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호퍼는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화가이다. 하지만 그의 사실주의는 카메라 이후 기능을 잃어버린, 대상을 사실처럼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사실주의가 아니라 사진이 할 수 없는 상상력, 감정, 느낌, 생각의 반영, 개념적인 이해 등이 포함된 사실주의 즉 ‘현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중심이 되는 사실주의로 변모한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단조롭고 직선적이며 희미한 음영을 사용해서 평면적인 느낌이 강한 그림이다. 소재는 거개가 일상적인 삶의 공간이지만 공허할 만큼 텅 비어있다. 그리고 그 사이를 빛이 치고 들어가 공간을 채우는데 그 빛은 쓸쓸하고 고독하고, 소외와 외로움에 다름아니다.
호퍼는 이민자들의 나라인 미국의 2~30년대 정황을 특유의 필치로 그려내어 가장 미국적인 화가라고 일컬어진다. 헛헛한 도시에 부평초처럼 떠도는 사람들의 모습을 인공광과 자연광을 교묘하게 교차시키면서 그들의 부박한 삶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단조롭고 직선적이며 희미한 음영을 사용해서 평면적인 느낌이 강한 그림이다. 소재는 거개가 일상적인 삶의 공간이지만 공허할 만큼 텅 비어있다. 그리고 그 사이를 빛이 치고 들어가 공간을 채우는데 그 빛은 쓸쓸하고 고독하고, 소외와 외로움에 다름아니다.
호퍼는 이민자들의 나라인 미국의 2~30년대 정황을 특유의 필치로 그려내어 가장 미국적인 화가라고 일컬어진다. 헛헛한 도시에 부평초처럼 떠도는 사람들의 모습을 인공광과 자연광을 교묘하게 교차시키면서 그들의 부박한 삶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는 처음, 뉴욕에서 상업 미술과 회화를 공부했는데 이때 윌리엄 체이스(William Merritt Chase, 1849~1916)와 리얼리스트 로버트 헨리(Robert Henri, 1865~1929)를 사사했다. 그는 입체파와 아방가르드한 미술이 주를 이루던 시절 파리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지만 별 감동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해 상업화가가 되었지만 짬이 날 때마다 자신의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언제나 무명화가일 뿐이었다. 그는 함께 공부한 조세핀과 결혼했다. 오랜 결혼생활에 곡절도 많았지만 조는 호퍼에게 모델이자 반려로서 그의 예술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함께 했다. 아내를 맞이하고 나서 42세가 되던 해 연 개인전에서 작품이 모두 팔리는 기적을 만난다.
Jo and Ed Hopper, 1927. Courtesy Hopper’s Vermont
이를 계기로 전업화가로 변신하면서 새로운 사실주의 화가로 명성을 쌓아갔고 1933년 뉴욕 모마에서 회고전을 갖게 되면서 그의 명성은 확고해졌다. 하지만 이런 성공에도 불구하고 추상표현주의가 미국미술의 상징으로 자리 잡으면서 스스로 세상으로부터 소외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1967년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소외된 것이 아니었다. 가장 미국적인 정서를 미국적으로 표현했다는 평가와 함께 그의 그림은 미국 대중문화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원천이 되었다. 그의 그림은 화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나 소설가 노먼 메일러(Norman Mailer, 1923~2007), 영화감독 앨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1899~1980)등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 광고와 만화영화 기타 대중문화에서 미국사회를 상징하는 표상이 되었다.
다시 영화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은 1930년대를 시작으로 1960년대에 걸쳐 12번의 8월28일을 보여준다. 당시 불어 닥쳤던 경제공황과 2차 세계대전, 50년대 미국을 강타한 매카시즘 열풍, 60년대 워싱턴의 인종인권 문제와 6.25 전쟁 등 주요한 사건들이 이어지는데, 마치 인터미션처럼 화면이 암전을 이룬 가운데 라디오 뉴스같은 목소리가 독백처럼 들려오면서 역사라는 거대담론에 휩쓸려버릴 것 같은 개인의 삶을 단편적으로 나타낸다. 등장인물이라고는 고작 셜리와 그의 오래된 연인 스티브(크리스토프 배치 분, Christoph Bach, 1975~ )과 몇몇 인물들이 전부인 단순한 구조이다. 대공황으로 스티브는 직장을 잃고 셜리는 연극배우로서의 삶을 포기해야 하는 처지. 화면은 삭막하기 그지없고 기차 지나가는 소리나 거리의 소란스러운 소리, 자동차 경적소리 등이 들리면서 그 삭막함을 청각적인 요소로 채우지만 이는 더욱 더 황량한 느낌을 보태줄 뿐이다.
영화는 호퍼의 1965년 작품 <객실>로 시작하여 <객실>로 끝을 맺어 과거를 회상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주인공 셜리는 그림이 그려진 연대순으로 그려진 작품을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미국사의 흐름과 일치한다. 열차에 탄 여인은 미국의 여류시인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1830~1886)의 시집을 읽고 있다. 디킨슨은 천재 시인이지만 극단적인 은둔형 인간으로 일상적 언어로 사랑과 죽음, 이별과 영혼 등을 소재로 한 명상시를 주로 썼다. 현대인 또는 현대인이 되어가는 사람들의 물질적 풍요에 비례해서 고독과 소외 속으로 빠져드는 에드워드 호퍼와 잘 어울린다. 시집의 표지에는 영화에서 8번째로 나오는 <웨스턴 모텔>이 등장한다.
#신1. 영화는 호퍼의 그림 <호텔방>을 바탕으로 1931년 8월 28일 토요일 파리 시간 밤 11시에 뉴스와 함께 시작된다. 뉴스는 쿠바가 하바나 시민들의 폭동에 대비해 24시간 경비를 강화했다는 소식과 함께 38세의 오스트리아 교사가 수상스키를 타고 영국 해협을 건넜다는 런던발 소식을 전한다. 주인공 셜리 또는 개인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하지만 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것이 뉴스다. 1931년이면 세계는 경제공황으로 모든 국가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였고 일본은 이 경제위기를 극복할 생각으로 만주사변을 일으킨 때이다.
<객실> Chair Car, 1965, 유화, 101.6x127cm, 개인
<웨스턴 모텔>Western Motel, 1957, 유화, 77.8x128.3cm, 예일대학미술관
#신1. 영화는 호퍼의 그림 <호텔방>을 바탕으로 1931년 8월 28일 토요일 파리 시간 밤 11시에 뉴스와 함께 시작된다. 뉴스는 쿠바가 하바나 시민들의 폭동에 대비해 24시간 경비를 강화했다는 소식과 함께 38세의 오스트리아 교사가 수상스키를 타고 영국 해협을 건넜다는 런던발 소식을 전한다. 주인공 셜리 또는 개인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하지만 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것이 뉴스다. 1931년이면 세계는 경제공황으로 모든 국가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였고 일본은 이 경제위기를 극복할 생각으로 만주사변을 일으킨 때이다.
셜리는 내레이션을 통해 자신이 ‘뉴욕(New York)’에서 14일 간 파리로 여행을 온 미국 여성이며 영화 속 ‘호텔 방’(Hotel Room)은 파리로 밤 11시임을 알려준다. 그는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침대에 앉아 앞으로 일을 걱정하다가 침대에 앉아 팸플릿을 읽는다. 그 때 거리의 음악소리가 창 너머로 들려오자 그녀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호텔방>Hotel room,1931, 유화, 152.4x165.7cm,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
#신2. 그리고 영화는 일 년을 훌쩍 뛰어넘어 무대를 ‘뉴욕의 방’으로 옮겨간다. 그림 속 부부는 한 방에 있으면서도 각각 남남처럼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있다. 남편은 무심하게 신문을 읽고 아내는 피아노앞에 앉아 무심하게 건반을 두드리고 있다. 그들은 함께 있지만 외롭다 그리고 고독하다.
라디오에서는 이런 상황과는 동떨어진 뉴스를 쏟아낸다. ‘그룹 시어터’(The Group Theatre)의 공연소식과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국가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는 소식 그리고 경기침체로 많은 영화인들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뉴스가 이어진다. 사실 영화 속 셜리는 연극배우로 그룹 시어터의 단원이다. 여기서 셜리의 연인 스티브가 처음 등장하는데 그는 사진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매일 양복을 갖추어 입고 출근을 하지만 실은 대공황으로 일자리를 잃고 식량배급소에 가서 줄을 서 양식배급표를 받아오는 것이 하루의 일과이다. 셜리는 피아노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고 독백을 한다. 공연이 임박해서 합숙 훈련을 해야 하는 데 이 일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에 금이 가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것을 훔쳐보고 엿듣듯 알 수 있다.
<뉴욕의 방> Room in New York, 1932, 유화, 73.66x 91.44cm, 셀던미술관
사실 그룹 시어터는 매우 중요한 극단이다. 연극이 상업적인 방향으로 흐르자 이에 반발한 해럴드 클러먼(Harold Clurman,1901~1980), 리 스트라스버그(Lee Strasberg,1901~1982) 등이 주동해서 1931년에 뉴욕에서 결성한 연극단체로 좌익경향을 띠는 사회저항극을 주로 공연했다. 1941년까지 지속한 이 단체는 클러먼, 스트라스버그 외에 연극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세일즈맨의 죽음>을 연출하고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에덴의 동쪽>, <초원의 빛> 등을 감독한 엘리아 카잔(Elia Kazan, 1909~2003) 등을 배출했으며 오데츠(Clifford Odets,1906~1963)나 사로얀(William Saroyan,1908~1981)같은 역량 있는 극작가를 발굴했다. 그리고 이렇게 발굴된 많은 배우와 연출가들은 후에 미국의 연극영화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이 극단이 확립한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Stanislavsky System)은 통일된 연기 및 작업방식으로 이후 연극의 실질적인 표준이 되었다. 이들은 실천적이고 현실감 있는 연기를 위해 스타니슬랍스키(Stanislavsky, 1863~1938)의 연극사상을 바탕으로 무대 위에서 배우는 일상생활처럼 자연스럽게 연기하여, 관람하는 관객이 마치 실제 현실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처럼 느껴야한다고 생각하는 메서드 연기(Method acting)를 주문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