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과 다음 글에서는 필자가 우리나라 근대의 수장가 및 미술시장사 등에 관심을 갖게 된 과정에 대하여 서술하고자 한다. 일제시기 경매도록을 추적하다가 본의 아니게(?) 이른바 '안견논쟁'을 종식시킨 과정은 이 방면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도 흥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먼저 전제할 것은 이 글의 제목에도 '논쟁'이라 썼지만 '안견논쟁'은 논쟁이 아니다. 논쟁이라 불리기 바라는 이들에 의해 그동안 그렇게 불려왔고 또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논쟁 비슷해 보여서 그렇게 사용되고 있을 뿐 결코 논쟁이 될 수 없다. 논쟁의 사전적 정의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각각 자기의 주장을 말이나 글로 논하여 다툼"인데 반대되는 어떠한 증거에도 승복하지 않음은 그저 우기기 또는 모함이기 때문이다. 이 논쟁아닌 모함으로 인하여 안휘준 선생의 학자적 양심과 명예는 손상될 뻔했고, 미술사학계는 권위에 도전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서 논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그동안의 관성과 함께 아직도 논쟁으로 여기고 있을지 모르는 분들의 기억에서 떠올리기 쉽게 하기 위함 때문이다.
「7월 안견의 달 맞아 기념전시 학술행사 학계-재야 작품 진위 논쟁 예상」, 『문화일보』, 1994. 7. 10
기자촌의 터줏대감
1991년의 일이다. 당시 미술사학과에서 석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던 필자는 한 선배의 전화를 받았다. 어느 집에 가서 촬영을 할 예정인데 도와줄 수 있겠느냐는 부탁이었다. 한마디로 사진촬영을 하는데 조수로 도와달라는 것이었는데, 아무리 학위논문 준비가 바빠도 지엄하신(?) 선배님의 말씀은 거절하기 힘든 것이었고 또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도 있어서 발걸음이 무겁지 않았다.
지하철과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찾아간 기자촌은 60-70년대 산동네로 다시 찾아간 듯했다. 한편으로는 옛집에 온 듯한 편안함과 한편으로는 잊고 싶은 ‘저개발의 기억’을 반추하게 해주는 공간이었다. 물어물어 찾아간 집은 당시에도 기자촌에서 얼마 남지 않은 전직 ‘기자의 집’이었다. 낡은 단층집의 삐걱거리는 쇠대문 옆에 달린 벨을 누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열린 문을 통해 들어가니 풀이 우거진 마당 한 귀퉁이에 돌확 등 석물이 널려 있었다. 정문인지 쪽문인지 분간이 안가는 현관으로 들어가자 산더미처럼 쌓인 책과 CD, 그림을 뒤로 하고 단단한 체구의 노신사가 맞이해 주셨다. 모 일간지 사회부장을 지내신 백순기 선생님이셨는데 백발과 백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잘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 빙긋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마당에서 바라 본 백순기 선생님 댁, 지금은 은평뉴타운이 되어 헐렸다.
뒷산에서 내려다 본 백순기 선생님 댁
백순기 선생님은 손꼽히는 추사 전문가이자 그림과 음악에 관해서도 조예가 깊은 분이셨다. 정계, 학계, 예술계를 넘나드는 인맥과 화려한 과거의 추억을 뒤로하고 이젠 차, 음악과 함께 여생을 즐기는 멋쟁이 신사분이 따라주는 보이차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는데 불쑥 책 뭉치를 꺼내셨다. 얼핏 보아도 세월의 연륜이 켜켜이 쌓인 책들은 일제시기 당시 조선 유일의 경매회사인 경성미술구락부(京城美術俱樂部)에서 펴낸 ‘경매도록’들이었다. 책의 크기는 작고 종이는 낡은데다 사진품질도 좋지 않았지만 페이지를 넘기며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30-40년대 경매회에 출품되었던 무수한 작품들이 각 페이지마다 빼곡히 들어차 있었고 지금은 그 행방을 알 수 없는 작품들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경매도록과의 대화
이른바 ‘개안(開眼)’을 한 기분이었다. 그때까지 근대에 출간된 한국미술사 관계 자료가운데 작품사진이 실린 도록은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에서 나온 『조선고적도보』나 서양인들의 기행문 또는 정부간행물 등을 제외하면 그 존재자체가 없는 줄 알았던 천박한 식견의 필자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경매도록을 잘 모아 자료집을 만들면 지금은 그 행방을 알 수 없는 여러 작품을 사진으로나마 확보할 수 있고 근대의 미술 감식 수준을 확인할 근거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일제시대 경매도록을 찾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국공립도서관을 뒤지는 작업은 기본으로 하고 인사동 골동가와 수장가를 수소문하는 것이 일과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다가 고미술전문가이자 수집가인 황정수 선생을 만나 의기투합하여 자료 수집에 속도가 붙었고 함께 공저로 책을 내기로 하였다. 경매도록을 수집하고 여러 일을 진행하는 데에는 문우서림 대표 김영복 선생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일제시기 경성미술구락부에서 간행한 경매도록의 표지와 안쪽 부분.
대개 1930년대에 발간되었으며 크기는 20×15㎝ 내외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근 10여년이 넘게 일제시대 경매도록을 찾는 작업을 한 셈인데 어느 정도 분량이 되자 출판사를 알아보았지만, 마침 IMF사태를 막 지난 상황에서 도판만 수천 장이 되는 자료집을 출간하겠다는 출판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이화여대 교수이자 한국미술연구소장이신 홍선표 선생님의 후의로 출간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공예품과 조각 등을 제외하고 글씨와 그림만 출간하는 것으로 계획을 축소하여 편집 작업을 시작하였다.
사건의 종결
편집 작업이 한창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때다. 2004년 가을로 기억한다. 여느 때처럼 국립중앙도서관 고서실의 위창문고(葦滄文庫)를 살피는 데 어느 도록에서 문자 그대로 ‘뇌리를 스치는’ 무엇이 있었다. 중요한 무엇을 발견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온몸이 긴장되고 등에서 땀이 비 오듯 솟아났다. 그 중요한 게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국립중앙도서관을 몇 번이고 돌다가 택시를 잡아탔다. 다시 돌아와 집에서 가져 온 책의 사진과 위창문고의 경매도록 사진을 비교할 때의 흥분이 잊히지 않는다.
****익스플로러의 '새로 고침' 버튼이나 자판의 F5키를 누르시면 겹쳐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
|
집에서 가져 온 책은 『진짜 가짜의 진실 - 안휘준 교수와의 논쟁실록』(이화문화출판사, 2001. 이하 『진짜 가짜』)이라는 황당한 제목의 책으로서 이른바 ‘안견 논쟁’의 불을 붙인 책이었다. 『진짜 가짜』는 시작부터 끝까지 안휘준 교수를 음해하기 위해 출간한 책이었다. 이 책에 이 모씨(정확히는 세 명의 이씨) 등이 안견의 작품으로 주장하는 <청산백운도(靑山白雲圖)>가 원색으로 실려 있다. 『진짜 가짜』에 실린 사진과 위창문고의 경매도록 사진은 정확하게 일치했다. 오래된 사진이라 다소 흐릿하지만 똑같은 그림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이 사진으로 인해 1994년에 시작되어 미술사학계와 고미술계는 물론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되었던 이른바 ‘안견논쟁’은 종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