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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한 여자의 사랑 <르누아르(Renoir, 20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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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위대하고 유명한 아버지와 이런 환경 때문에 주눅이 들어 무얼 할지 모르고 방황하는 꿈도 야망도 없는 아들 장, 아버지에게는 예술적 영감을, 아들에게는 영화감독으로의 길을 부추기는 젊은 여성 데데의 이야기, 즉 어찌보면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한 여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묘한 삼각관계가 영화를 전개해 나가는 기본 틀이라 할 수도 있다. 

 예술가로서 어느 누구보다도 작업만이 자신을 지켜주는 의미이자 삶의 상징이라고 믿는 르누아르는 붓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손에 붓을 묶어 작업을 계속해나간다. 르누아르의 표현을 빌면 “금빛 가슴과 매혹적인 살결”을 가진, 아름답고도 야심에 찬, 조금은 당돌하기까지 한 젊은 여성 모델 데데는 그의 창작열에 다시금 불을 붙인다. 세상의 시끄러움을 뒤로하고 “르누아르의 그림에 검정색은 없어. 세상이 이렇게 우울한데 그림은 기쁨에 넘치고 활기차야해.”라며 그림에 다시 몰입한다.


영화 속 데데의 모델인 앙드레 에슐링


 노년의 르누아르는 인상주의에서 벗어나 그가 청년기에 관심을 두었던 18세기 고전주의 미술에 다시 흥미를 갖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의 그림은 고전주의와 인상주의가 혼합되어 보다 견고한 구도와 형태를 갖추게 되나, 굳어가는 손은 그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이렇게 화가로서 좌절과 희망이 교차하는 위기를 겪는데 그 와중에 전쟁에 나간 큰 아들과 둘째 아들이 무사히 살아 돌아올까하는 아버지로서의 걱정도 태산이다. 데데도 어느 정도 르 꼴레트의 삶에 적응을 해 나갈 즈음 둘째 아들 장 르누아르가 전쟁에서 발을 다쳐 목발을 짚고 돌아온다. 

 모델 일에 권태를 느끼고 일상이 지루할 즈음 돌아온 장에게 데데는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자신의 일을 이어가기를 바라지만 화가라는 직업에 흥미가 없던 장 또한 아름답고 당차고 젊은 모델 데데에게 빠져든다. 서로가 사랑을 하게 되면서 데데는 장에게 당시 새로운 예술장르로 부상하던 영화의 감독이 되어 자신을 배우로 써달라고 매달린다. 비행기나 영사기에 관심이 많았던 장은 후에 결국 프랑스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어 영화사에 빛나는 위대한 감독이 되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장과 데데의 사랑이 깊어갈수록 아버지 르누아르의 병은 깊어만 가고, 손은 더더욱 말을 듣지 않아 그의 그림을 두고 ‘썩어가는 살점’이라는 혹평을 하는 비평가가 등장하기에 이른다. 장과 데데는 서로를 좋아하지만 장은 현실을 부정하고 군대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며, 데데는 이에 르누아르가 지긋지긋하다고 소리친다. 이는 아버지 르누아르의 모델 일이 지겹다고 느껴서 한 말이기도 하지만 아들 장에게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현실을 도피할 목적으로 군대로 복귀하려는 것을 동시에 힐난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이때 장이 빌어 온 영화 필름을 영사기에 걸고 온가족이 함께 영화를 보는 거실로 데데를 이끈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도중 르누아르는 아들과 데데가 다정하게 영화를 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흐뭇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운 듯 한 표정을 짓는다. 아버지를 이해하고 군에 복귀하는 것을 연기하면서 아버지의 그림 그리는 일을 돕게 된 장 또한 때로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 때문에 부딪히지만 노쇠해서 병약해진 아버지가 안쓰럽다. 그림 그리는 일을 그만 둘 것을 권유하지만 아버지는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힘이 다 할 때까지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또 그림을 그려보는 데데에게 “아이처럼,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아무 생각도 없이 그리라.”고 말하여 르누아르 스스로가 그림을 어떤 자세와 태도로 대하는지 알려준다. 사실 그의 그림을 보면 진정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을 손가는 대로 마음이 시키는 대로 그려왔음을 느낄 수 있다. 표현하고자 했던 행복과 즐거움을, 그렇게 자유롭게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그릴 수 있었던 르누아르의 삶은 진정 화가로서 그가 추구했던 삶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르누아르도 나이와 세월 앞에서 언제나 행복할 수는 없었다. 관절염으로 툭툭 튀어나와 굳어가는 손을 보면서 연민을 느낀 데데가 얼음찜질을 해주자 르누아르는 아들의 연인이기도 한 데데에게 “너무 이르고, 너무 늦고”라는 말을 남긴다. 르누아르는 데데를 통해 생명을 느꼈지만 반대로 데데의 입장은 현실을 인정하기에는 너무나 젊고 꿈이 많았다. 그는 르누아르의 모델이었다가 지금은 하녀로 일하고 있는 다른 르누아르의 뮤즈들을 보면서 그들과 자신은 다르다고 강변하지만 그가 모델로 안주하면 곧 그들의 처지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인정하기에 그는 너무 젊다. 그래서 더더욱 조급하게 데데는 장에게 매달린다. “당신의 꿈은 뭐죠?” “나는...꿈이나...야심...그런 건 없어요.” “여자들에겐 비밀로 해요. 당장 차일 테니까. 그러면서 둘은 더욱 가까워진다. 이즈음 데데는 장이 유일하게 현실을 빠져 나갈 수 있도록 해 줄 통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장을 부추긴다. 꿈도 야심도 없는 르누아르의 아들 장에게 “영화를 찍어요. 당신의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요.”라며 애타게 매달리는 것을 보면 그가 진정으로 장을 사랑한 것인지 아니면 단지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사랑하는 척했는지 관객은 조금 모호해지기도 한다.    
 동기야 어떻든 두 사람은 더더욱 가까워지고 데데는 장에게 함께 영화를 함께 만들자고 속삭이지만 장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결국 “아버지의 그림을 팔아 영화를 만들자”는 데데의 계속되는 유혹에 장은 그만 약속을 한다. 

 하지만 말로만 약속을 하고 다시 군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는 장을 두고 데데는 실망해 잠적한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성을 두고 감정선이 대립하면서 영화는 관객들에게 더더욱 오묘한 갈등을 제공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들의 군 복귀소식을 듣고 아들을 전선으로 보내야 하는 아버지로서의 르누아르의 모습에서 인간의 여러 면모를 한꺼번에 실감하게 된다. 역시 나이가 80대 후반에 이른 노배우 미셀 부케의 관록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장은 잠적한 데데를 찾아 나서고 바와 클럽을 전전하며 “즐기며 웃고 마시며” 일상을 소진하던 데데를 발견한다. 배우의 꿈이 좌절되었다고 생각하는 데데는 “팜므 파탈을 꿈꾸지만 늘 하녀로 끝난다”고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그리고 장에게 충고한다. “겁먹지 말고 모든 기회를 움켜쥐라”고. 이에 장은 데데에게 르누아르가 당신을 필요로 한다 말한다. 이에 데데는 묻는다. 아버지? 아님 아들 르누아르? 중 누구냐고. 

 이런 승강이 끝에 데데는 르 꼴레트로 돌아온다. 그리고 전쟁에 나가 부상을 당한 큰 아들도 돌아오고 르누아르의 하녀이자 모델이었으며 정부이기도 했던 가브리엘도 돌아와 오랜만에 가족파티를 열고 가족사진도 함께 찍는다. 이제 그림의 시대가 가고 사진과 영화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듯 감독은 사진을 찍기 위해 터뜨린 텅스텐 조명의 연기가 하늘로 사라지는 것을 여운처럼 쫓아간다. 하지만 파티는 군인들 노래 때문에 끝이 나고 만다. 
 오랜만에 함께 모인 삼형제는 바닷가를 거닌다. 큰 형은 영화는 대중적인 오락으로 프랑스와는 맞지 않는다며 군에 복귀하려는 장을 말려본다. 그리고 수영하는 군인들이 마치 물에 떠있는 시체처럼 떠 있는 신으로 화면은 마무리된다. 
 아들을 전장으로 다시 내 보내는 아버지의 어머니와 삶에 대한 회고와 함께 부성애 넘치는 아들과의 포옹은 르누아르의 아들에 대한 사랑이 극진함을 보여준다. 아들이 떠나고 창밖에 넓게 펼쳐진 정원에서 가브리엘이 장을 돌보는 듯 하녀가 자신의 아이와 노는 모습을 지켜보는 르누아르를 보여주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르느와르 <가브리엘Gabrielle과 장Jean> 1895-1896 유화 65×54cm 오랑제리미술관장


 아들과 아버지 그리고 한 젊은 뮤즈를 두고 펼쳐지는 가족 드라마같기도 하지만 화가 르누아르의 그림에 대한 말년의 열정과, 다양하고 풍부하며 복잡한 사실주의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장 르누아르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사실 영화에서처럼 전쟁이 끝나고 고향에 돌아온 장은 실제로 1919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아버지의 모델이었던 앙드레 에슐링(Andree Heushling, 1900~1979), 즉 데데와 결혼했으며 영화감독이 되었다. 그는 영화사에서 매우 중요한 감독으로 무성영화시대부터 시작해서 1979년 세상을 떠날 때 까지 약 40여 편의 영화를 만들었으며 <거대한 환상>(1937년), <게임의 법칙>(1939년)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또 그는 자신의 아버지인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일대기<르누아르, 나의 아버지>(Renoir, My Father)을 썼다. 


영화 <거대한 환상> 포스터


영화 <게임의 법칙> 포스터


 영화감독으로서의 르누아르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갈래로 나뉘지만 그의 위대함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프랑스영화의 시적 리얼리즘(poetic realism)시대를 개척하고 선도한 역할에 대한 프랑스 사람이나 비평가들의 애정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는 전기 무성영화시대에서 유성영화시대 그리고 현장로케영화를 거쳐 컬러영화시대를 거치면서 다양한 영화를 제작 감독하였다. 
  장의 영화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아틀리에 르 꼴레트에서 자라 도시의 문화적 삶과 시골 전원의 자유로움과 풍요로움을 경험했다. 특히 그의 아버지가 화가였기 때문에 아버지 주위의 동료나 친구, 모델 등과 어울리는 대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자랐는데 이는 그가 영화라는 집단 작업하는 환경에 익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영화에서처럼 어릴 때 영화와 항공기 등 당시로서는 새로운 것들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영화를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은 20대에 초반에 갖게 되었다. 액상 프로방스 대학에서 수학과 철학을 전공하였으며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공군에 입대해 부상을 입고 귀가했다 다시 복귀했다. 제대 후 도예작업을 하다가 당시 본 채플린(Charles Chaplin,1889~1977)과 슈트로하임(Erich von Stroheim, 1885~ 1957)의 영화는 그가 영화감독이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그림을 팔아 이를 밑천으로 1923년 영화사를 설립하고 영화제작을 시작했다. 그가 처음 제작한 영화는 베르 듀도네(Albert Dieudonne)가 감독을 맡고 자신이 직접 각본을 쓰고, 아내 앙드레가 여주인공역을 맡은 <카트린느(Backbiters/ Catherine:1924)>이다. 


영화의 배경이 된 르누아르의 작업실


 그의 영화는 대부분 자연에 대한 숭배, 계급 차이를 극복하는 사랑, 기쁨과 슬픔의 교차 등의 주제를 다루었다. 두 번째 영화 <나나>는 그의 무성영화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에밀 졸라의 원작을 각색하여 당시로서는 상당한 금액의 제작비를 투입하여 만든 작품으로 이 영화역시 여주인공에는 아내 앙드레가 남자주인공에는 당시 독일 최고의 배우로 꼽히던 베르너 크라우스(Werner Krauss,1884~1959)가 맡았다. <나나>의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흥행에 실패하자, 1927년에 돈을 벌기 위해 상업영화 <마르키타(Marquitta)>를 연출하면서 무성영화시대를 마감한 르누아르는 1930년 아버지의 뮤즈이자 자신의 아내인 앙드레 에슐링과 이혼한다. 

 그는 인상파화가였던 아버지가 사람과 풍경을 통합하고 한 화면에 병치시켰던 것처럼 인물들을 배경 속에 위치시켜 배경과 인물이 일체가 되도록 했다. 또 아버지가 스튜디오가 아닌 밖으로 나가 자연 속에서 그림을 그렸듯이 장도 스튜디오를 떠나 야외에서 촬영하는 리얼리즘을 추구함으로서 네오리얼리즘의 선구로 추앙받기도 한다. 이런 그는 1959년 아버지의 예술관과 미학에 경의를 표하는 듯한 영화 <풀밭위의 식사(Picnic on the Grass)>를 아버지의 아틀리에인 레 콜레트의 나무와 물, 바람 등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가장 인상주의적인 영화를 제작하기도 한다. 


 이렇게 대를 이어 인상파라는 새로운 형식의 그림과 당시로서는 첨단이라 할 수 있는 영화라는 장르를 통해 인류의 문화와 예술의 발전에 기여한 르누아르 부자에게 영감을 주고 그들의 창작의욕을 끄집어내는 데 일조한 앙드레 에슐링의 존재가 더욱 귀하게 드러내는 영화이다.  

정준모 관리자
업데이트 2024.12.02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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