들을 인터뷰한 「나는 어떻게 성공하였나」를 연재하였다. 이 연재는 흔히 '황금광시대'로 요약되는 1930년대의 배금(拜金)풍조와 부(富)에의 동경을 그대로 보여주는 실례(實例)라 할 만하다.
우리나라 근대의 고미술상 가운데 가장 유명한 상인 가운데 한 명인 배성관(裵聖寬)은 「나는 어떻게 성공하였나」 연재의 14번째(1936년 6월 11일자)에 등장하였다. 서울 남대문에서 배성관상점을 경영한 그는 백자수집가 박병래 선생이 "서울 장안뿐이 아니라 전국 각처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할 정도로 유명하였다. 박병래 선생의 회고에 의하면 배성관상점은 전문적인 골동상이라기 보다 만물상(萬物商)이라는 것이 적절할 듯하며, 화폐 수집가로 알려진 유자후(柳子厚)가 배성관상점에서 혼수에 쓰이는 민예품인 열쇠패의 수집을 많이 했다고 하였다.
배성관은 8․15 이후에도 그 자리에서 계속 영업을 하다가 6․25때에 상점이 큰 피해를 당하고 가족을 모두 잃게 되자 불교에 귀의했다고 전한다. 1964년에는 자신이 수집한 군사관계 유물을 모두 육군사관학교 박물관에 기증하여 '육군사관학교장 기념패'를 받았다.
「나는 어떻게 성공했나」, 『매일신보』 1936. 6. 11
나는 어떻게 성공하였나 14
꾸벅하는 상투가 손님을 끌어 '아나크로니즘'도 훌륭한 상책
고물로 성공한 배성관씨
육십만 인구가 들끓어 문화의 최고수준으로 가는 대경성의 한복판에 상투짜고 짚새기 신은 상인 한 분! 이렇게 말하면 종로 뒷골목 동상전 근처의 '떳다 봐라'를 상상할지 모르나 조선사람 더구나 이러한 '아나크로니스틱'한 양반 살기에는 얼토당토 않은 남대문통 삼정목 큰 길 옆에 쭉 들어선 양옥집 중에서 배성관형제상점이라는 간판을 볼 수 있으니 바로 이 상점의 주인되는 배성관씨가 이분입니다.
그러면 배씨는 대관절 무엇을 하는 분인가? 지금부터 35년전 이분 나이 19세 되던 해부터 산짐승 장사를 시작하였는데, 시골로부터 짐승을 잡아가지고 팔러오는 손님이 때때로 이상한 물건을 가지고 오면 아주 헐한 값으로 고물을 사 두었다 합니다. 그러던 중 본업의 짐승장사 보다 부업의 고물상이 날로 늘어가서 장사 시작한지 십년 후에는 고물상을 정업으로 하게 되었다 합니다.
앞 기사의 사진 부분
"머리를 아니 깎으시는 이유는?"하고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이상한 것을 물어보니
"가끔 받는 질문이올시다만은 뭐 이렇다는 이유야 없지요."하고 손을 머리 위에 얹으며 조금 계면쩍어 하는 모양
"그러나 남대문안 이 큰 길가에서… 아마도 무슨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요?"하고 '상투' 그것이 우선 골동품이 아니냐고 묻고 싶은 것을 억제하였습니다. 그러나 배씨가 이 명물의 상투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데 고물상으로서의 상책이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배씨의 상점 손님은 돈 가진 일본 내지인과 서양 사람이 많은데 그 손님들이 첫째 이 상투에 호기심을 느끼어 올 것입니다. 때마침 기름지고 배부른 서양남자가 마누라인 듯한 말라깽이 여자를 안동(?)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배씨가 꾸벅하고 인사하는 바람에 상투 역시 꾸벅!이 아니 이중 절인가 인사를 받는 서양 사람은 상투가 꾸벅했다 일어나는 것을 보고 빙그레! 아마 고객인 듯합니다.
이강칠 육군박물관장으로부터 '육군사관학교장 기념패'를 받고 있는
배성관 옹(1964. 11. 20)
그러면 파는 것은 대개 이 식으로 팔겠으나 고물의 수집은 어떻게 하는지 이분은 보통 고물상처럼 전당국이나 경매장 같은 데에서 사들이지 않고 아까 말씀한 시골사람으로부터 널리 사들이는데 못쓸 물건을 가지고 오더라도 기왕 찾아온 손님이면 그대로 돌려보내지 않는다 합니다. 그래서 배씨는 무엇이든지 고물이면 산다는 소문이 각처로 퍼져서 별별 괴물을 다 가져오는데 그중에는 시골사람 안목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것이 의외로 고귀로운 것이 있어서 그런 때에 한몫을 볼 것입니다. 엽전 한 개에 돈백원이나 가는 것도 있고 청개와 고려자기 등도 비교적 싼값으로 사가지고 많은 이익을 남기며 때로는 고분으로부터 나온 수천 년 전 물건 - 깨져서 버리는 허접 쓰레기에서 의외로 고가가 나옵니다. (사진은 골동품이 가득찬 진열장 앞에 선 배성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