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자매지 『조광(朝光)』 1937년 3월호 특집 '진품수집가비장실역방기(珍品蒐集家秘藏室歷訪記)' 가운데 마지막인 연전(延專: 연희전문학교) 상과(商科) 포스타실 기사를 보고자 한다.
포스터(poster)의 기원은 도망친 노예를 체포하려는 이집트의 포고문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근대 포스터의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포스터는 선전매체로서의 구실을 하게 되어, 모병(募兵)․방첩(防諜) 등의 포스터는 그 위력과 중요성이 사회의 큰 관심사가 되었고 전후 상업 선전분야에 널리 이용되었다. 포스터가 사회적으로 인식 ·평가되면서 그 제작은 종래 화가의 부업 성격에서 벗어나 전문 디자이너의 손으로 넘어갔다.
연희전문 상과에서 포스터실을 두고 포스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게 된 것도 이러한 사조의 반영으로 여겨진다. 1930년대에 포스터의 가치에 주목하여 수집하고 수장실 또는 전시실을 갖추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 인터뷰에 등장하는 임병혁은 연전 출신으로 미국 유니온 대학 상과를 1929년에 졸업한 후 연희전문 상과 과장, 도서관장 등을 지내다 광복 이후 임시 관재총국(管財總局)의 초대 국장에 임명되었다. 임시 관재총국은 미 군정기간 동안 미결된 사항의 처리와 귀속재산 처리법안의 기초가 주요 업무였다. 임병혁은 1949년 9월 수뢰 등의 혐의로 인한 '관재국 사건(또는 '임병혁 사건)' 공판에서 2년 6개월 형이 선고되었다.
'인쇄예술의 정화를 모은 연전(延專) 상과(商科)의 포스타실 방문기', 『조광』 1937. 3월 호. 46-47쪽.
인쇄예술의 정화를 모은 연전(延專) 상과(商科)의 포스타실 방문기
조선은 물론이요 세계 각국의 ‘포스타’를 수집하여 인쇄예술의 정화를 자랑하는 연전(延專) 상과(商科)의 포스타실을 찾게 되었다. 임병혁(林炳赫) 선생의 안내로 실내에 들어가니 사면 벽이 좁아라고 울긋불긋한 포스타가 실내를 채워있다. 얼른 눈에 띠는 것은 천일영신환(天一靈神丸) 포스타와 '일립(一粒)의 맥(麥)'이라는 하천풍언(賀川豊彦)씨의 책 광고와 붉은 물이 뜩뚝 흐르는 오렌지 밀크 포스타와 창공에 네 활을 뻗치고 호기 있게 떠가는 일본항공수송회사의 비행기 포스타와 '싱거 미싱'의 포스타와 또는 미국 딸라 기선회사의 '파나마' 풍경 포스타 등이 이채를 발하고 있다. 기자는 실내를 대강 둘러보고 임 씨를 향하여 “포스타를 수집하신지가 몇 해나 되셨습니까?”하였더니 임씨는 겸손한 태도로 “삼 년 전부터 시작했습니다. 아직 처음이니까 별로 볼 것이 없지요.”하고 말씀하신다.
“매수는 일천 이 백매 가량 되고 종류는 십종으로 분류했습니다.”
“그 종류를 말씀해주시오”
“제 일은 일반상품으로 분류하고 제 이는 식료품으로 분류하고 제 삼은 도서잡지로 분류하고 제 사는 의약으로 분류하고 제 오는 금융보험으로 분류하고 제 육은 교통통신이요 칠은 사회교육이요 팔은 스포츠요 제 구는 음악연극이요 제 십은 잡종으로 분류했습니다.”하고 일일이 설명하신다. 일반상품 중에는 밀크와 초콜렛 등이 있고 교통통신 중에는 소비에트의 여행포스타가 이채를 가지고 있고 금융 포스타 중에는 소녀들이 금융조합기를 들고 그 아래는
앞 사진의 포스터 부분.
계림(鷄林)의 아침 하늘 맑게 개었네
반공(半空)에 빛나도다 우리조합
잊지 마세 자조(自助)와 공영의 정신
모두 이제 다함께 이 깃발아래…
이러한 노래까지 써져 있는 포스타가 있다. 기자는 시를 바라보며
“이 포스타 실 중에 가장 진기한 것이 어떤 것입니까?”하였더니
“뭐 진기한 것이 있습니까? 조선에는 인쇄술이 발달되지 못해서 별로 볼만한 것이 없고 일본 내지(內地)에서 오는 것이 좀 볼 만한데 대만박람회 포스타 등은 꽤 볼만 하외다. 그리고 남만주철도회사에서 만드는 포스타도 가장 볼만한 것이 많더군요.”하고 일일이 실물을 보여주시며 설명하셨다. 청공(靑空)에 떠오르는 학을 그린 대만박람회 포스타나 만주광야를 달리는 아세아호의 웅장한 모습을 그린 만철(滿鐵) 포스타 등은 꽤 볼만하다. 그리고 미국과 독일의 담배 포스타도 꽤 훌륭한 것이 많다. 임 씨는 말을 계속하여 “여기서는 포스타 뿐이 아니고 플드, 비라, 포장지, 렛텔 등도 수집합니다.”하고 친절하게 실물을 일일이 보여주신다. 플드는 레코드회사의 월보(月報)같은 것으로 몇 십종 있고 비라와 포장지도 몇 백종 있으나 그리 볼 만한 것은 없다. 다못 렛텔에 있어서 석약 표지를 몇 천종 모았는데 그 중에는 형형색색의 이상야릇한 것이 많다. 대부분이 식당, 다점(茶店), 카페 등에서 만든 것으로 모두 자기선전에 사용한 것이다. 기자는 실물을 일일이 구경하고
'귀속재산 - 임시 관재총국', 「비화(秘話) 한 세대(世代)」(30),
『경향신문』 1977. 11. 4 제일 위 사진이 초대 관재총국장 임병혁.
“연전에서 포스타를 모으시는 진의가 어디 있습니까?” 하였더니 임씨는 빙긋이 웃으며
“우리 학교 상과에 광고과가 있는데 말하자면 광고과가 있는 이상 광고에는 포스타가 중요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까닭이지요.”하고 말씀하신다. 기자는 농담 비슷이
"연전 상과를 나오면 포스타를 썩 잘 그리겠군요“ 하였더니 “글쎄요. 모두 자기의 천분이 있지요.”하고 씨 역(亦) 웃으신다. 기자는 씨에게 사의를 표하고 그곳을 나오게 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