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3. 다음 장면은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1939년으로 넘어간다. 영화의 배경은 호퍼의 <뉴욕의 극장>이다. 이 그림 속에서 셜리는 영화관의 안내원으로 등장한다.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의 삶이 팍팍해진 때문에 연극배우도 예외 없이 생계를 위해 다른 직업을 선택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라디오에서는 8월 28일 영국과 프랑스가 히틀러와 일전을 겨루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실제로 그해 9월3일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
그림은 화면이 3등분되어 가운데 기둥을 중심으로 왼편에는 영화스크린과 관객들이 그리고 오른 쪽에는 안내원이 벽에 기대서서 생각에 잠겨있고 화면전체에 호퍼 특유의 암울한 듯 따스한 빛이 가득하다. 호퍼는 1점의 그림을 그리기위해 수많은 스케치를 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 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호퍼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부인 조(Josephine Hopper, 1883 ~1968)와 함께 만든 많은 영화관과 연극극장을 찾아 사전조사를 하면서 극장내부와 생각에 잠긴 안내원의 모습을 그리기위해 무려 53장의 스케치를 했는데 안내원은 언제나처럼 그의 부인이 모델이 되어주었다.
에드워드 호퍼 <뉴욕의 극장>New York Movie,1939, 유화, 81.92x101.92cm, MoMA
한때 예술, 연극을 통해 세상의 변화를 꿈꾸었던 동지들이 극단의 흥행 실패와 재정문제, 팀 내 균열, 현실적인 삶을 위해 할리우드 유혹에 빠져 상업영화의 세계로 옮겨갔다. 안내원이 된 셜리는 그들을 겉으론 힐난 해보지만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내 그는 자신을 합리화한다. 할리우드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객석 안내원을 하며 예술적 신조를 지키는 자신이 낫다고 말이다. 여기서 셜리는 내레이션을 통해 지금 상영 중인 영화가 윌리엄 와일러(William Wyler,1902~1981)의 영화 <출입금지>(Dead End,1937)임을 알려준다. 영화는 브로드웨이에서 성공한 연극을 스크린으로 옮긴 것으로 윌리엄 와일러에게 사회파 감독이라는 명성을 안겨 준 작품이기도 하다. 1930년대 공황기 뉴욕 이스트 리버를 경계로 극명하게 갈리는 상류층과 빈민층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문제의 작품이다.
#신 4. 호퍼의 <밤의 사무실>이다.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나오는 라디오 뉴스는 그림이 그려진 1940년 8월 28일 소식을 전한다. 유럽난민을 실은 배가 브루클린에 도착했다는 소식과 독일군이 영국을 공습했다는 2차 세계대전소식 그리고 망명지 멕시코에서 암살당한 트로츠키(Leon Trotsky, 1879~1940)의 장례식이 있었다는 소식을 마치 남의 일처럼 사무적으로 전해온다.
에드워드 호퍼 <밤의 사무실>Office at Night, 1940, 유화, 56.2x63.5cm, 워커아트센터
사무실에서 셜리의 역할은 신문사 광고 영업국의 비서이다. 하지만 실제는 셜리가 그들 극단 그룹 시어터의 연기철학인 메서드 연기를 위해 비서라는 직업을 체험하는 중이다. 호퍼의 그림 즉 영화에서 남자는 여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다. 반면에 비서는 서류를 찾는 체 하면서 실제로는 남성에 더 관심을 보이는 눈치다. 그림 속 여성의 복장이 몹시 관능적이며 남성을 바라보는 눈길도 예사는 아니다. 두 사람은 일하다 말고 늦은 시각 바에 나가 술을 마시고 사무실로 다시 돌아왔다. 퇴근하면서 셜리가 나가자 남자가 두 개의 우산을 챙겨 따라 나온다. 그 다음을 상상하는 것은 관객들의 몫이다.
#신 5. 다음 신은 호퍼의 <호텔 로비>로 이어진다. 영화 속 대사나 다름없는 라디오 뉴스는 1942년 8월 28일 소식을 전한다. 그림의 제작연도와 영화 속 해가 다른 유일한 신이다. 뉴스는 “영국이 독일군에 대항하여 신무기 도입을 검토한다.”는 소식과 “미국에서 전선으로 보내는 배의 선적량을 늘리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 고기 먹지 않는 날을 정할 것을 검토한다.”는 소식 그리고 스탈린그라드전투에 관한 소식을 전한다.
에드워드 호퍼 <호텔 로비>Hotel Lobby,1943, 유화, 103.50x82.55cm, 인디애나폴리스 미술관
호텔로비에서 금발의 여성이 무언가를 읽고 있다. 그리고 투숙객으로 보이는 노부부가 등장해 택시를 부르고 기다린다. 남편은 그새를 못 참아 건너편 금발의 셜리를 훔쳐보고 아내는 그를 책망한다. 금발의 여성이 보는 것은 손톤 와일더(Thornton Wilder,1897~1975)의 연극 <위기일발>(The Skin of Our Teeth)의 대본이다. 대사로 보아 셜리는 하녀 역할을 맡은 것으로 짐작된다. 손톤 와일더는 퓰리처상을 세 번이나 받은 유명작가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 연극의 연출자 엘리아 카잔에 비중을 두고 있다. 엘리아 카잔은 1942년 몽고메리 클리프트(Montgomery Clift,1920~1966)를 기용해서 영화 <위기일발>을 연출해 명성을 얻었다.
브로드웨이에서 연극 연출자로 명성을 쌓은 카잔은 할리우드에 진출해서 영화감독으로도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하지만 1950~1954년 미국을 휩쓴 일련의 반공산주의 선풍 즉 매카시즘(McCarthyism)이 몰아치던 시기, 그는 하원 반미활동위원회에 나가 스스로 공산당원이었다고 고백하고 동료들을 공산당원이라고 발고했다. 이후 그는 미국 연극영화계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혔고, 199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했지만 시상식에서 후배와 동료들로부터 야유를 받아야만했다.
#신 6. 영화는 다시 약간의 암전 후 호퍼의 <아침 태양>으로 넘어간다. 셜리는 잠을 설친 채 아침을 맞아 눈을 떠 창문을 연다. 예의 호퍼의 강한 색채와 빛의 대비가 화면에 가득하다. 이 작품도 호퍼의 아내 조가 모델이 되어주었다. 그림 속 여성은 무표정하고 무감각하게 창밖을 내다본다. 무감각한 듯한 여자의 얼굴과 그림자를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벽은 적막하기만 하다.
에드워드 호퍼 <아침 태양>Morning Sun, 1952, 유화, 101.98 x71.5cm, 콜럼부스 미술관
뉴스는 무심한 듯 소수의 공산주의자들이 미국라디오작가협회를 장악했다는 소식과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이 북한의 서부를 폭격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셜리가 밤새 잠을 못 이룬 이유는 그가 활동하던 리빙시어터가 무대에 올리려던 연극 <위비왕>(Ubu roi) 공연이 무대장치에 발화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소방당국으로부터 공연중지명령을 받은 때문이었다. 1896년 초연된 위비왕은 처음부터 파격적으로 기존 연극의 문법을 파괴하는 대담한 무대장치와 인형같은 배우들의 분장으로 기존연극을 조롱했다. 이후 위비왕은 사회를 비판하고 조롱하고 풍자하는 사회 참여적 연극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매카시즘의 광풍이 사회를 지배하던 시절 미국당국은 이런 연극을 용납할 수 없었다. 따라서 핑계를 대며 공연을 저지했다.
여기에 셜리를 더욱 화나게 한 것은 엘리카 카잔의 배신이었다. 그는 노동조합 결성을 옹호하는 연극 <레프티를 기다리며>(Waiting for Lefty)(1935)에 택시운전수로 함께 출연해 ‘파업이다’를 외치면서 사회문제를 다루어 배우로 성공했다. 그 후 할리우드에 진출해서도 차별이나 혁명 같은 주제의 진보적인 영화로 명성을 얻었던 그가 변절해서 과거의 동지들을 공산주의자로 몰고 신문에 광고를 내 자신을 옹호하고 고발을 독려하는 엘리카 카잔을 용서할 수 없었다. 여기에 실험적인 연극을 하던 체리레인 극장(The Cherry Lane Theater)의 폐관은 셜리를 더더욱 화나게 했다. 1924년, 여류 시인 밀레이(Edna St. Vincent Millay,1892~1950)가 연극계 사람들과 함께 담배창고 겸 담뱃갑을 만들던 공장을 개조해서 새로운 연극의 거점으로 키워나갔던 극장이 문을 닫는다는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연극의 종말을 의미한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 저항하고자 셜리는 다시 거리로 나가 투쟁 할 것을 다짐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