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준모(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미술비평)
이제 로버트의 마지막 부품들이 등장하고 완성을 해 갈 즈음 영화는 결말을 향해, 아니 반전을 위해서 나아간다. 클레어의 밀고 당기기에 초보사랑꾼 올드만은 어쩔 줄을 모른다. 그러면서 자신의 첫사랑을 말한다. “수학여행 프라하에서 돌아와 유일한 남자친구와 함께 시내를 걷고 있는데 차가 덮쳐 남자친구가 죽고, 그 이후로 밖을 못나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한다. 올드만은 거부하던 핸드폰도 사용하기시작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스스로 변화하고자 노력한다. 또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타인들에게 더 많은 것을 베풀고 나누고자 한다. 클레어도 스스로 글을 쓴다던가하면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올드만은 내친 김에 클레어의 생일날 꽃다발을 들고 찾아간다. 하지만 이런 로맨틱한 분위기도 잠시. 클레어는 다시 변덕을 부리고 꽃다발을 집어던져 잠시 근처 식당에서 숨을 고를 즈음 클레어에게서 와달라는 전화가 오고, 클레어는 올드만에게 화냈다가 다시 울면서 감정에 호소한다. 자신의 생일은 늘 불행했다며, “꽃 선물은 처음이다”, “당신을 만난 이후로 내 삶이 변했다”는 둥 얘기를 늘어놓는다.
이후 그의 친구 빌리는 경매에서 놓쳤던 페트루스 크리스투스의 <어린 소녀의 초상>을 되찾아온다. 하지만 클레어는 마음을 열지 않는다. 하지만 늙은 올드만에게 멋있다고 칭찬도 하며 그렇게 두 사람은 가까워지는 듯 보이지만 여전히 클레어는 숨어살고 있다. 올드만은 이런 클레어를 훔쳐보다 들켜 도망을 친다. 그때 클레어가 낮선 사람이 침입한 것 같으니 급히 와달라고 전화를 한다. 허둥대며 클레어에게 달려가 본인이 숨어서 지켜보았노라고 고백하고 물러나오는데 클레어가 가지 말라고 붙잡는다. 그는 결코 벗지 않던 장갑을 벗고 그녀의 얼굴을 만진다. 이렇게 늦은 사랑이 찾아들면서 올드만은 변해간다. 이때 로버트가 조언한다. “조심하세요. 통했다고 느끼는 순간 느슨해지기 마련입니다.” 이 말은 로버트가 스스로에게 한 말이라는 것을 영화가 종말에 이를 즈음 알게 된다.
이제부터 올드만은 클레어를 여성으로 대하기 시작하고 옷을 선물하며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연습을 시킨다. 그러면서 서서히 그는 일을 줄이며 은퇴를 해 클레어와 함께 할 계획을 세우면서 그의 동료에게 묻는다. “어떤가? 여자랑 사는 게.”, “경매랑 비슷하지요. 내가 부른 값이 최선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좀체로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는 클레어와 집에서 저녁을 같이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한다. “어릴 때 부모를 잃고 고아원에서 살았는데 고아원 수녀들은 애들에게 벌을 줄 때 같은 건물 미술 복원가 일을 돕게 시켰고 복원 작업 보는 게 좋았던 소년은 최대한 자주 벌을 받으려고 항상 말썽을 피우고 다녔다. 그래서 많은 작품을 접하고 다양한 기법을 배우면서 진품과 위조도 구별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대화를 나누는 중에 “모든 위조품에는 진품의 미덕이 숨어있다.”는 말의 의미를 묻자 올드만은 “작품을 위조할 때도 자기를 표현하고자하는 유혹에 저항하지 못해 사소한 디테일이나 터치를 다르게 해서 결국 불가피하게 본분을 저버리게 되지. 자기표현의 정신 그것이 진품의 감성이다.”라고 답한다.
그리고 다음 경매준비에 바쁜 그에게 로버트의 여자 친구가 찾아와 로버트와 클레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로버트에게 오토마톤을 돌려받는다. 물론 이 와중에도 클레어의 빌라의 경매준비는 착착 진행되고 도록을 만들어 클레어에게 보여주던 날 클레어는 자신이 스스로 감금되어 살았던 집을 구경시켜준다. 여기서 용기를 얻은 올드만은 여기서 나오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클레어는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서 마치 풀리지 않는 거미줄에 걸린 것 같다고 말한다. 결국 영화의 결말을 보면 올드만이 거미줄에 걸린 셈이지만 말이다.
올드만은 반지를 사들고 클레어의 집을 찾는다. 하지만 클레어는 집에 없고 부랴부랴 경매장으로 돌아와 경매사회를 보는 천하의 올드만은 당황해서 실수를 연발해 망신을 산다. 그리고 사라진 클레어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다. 그 와중에 빌리에게 자신의 사랑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이에 빌리는 “인간의 감정은 예술과 같아, 위조할 수 있지. 보기엔 진품과 똑같아. 하지만 위조다. 그리고 모두를 속일 수 있다. 기쁨, 고통, 증오, 병, 회복, 심지어 사랑도”라고 말한다. 혼자 여인의 초상화가 가득한 방에 앉아 상념에 잠긴 올드만에게 비밀의 방이 있을지 모른다는 전화가 걸려온다. 그리고 그 방에서 클레어를 찾아냈을 때 그는 말한다. “날 버린 줄 알았어요.”라며 프라하에서의 사고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이날 둘은 몸을 섞는다.
다음날 로버트를 찾은 올드만은 사랑도 위조가 가능할까라고 묻는다. 이에 “완벽한 위조는 불가능하다.”고 답한다. 이어 “사랑이 예술이라면?” 그럼 “경매도 가능”할 것이라며 “낙찰 받은 사람이 최고의 사랑을 체험하게 될 것”이라는 대사를 주고받으며 잘 달래서 데리고 나오면 스스로 상처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비가 오는 다음날 올드만은 그녀를 찾아가다가 괴한들에게 테러를 당해 클레어에게 전화를 하고 클레어가 맨발로 뛰어나와 입공호흡을 하고 병원으로 옮긴다. 이렇게 우연찮은 사고로 클레어는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퇴원하고 올드만은 클레어를 집에 초대해서 결벽증을 이야기하면서 그동안 바보처럼 살았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평생 동안 모은 여인들의 초상화로 가득한 비밀의 방으로 안내한다.
그리고 클레어 빌라의 경매도록이 발행되지만 그는 돌연 경매로 처분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고 올드만은 순순히 이를 받아들이며 가장 고통받고 축복받은 카탈로그를 위해 건배를 한다. 은퇴를 결심한 올드만의 마지막 경매가 런던에서 열리고 축하와 격려가 쇄도하는 가운데 박수를 받으면 마지막 경매를 마치고 빌리와 인사를 나눈다. 이때 빌리는 그림을 한 점 선물한다. 홀가분하게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온 올드만, 하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어 묻자 사라와 로버트가 와 클레어와 함께 외출했다고 한다. 빌리가 선물한 그림을 가져다 놓으려고 비밀의 방에 가보니 벽이 텅 비어 있는 방에 오토마톤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리고 오토마톤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위조품에는 진품의 미덕이 숨어있다. 전적으로 동의해요. 당신이 그리울 거예요.”라는 기계음만 반복되고.
클레어의 빌라로 뛰어가지만 문은 굳게 닫혀있다. 클레어집 앞 카페 들러 자초지총을 묻자 클레어라는 왜소증환자가 답한다. 그녀의 이름이 클레어였던 것. 영화는 이제야 또 다른 구조를 드러낸다. 그리고 이 빌라는 팔려고 내놓은 빈 집이었으며 여기에 로버트가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까지. 그 빈집을 들여다보지만 어디에서도 클레어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그리고 빌리가 준 어머니의 초상에서 빌리의 사인을 발견하고 속았음을 알아챈다. 그래서 경찰서를 찾지만 그는 이내 돌아선다. 클레어와의 행복했던 날들을 회상하면서. 그리고 그는 프라하로 간다. 그곳에서 클레어를 기다릴 심산으로.
영화는 태엽과 톱니바퀴로 조립된 오토마톤처럼 정교한 짜임새를 보여준다. 영화가 끝나기 불과 얼마 전까지 관객은 미술과 미술품에 대해서 잘 모르듯이 영화의 결말을 상상하기 힘들다. 왜소증 소녀의 이름이 클레어라는 말에 반전의 기미를 알아 채고 “모든 위조품엔 진품의 미덕이 숨어 있다.”던 올드만의 말 속에 반전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클레어를 만날 생각으로 낮과 밤이라는 프라하의 카페에서 자리를 비워 놓고 식당에 앉아 기다리는 올드만과 소리 내며 돌아가는 톱니바퀴 시계들의 모습과 소리가 오버 랩 되면서 평생을 진품과 가품을 감정하며 살아온 올드만도 사랑은 감정할 수 없는 것이란 씁쓸한 사실만 만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