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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 서화의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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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미술품경매장에서 경매사가 한 백자를 "지금은 돌아가신 유명한 백자 수장가 ○○선생의 물건이었다"고 소개하자 열띤 경합 끝에 가격이 무려 3배를 훌쩍 넘게 올라간 것을 본 적이 있다. 엎치락뒤치락 반전을 거듭하다가 낙찰되던 순간 손에 땀을 쥐며 지켜보던 경매장 안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큰 환호와 함께 박수를 쳤다. "역시…", "대단해!", "○○선생의 안목이라면, 그럴 수 있지" 등등 가벼운 탄식과 함께.

출처와 유래
고미술품 전반의 매매와 수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는 내용은 '출처'와 '유래'이다. 출처와 유래란 그 물건이 어디에서 나왔고 어떠한 내력을 갖고 있느냐를 뜻하며, 흔히 '족보'라는 속어로 사용된다. 물론 족보 없는 물건도 많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전혀 예상하지 못한 때에 예측하지 못한 장소에서 귀한 물건이 나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사동⋅청계천⋅장한평 등을 떠나지 못하는 흔히 ‘나까마’라는 비칭으로 불리는 거간이나 골동상 들이 그렇게 많은 이유이다.

그러나 전혀 족보가 없는 물건이 어디선가 불쑥 나올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전세품(傳世品: 옛날부터 소중히 다루어 전래된 물건)일 경우 더욱 그렇다. 고미술품을 수장하고 애완하는 전통이 오랜 일본에서는 고미술품을 전세고(傳世古)와 토중고(土中古)라 하여 사람의 손에서 손으로 전래되어 온 것과 땅 속에서 캐낸 것을 나누어 보기도 한다. 전세고란 사람들에 의해 계속 사용되어 오거나 감상의 대상이 된 작품을 지칭한다. 토중고란 문자 그대로 땅 속에서 나오는 것이니 간혹 전혀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상상을 초월한 물건이 불쑥 나와 주위를 놀라게 할 경우가 있다. 고고학이나 전통시대의 미술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단정적 표현을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간혹 기존의 학설과 반대되는 물건이 출토되어 연구자를 곤혹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부내박창훈박사소장품매립목록(府內朴昌薰博士所藏品賣立目錄)』
도4) 장다농(張茶農) 부춘산도권(富春山圖卷), 경성미술구락부, 1940.


캡션 부분

일제시기 당시 조선 유일의 미술품 유통기관이었던 경성미술구락부에서 개최한 경매회에 출품된 중국의 학자 다농(茶農) 장심(張深)의 <부춘산도권(富春山圖卷)>을 통해 미술품이 갖는 족보의 의미를 살펴보자. 장심은 추사 김정희와 교류를 하는 등 조선말기 한국과 중국 간의 문화교류사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작품은 45.4×797.4㎝나 되는 두루마리 그림(橫卷)으로서 일제시기 당시 대표적인 한국인 수장가인 의사 박창훈(朴昌薰)이 1940년에 자신의 물건을 처분할 때에 나온 것으로 지금은 그 소재를 알 수 없다. 일본인이 사갔을 확률이 높지만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해방 후의 혼란과 6⋅25전쟁 등으로 인하여 사라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상하지 못한 어느 구석에서라도 불쑥 나와 주길 간절히 바란다. 부춘산은 한(漢) 나라 엄광(嚴光)의 고사 '자릉수조(子陵垂釣)'로 유명하다. 엄광은 어릴 때 광무제(光武帝)와 함께 공부했는데 광무제가 즉위하자 성명을 감추고 숨어살았다. 광무제가 찾아내어 간의대부(諫議大夫)로 임명했으나 거절하고 부춘산에 은거하며 낚시질로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이후 부춘산은 은일과 사양 등 동양적 관념을 상징하는 존재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당시의 도록에 써진 해설을 보면 다음과 같다. 장심이 김정희⋅김명희(金命喜) 형제에게 낙관을 하여 선물로 준 작품으로서 오란설(吳蘭雪) 등 당시의 유명한 중국학자와 명사들이 제발 및 제첨을 하였으며 김정희의 친구인 권돈인(權敦仁)이 갖고 있었다. 일제시기 당시 최고의 서화가이자 감식가인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이 말미에 제발을 썼고 추사 전문가로 유명한 근대의 화가 무호(無號) 이한복(李漢福)이 상자에 글을 썼다.(款贈阮堂 山泉昆仲之作品 吳蘭雪外當時諸名流 題跋及題簽 權敦仁 藏 吳世昌 末尾 題跋 李漢福 箱書) 장심⋅김정희⋅김명희⋅오란설⋅권돈인⋅오세창⋅이한복⋅박창훈 등에 이르는 현란한 작품내력에 눈이 부실 정도이다. 역사와 전통은 괜히 생기는 것도 저절로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고미술품은 이러한 내용을 기록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소중히 여겨야 작품에 이른바 '관록'과 무게도 더해지게 되며, 이 과정이 역사가 된다.


『부내박창훈박사소장품매립목록』 도7) 담계적독(覃溪赤牘), 경성미술구락부, 1940.

캡션 부분

한 작품 더 보기로 한다. 위 그림은 옹방강(翁方綱)이 추사 김정희에게 보낸 편지글인 ‘담계적독(覃溪赤牘)’이다. 약관의 김정희는 그의 아버지 김노경의 연경사행(燕京使行)에 자제군관으로 동행하여 청의 대학자 옹방강⋅완원 등을 만났다. 이후 김정희를 중심으로 한 한중의 묵연(墨緣)은 조선 말기 한중 문화교류사에서 중요한 내용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 그림 역시 내력이 대단하다. 운현궁은 흥선대원군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화산(華山)은 아직 확실하지 않다. 소궁은 이왕직 차관을 지낸 고미야 미호마쓰인데, 고미야는 서화에도 안목이 높았다. 『청조문화 동전의 연구(淸朝文化東傳の硏究)』를 쓴 최고의 추사 연구자인 후지쓰카 지카시(藤塚鄰)가 모두(冒頭) 제발(提拔)을 위창 오세창이 말미의 제발을 썼다(雲峴宮華山及故小宮李王職次官舊藏 藤塚鄰氏冒頭提拔 吳世昌氏末尾提拔)로 되어 있다. 흥선대원군⋅고미야⋅박창훈으로 유전되다가 후지쓰카와 오세창의 글씨를 받은 것이다. 이 작품 역시 수장내역이 하나의 역사가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편집 스마트K
업데이트 2024.11.12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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