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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 일제시기의 미술시장 (2): 도굴과 매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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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근대기에 있어서 도자기의 도굴과 밀거래가 전국적으로 확산된 시기는 대략 1910-12년 전후한 시기 이후로 추정된다. 1910년대에 점차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도굴은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확산되었다. 이른바 ‘대난굴(大亂掘)시대’의 시작이다. 1922년에 일본인 골동상 들에 의해 조직된 미술품 경매회사 경성미술구락부(京城美術俱樂部)를 두고 조선백자 수장가로 유명한 수정(水晶) 박병래(朴秉來: 1903-74) 선생이 “고려청자 도굴 붐에 편승하여 골동의 원활한 유통을 목적으로 설립된 것”이라고 한 것도 과언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경릉 도굴 흔적, 『대정 5년도(1916) 고적조사 보고서』
(정규홍, 『유랑의 문화재』, 학연문화사, 2009, 16쪽)

골동품거래 호황기
여기에 1930-40년대의 기간을 ‘골동품거래 호황기’로 추가할 수 있을 듯하다. 이 시기는 ‘만주 특수’와 ‘황금광시대’로 요약되는 투기의 시대였다. 1930년 1월부터 일본이 금본위제로 복귀하면서 총독부가 추진한 산금정책(産金政策)에 따라 한반도에 금광개발 열기가 불어 닥쳤고 금값이 폭등했으며 1931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만주침략으로 1930년대 중반에 본격적인 만주 특수가 일어나 주식이 최고의 호황을 맞게 되었다. 당시 식민지 민중들의 민생은 도탄에 빠져 있었지만 일부 자본가들은 호황의 극을 달렸다. 이와 같은 사회상 속에서 골동수집 열기는 고조되었고 경성미술구락부는 활성화되었다.

  일제시기의 고미술품 수집 및 유통은 골동상의 ‘도굴’과 ‘수집활동’, ‘자발적인 매매’로 대별된다. 당시 땅속을 뒤져서 고미술품을 파오는 자 곧 도굴꾼을 ‘호리다시(堀出: ほりだし)’라고 불렀는데 이는 땅을 판다는 의미의 글자인 ‘堀’의 일본발음이 ‘호리(ほり)’인데서 비롯된 것이다. 호리다시야말로 골동을 “물어오는”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이들 호리다시가 '직업적인 도굴단'인데 비하여 수집활동은 한국인 동자를 거느리고 시골을 돌아다니며 헐값에 물건을 사오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들을 ‘가이다시(買出: かいだし)’라 부르는데 ‘합법적 거래’의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회유와 사기로 점철된 일종의 사기성 상행위라 할 수 있다. ‘자발적인 매매’는 물건 소유주가 자신의 물건을 직접 골동상에 들고 와서 매매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이 경우 역시 골동상에 의한 회유와 사기적 요소가 다분히 있지만 물건을 가져오는 소유주의 자발성에 비중을 둔 표현이다. 

'낙랑 고분 도굴 중 생매장', 『동아일보』,
1928. 10. 5.
'귀금속에 눈이 어두워 낙랑시대 고분 도굴',
『매일신보』, 1936. 7. 8.

호리다시, 가이다시, 요보, 나까마
일제시기 당시 일본인 골동상에 자발적으로 물건을 팔러 오는 조선인들을 비하하는 단어로 ‘요보’가 있다. 이 비칭(卑稱)은 일본인 연구자 나가노 세이고(中野正剛)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여보는) 상대방을 부르는 말이지 결코 모멸적인 말은 아니다. 내지인[일본인]이 이 말을 조선인에게 할 경우에는 어조에 일종의 모멸과 협박을 내포”한다. 당시의 골동계에서 '요보'는 골동에 대한 지식도 없이 골동매매를 하는 조선인들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일본인들이 먼저 시작한 호리다시와 가이다시는 그 수하에 따라 다니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점차 물려받았다.

호리다시와 가이다시를 한 단계 지나 흔히 '나까마(仲間: なかま)'라 부르는 거간(居間)이 있다. 거간이 호리다시나 가이다시보다 지체 등이 낫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식견이 높은 고급 거간은 상당한 대접을 받았다. 거간 위에 좌상(坐商)이 있는 셈인데, 거간과 좌상 모두 단골 수집가를 갖는 경우가 많았다. 장택상(張澤相)과 고급거간 유용식(劉用植), 전형필(全鎣弼)과 온고당(溫古堂) 주인 신보기조(神保喜三)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편집 스마트K
업데이트 2024.11.12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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