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와 히틀러가 그린 풍경화
Adolf Ziegler, The Four Elements 1937
1937년 뮌헨에서 열린 <위대한 독일 미술전>(Nazi exhibition of Entartete Kunst)과 <퇴폐 미술전>(Ausstellung der entarteten Kunst)은 미술을 좋은 미술과 나쁜 미술이라는 이분법으로 확실하게 구분한 전시였다. 나치의 미학과 이념적 경향의 그림을 그리던 화가 아돌프 지글러가 조직한 <위대한 독일 미술전>은 그리스 고전주의 기법을 모범삼아 건장한 아리아인 남성과 온화한 여성의 이미지를 표현한 조각상을 주로 선보였다. 이는 히틀러의 ‘확고한 시대정신을 표현하는 것이 예술가의 임무’라는 파시즘적 사고를 대변하는 것으로 1935년 나치 선전상인인 파울 요제프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1897~ 1945)를 통해 모든 미술가들에게 인종차별주의에 바탕을 두고 아리아인의 우수성을 찬양하는 작품을 제작할 것을 지시하면서 생겨난 양식이다. 조각과 건축은 주로 신고전주의 기법을 차용했으며 회화에서는 농민·노동자의 투쟁적 생활상을 강조하는 사회적 리얼리즘을 추구했고 내용적으로는 승리, 애국심, 투쟁, 혁명 등의 기념비적 성격이 강한 것들이 주를 이루었다.
뮌헨에서 열린 퇴페미술전 입장을 기다리고있는 관객들
한편 압수된 그림들로 구성된 <퇴폐 미술전>은 나치즘의 지도이념과 미학에 반하는 작품으로 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모욕하듯 진열했다. 사회를 어지럽히고 사람들을 타락시킨다고 조롱받은 퇴폐미술은 주로 표현주의, 다다이즘, 신즉물주의, 초현실주의, 입체파, 야수파 등 당시로서는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미술이 주를 이루었다. 나치는 총 112명의 퇴폐미술가 명단을 만들어 관리(?)했다. 오토 딕스(Otto Dix, 1891~1969), 막스 베크만(Max Beckmann, 1884~ 1950), 샤갈(Marc Chagall,1887~1985), 콜비츠(Käthe Kollwitz, 1867~ 1945), 파이닝거(Lyonel Feininger, 1871~1956), 그로츠(George Grosz, 1893~1959),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 코코슈카(Oskar Kokoschka,1886~1980), 마르크(Franz Marc, 1880~1916), 뭉크(Edvard Munch,1863~ 1944), 피카소(Pablo Picasso, 1881~ 1973), 클레(Paul Klee, 1879~1940), 에밀 놀데(Emil Nolde, 1867~1956),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1880~1938) 등 오늘날 20세기 미술의 거장들이 당시에는 퇴폐미술가로 낙인찍혀 그림이 압수되었고 불에 태워졌으며 조롱거리가 되어야했다.
퇴폐미술전은 이런 작가들의 몰수된 그림들로 구성되었는데 이들 그림을 비방하는 플래카드와 팸플릿이 난무하는 가운데 1937년 뮌헨을 시작으로 베를린, 뒤셀도르프, 프랑크푸르트 등 독일의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열렸다. 당시 몰수된 그림의 수는 100여 곳의 미술관에 소장된 1400명의 작가가 그린 그림 약 1만 7천 점에 달했다. 이 중 4천 점 이상이 1939년 5월 베를린 소방서에서 불에 태워졌고, 약 2천 점은 그해 6월 뤼체른에서 열린 경매를 통해 해외로 흩어져 나갔으며 판매 대금은 전쟁비용이나 또는 독일적인 예술품을 구입하는 비용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퇴폐미술을 처분하는 데는 베른하르트 뵈머(Bernhard Boehmer,1892~1945), 카를 부흐홀츠(Karl Buchholz,1901~1992), 힐데브란트 구를리트(Hildebrand Gurlitt, 1895~1956)와 페르디난트 쉘러(Ferdinand Schuler) 등 화상의 역할이 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