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준모(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영화 모뉴먼츠맨(2014)은 바로 이들의 활약상 중 특히 알타우제 광산과 노이슈반슈타인 성에서 이들 작품을 찾아 탈출(?)시키는 일을 담고 있다. 전쟁영화라고 하지만 통쾌한 전투장면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멋지고 바른 말 잘하는 개념배우 조지 클루니(Geoge Clooney,1961~ )가 감독과 제작, 각본에 주연까지 맡았는데, 실존인물 8명을 연기하는 영화의 출연진은 실로 호화판이다. 조지 클루니는 미술사학자 지휘관으로 분해 전직 미술관장인 지적인 그레인저(맷 데이먼 분, Matt Damon,1970~ ), 건축가 캠벨(빌 머레이 분, Bill Murray, 1950~ ), 화상인 클레르몽(장 뒤자르댕 분, Jean Dujardin, 1972~ )을 이끈다. 여기에 히틀러가 약탈한 예술품들이 숨겨진 장소에 대한 결정적 열쇠를 쥐고 있는 클레어 시몬느 역을 ‘엘레강스의 교과서’ 케이트 블란쳇(Cate Blanchett, 1969~ )이 맡아 그 매력을 최대한 발산한다. 여기에 조각가 윌터 가필드(존 굿맨 분, John Goodman, 1952~ ), 예술품 감정가 프레스톤 셰비츠(밥 발라반 분, Bob Balaban, 1945~ ), 예술 애호가인 도널드 제프리스 중위(휴 보네빌 분, Hugh Bonneville, 1963~ ) 등 쟁쟁한 스타들이 출연해서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영화 <모뉴멘츠 맨-세기의 작전>의 한 장면
영화는 로버트 M. 에드셀(Robert Morse Edsel, 1956~ )의 같은 이름의 논픽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는 피렌체를 여행하면서 어떻게 많은 전쟁들을 이겨내고 이런 역사적인 유물과 예술품들이 살아남아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을까라는 다소 엉뚱한 호기심에 빠져 연구를 하다가 모뉴먼츠 맨들의 실체를 접하고 이 일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사실 상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영화 속 통역관 해리 에틀링거(디미트리 레오니다스 분, Dimitri Leonidas, 1987~ )는 지금까지 생존해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한데, 원래 독일의 칼스루에(Karlsruhe)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13살이 되어 유대교 전통 성년식인 바르 미츠바(Bar Mitzvah)를 치른 직후인 1938년 9월, 그의 가족은 물론 일가친척 모두가 모든 재산을 독일에 두고 뉴욕으로 피난을 왔다. 그들은 전쟁과 학살을 피해갔지만 그해 11월 나치는 독일 내 유대인들을 내 놓고 탄압하고 핍박하기 시작했다. 소위 인종청소를 위해 7000여개의 유대인 상점, 200여 곳의 유대인 회당을 잿더미로 만들었고 살아남은 사람은 수용소로 강제 이주되었다. 해리의 집 근처에는 칼스루에 미술관이 있었고 렘브란트의 자화상(Self-portrait, 1645~48)은 이곳의 대표적인 소장품이었다. 하지만 1933년부터 나치는 유대인들의 미술관 출입을 금지한 때문에 오직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 들었을 뿐이다. 그런 해리가 이 자화상을 만나게 되는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에 징집되어 독일어를 안다는 이유로 모뉴먼츠 맨에 배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MFAA 소속으로 독일의 소금 광산 하일브론(Heilbronn)에서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발견하고 이를 회수하여 전후 다시 칼스루에 미술관에 돌려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부분은 현실과 영화가 중첩되면서 사실적인 느낌을 더해주는 장면이 된다.
또 영화에서 쥬드 폼의 큐레이터로 등장하는 클레어 시몬느의 실제 인물은 당시 인상파 미술품들을 주로 소장하고 전시했던 주드 폼 미술관의 자원봉사자 레지스트라(Registrar) 일을 하던 로즈 발랑(Rose Valland, 1898~1980)이다. 그녀는 소위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 나치의 괴뢰정권인 비시 정권 아래 4년 여 동안 주드 폼에서 일했다. 그의 이런 전력을 보면 부역자에 다름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나치가 예술품을 가져갈 때마다 화가와 출처를 적어두었고, 서류를 몰래 복사하기도 했다. 그가 이렇게 작성한 약탈예술품 리스트는 훗날 이 예술품들이 다시 주인을 찾아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소설 <모뉴멘츠 멘>의 표지와 작가 로버트 에드셀
영화 속 통역관 해리 에틀링거(디미트리 레오니다스 분, Dimitri Leonidas, 1987~ )는 지금까지 생존해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한데, 원래 독일의 칼스루에(Karlsruhe)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13살이 되어 유대교 전통 성년식인 바르 미츠바(Bar Mitzvah)를 치른 직후인 1938년 9월, 그의 가족은 물론 일가친척 모두가 모든 재산을 독일에 두고 뉴욕으로 피난을 왔다. 그들은 전쟁과 학살을 피해갔지만 그해 11월 나치는 독일 내 유대인들을 내 놓고 탄압하고 핍박하기 시작했다. 소위 인종청소를 위해 7000여개의 유대인 상점, 200여 곳의 유대인 회당을 잿더미로 만들었고 살아남은 사람은 수용소로 강제 이주되었다. 해리의 집 근처에는 칼스루에 미술관이 있었고 렘브란트의 자화상(Self-portrait, 1645~48)은 이곳의 대표적인 소장품이었다. 하지만 1933년부터 나치는 유대인들의 미술관 출입을 금지한 때문에 오직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 들었을 뿐이다. 그런 해리가 이 자화상을 만나게 되는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에 징집되어 독일어를 안다는 이유로 모뉴먼츠 맨에 배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MFAA 소속으로 독일의 소금 광산 하일브론(Heilbronn)에서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발견하고 이를 회수하여 전후 다시 칼스루에 미술관에 돌려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부분은 현실과 영화가 중첩되면서 사실적인 느낌을 더해주는 장면이 된다.
모뉴먼츠멘 팀에 회수되는 렘브란트의 자화상
또 영화에서 쥬드 폼의 큐레이터로 등장하는 클레어 시몬느의 실제 인물은 당시 인상파 미술품들을 주로 소장하고 전시했던 주드 폼 미술관의 자원봉사자 레지스트라(Registrar) 일을 하던 로즈 발랑(Rose Valland, 1898~1980)이다. 그녀는 소위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 나치의 괴뢰정권인 비시 정권 아래 4년 여 동안 주드 폼에서 일했다. 그의 이런 전력을 보면 부역자에 다름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나치가 예술품을 가져갈 때마다 화가와 출처를 적어두었고, 서류를 몰래 복사하기도 했다. 그가 이렇게 작성한 약탈예술품 리스트는 훗날 이 예술품들이 다시 주인을 찾아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차대전 중 숨겨져 있던 <모나리자>
히틀러를 피해 루브르의 소장품을 비롯한 많은 미술품들이 숨겨졌다. 모나리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렇게 루브르의 미술품들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유럽지역 예술작품의 약탈을 담당했던 나치의 메테르히니 백작이 핑계를 대며 루브르의 수많은 작품 반출을 차일피일 미뤘던 덕분이다. 나치 정부의 꼭두각시 정부인 비시정권이 임명한 루브르 관장 자크 조라르는 나치에 암묵적인 협력을 하는 척하면서 루브르를 지켰다. 서로 적대적인 관계였던 두 사람이 협력해서 루브르를 지켜내는 업적을 남겼지만 자크 조라르는 모든 기록에서 사라지고, 메테르히니 백작은 이탈리아로 가서 그곳에서 여생을 마쳤다. 이렇게 루브르를 지켜낸 두 사람의 이야기는 <파우스트>로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던 거장 소쿠로프(Alexander Sokurov, 1951~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 영화의 제목은 <프랑코포니아>(Francofonia, 2015). 이 영화는 사건에 집중하기보다는 권력을 가진 남자들과 그들이 예술과 맺고 있던 관계에 더 초점을 맞췄다.
영화 <프랑코포니아>의 포스터
영화 프랑코포니아의 한장면-마리안느와 나폴레옹, 그들은 전혀 다른 가치관과 상징성을 지닌다.
승승장구하던 히틀러는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패전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가 그토록 애지중지 모았던 예술품들을 독일로 반출하기로 마음먹고 여러 곳에 분산 보관되어 있는 예술품들을 거점별로 모으기 시작했다. 그가 예술품을 수집한 기준은 비교적 단순했다. 그는 소위 ‘독일적인 것’에 집중했다. 그래서 “1500년 이후 독일에서 반출된 모든 작품,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혈통 예술가들의 모든 작품, 독일에서 주문제작하거나 완성된 모든 작품, 독일적인 양식으로 간주되는 모든 작품”이 수집대상이었으며, 우선 유대인들이 지닌 작품이 일차 약탈의 대상이었다. 이렇게 히틀러가 독일 민족의 영광을 위해서 예술품을 수집할 때 2인자였던 괴링은 개인적인 욕심으로 예술품을 모았다. 그는 “내 약점 중 하나는 사치품에 둘러싸이기를 좋아한다는 것과 워낙 예술적 기질이 높아 걸작을 감상함으로써 살아 있고 불타오르는 듯 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라고 스스로 회고할 정도로 본인을 르네상스적인 인간으로 여겼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