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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볍게 넓게, 진지하게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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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순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그림』 한국문화재보호재단, 2008



조선시대 이전 한반도에서 그려져 내려온 전통회화,  ‘코리안 트래디셔널 페인팅’을 가리켜 부를 때, ‘우리 그림’, ‘우리 옛 그림’ 같은 식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인들에게 친근한 느낌을 주나 보다. 2008년에 초판이 출간된 이 책도 제목에 띄어쓰기 없이 ‘우리그림’으로 부르면서 친근하고 감상할 만한 조선시대 회화 90여 점을 소개했다(같은 제목으로 2021년 여름 개정판이 출간됐다).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그림’이라니, 너무 강요하는 제목이 아닌가 싶다. (현빈은 사진으로 충분하지 사진 밑에 '잘생긴 현빈'이라고 쓸 필요는 없지 않은가.) 예전에는 ‘우리 옛그림의 아름다움’, ‘아름다운 우리그림 산책’, ‘한국의 미’ 같은 제목의 좋은 책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칼럼이나 코너 명으로도 참신한 느낌이 없다. 10여 년 새 한국 전통 회화를 소개하는 책들이 많이 생기기도 해서 비슷비슷한 이름들을 달고 많은 그림들을 소개하고 있는 데다, 웬만한 내용은 블로거들이 모아 올려서 인터넷에서도 쉽게 이미지와 해설을 찾아볼 수 있다. 항상 쉽게 지루해하고 참신함에 홀리곤 하는 나는 회화를 소개하는 대중서에서도 좀더 욕심이 난다.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그림』은 그림 하나당 길지 않은 설명을 붙여 놓은 포맷으로 누구나 읽기 편하고 좋은 책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대표 화가의 대표 작품 위주로만 들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관심을 가지고 한국 미술을 찾아 관람하는 사람이거나 인터넷에서 조선시대 그림 정보를 찾아봐 온 독자라면 새로운 내용이 그다지 많지 않다고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제 막 한국의 옛 그림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용어 사용을 자제하고 기본적인 내용을 모두 다루는 이 책에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서 시험 문제 천 개는 거뜬히 내겠다 싶을 정도로 많은 내용이 들어 있는데, 객관식 문제로라면 좀 맞힐 수 있겠다 싶지만 주관식으로 답을 쓰라면 나 포함 많은 이들이 낙제를 면키 어려울 듯하다. 대학 미술사학과 교수님이 쓰신 책이니 그 학교 학생들은 이 책을 공부하고 기말고사를 봐야할까? 머리 좀 아프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보통의 미술사 대중서들이 시대 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과 달리 1장은 궁중회화, 2장은 문인의 회화, 3장은 직업화가들의 그림을 다루고 있고, 각 장 안에서도 시대가 다소 왔다갔다한다. 조선시대의 그림으로 한정하고 있으며 안견 등 많이 남아 있지도 않은 조선 초기와 중기에 쿼터를 주거나 하는 일 없이 과감하게 생략하고, 각 분야를 대표하는 그림들을 일정한 기준으로 선정해 그 하나의 작품에 대해 대응 설명이 한 꼭지를 이룬다. 설명은 그림의 겉모습을 대략적으로 기술하고 묵법과 필법, 화면 구성, 화가에 대한 정보, 그림이 그려지게 된 배경, 그림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 그림과 관계된 이야기 등을 스토리텔링하는 내용이다. 어렴풋하게 알고 있던 것들을 길지 않게, 명쾌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정리해 준다. 


기록화로 분류되어 1장 궁중회화에 포함된 이성린(1718-1777)의 <사로승구도>


그림 선정에 있어서는 일반인이 다가가기 쉽고 우선적으로 알아두었으면 하는 것들을 골랐을 것이라고 추측되는데 확실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일정 기준이 있었음이 느껴진다. 일단 완성도가 있어야 했던 것 같고, 개성이 있거나, 전형적인 그림이어도 작가의 스타일을 설명해 준다거나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고,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주제와 제재, 그리고 적당한 설명을 곁들이면 보다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한 그런 좋은 수업 재료들을 세심히 골랐다.

수업재료, 하니 딱 그렇다. 책을 다 읽고 나면 한 학기 문화센터 강의를 성실하게 들은 느낌이랄까. 일단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단행본으로 만들어지게 된 계기가 문화재청 산하기관(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영인보급하던 옛 그림 각 작품에 대한 해설서를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에 일반인이 감상하기에 좋은 그림들이 중심이 된 것이 당연하다. (지금이야 인터넷에도 출력물도 넘쳐나지만 숨은 조선시대 회화 작품들을 감상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20세기말 영인본들은 전국을 순회전시했다고도 한다.) 

큐레이터가 주제에 맞게 전시할 작품들을 고르고 관람자의 동선을 고려해 작품을 배치하듯이, 이렇게 작품들을 이어붙여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글에서는 선택과 순서 배치가 무엇보다도 비중이 클 것이다. 현실 전시에서의 큐레이팅은 사실 준비 기간이나 대여의 문제, 기술적 문제, 공간 문제, 비용 문제 등 때문에 의도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책에서는 자유도가 보다 큰 만큼 선택의 폭도 크고, 무엇을 어떤 식으로 보여주고 그 그림에서 무엇을 이야기할지 그 경우의 수가 많아진다. 

'궁중화'와 '문인화'로 묶인 것이 각각 23작품이고, '직업화'로 묶인 작품이 45작품이다. 이렇게 분류한 데는 그림의 사회적 기능과 제작층의 차이, 제작의도 등 정치사회 및 문화적인 요건을 반영했다고 했다. 그림의 주제의식과 그에 따른 표현의 차이 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같은 시대, 같은 종류의 관념적 산수화라도 양반이 그린 것은 2장에, 화원 출신이 그린 것은 3장에 실리게 되기도 한다. 


겸재 정선이 그린 관념산수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3장 직업화가에 들어 있는 나옹 이정(李楨)의 의송망안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최대한 다양하게 작품들을 선발했는데, 가장 많은 작품이 뽑힌 것은 겸재 정선으로 첩을 하나로 쳐도 8건이 선택을 받았다. 윤두서의 그림이 5점, 강세황 4, 김홍도와 이인문, 이한철이 3, 심사정이 전칭작을 포함해 3점의 작품이 들어 있다. 안견, 최북, 신위, 신명연, 김정희, 김수철 등 다루지 않은 작가가 꽤 있고 조선 회화의 대표적 작품으로 꼽는 몽유도원도, 동자견려도, 세한도 등이 등장하지 않는다. 시대를 제한했기에 고분벽화나 불교 그림이 제외되었고, 설명하다 보면 그 내용이 길어지거나 어려워질 만한 그림들도 없다. 그림 하나 당 두어 페이지의 짧은 해설을 곁들인 단순한 형식이지만 조선시대의 사회와 문화, 또 정치적 사상적 배경에 대해 거의 빠짐없이 건드렸다는 느낌이 든다.


윤두서 <채과도> 종이에 담채, 30.0x24.2cm, 개인


짧기에 아쉽기는 하다. 그래서 읽다보면 다양한 질문들이 생겨난다. 서술이 간략하니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을 것 같다. “(남계우, 홍세섭 등 19세기 조선 그림에는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으나) 조선 왕조의 멸망으로 회화적 변천으로 완결되지는 못했다.” 전통 회화가 죽을 쑨 것이 조선 왕조의 멸망이 원인일까? “(장식적 화훼화의 전개 등 19세기 화단의 양상을 보면) 주제, 의식, 화풍에서 근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근대의 양상이라고 단순하게 말할 수 있을까? “직업화가의 그림들은 주문자, 수요자, 감상자의 요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정선을 포함한 문인들은 백퍼센트 자기 자유 의지로 그림을 그렸을까? “이러한 그림을 보고서 서양적인 사실성을 운운하면서 계절감, 인체의 데생력이 떨어진다고 하는 것은 모르는 소리이다.” 사실적인 표현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방어할 필요가 있을까.

“윤두서 생전에는 정선보다 윤두서 명성이 웃돌았다.” “19세기의 김정희도 윤두서는 인정했으나 정선은 절대 배우지 말라고 충고했다” 나 "(조선시대 대부분의 시기 그려진 많은 그림들은)오랫동안 유통된 도식화된 구성을 선호"했고, 이는 “관습을 통해 모두가 이해하는 그림을 그리기에 유리한 방식”이라는 것 등의 글을 읽으면서 그 당시의 시각으로 환기시켜 현대인의 눈으로 오해될 만한 소지를 불식시키려는 의도가 느껴졌다. 내멋대로 부제를 하나 달 수 있다면 “조선 화가들을 위한 변명”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너무 단절되어 버린 우리는 옛날의 화가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대중에게 한국화의 미덕들을 설명하고 기본적인 지식을 쌓아 관심과 사랑을 더할 수 있게 했으며 평균의 사람들에 맞도록 깊이와 난이도 조절에 애를 많이 쓰셨다. 미술사학 용어를 사용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원체화풍, 이곽파, 절파, 남종화, 피마준, 절대준 같은 용어는 잘 모르더라도 느낌상 알 수 있도록 다듬고 꼭 필요한 부분만 쓰려고 하신 듯하다. (몰골법 정도만 알면 된다.) 예나 지금이나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 감상 포인트를 무지렁이 우리들의 안목으로도 알아볼 수 있도록 설명하면서도, 당시 사회의 맥락으로 조금씩 끌고 들어가 개념을 바로잡아주고자 했다. 제대로 이해하자면 어나더 레벨이 필요한, 조선 사회를 지탱하던 이데올로기와 강대국 옆에서 낮은 자세로 문화를 받아들였던 환경 때문에 제한되었던 그 때의 회화에 대한 설명이자 변명이다.
SmartK C.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21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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