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모(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미술비평)
미술품이 영화의 소재가 될 때에는 몇 가지 법칙이 있다. 대개는 그림을 그린 화가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그 다음 그림 도둑에 관한 이야기 또 가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이야기가 많다. 미술품 감정도 위작을 다루는 영화 속에서 종종 등장하기는 하지만 본격적으로 미술품 감정과 경매를 다룬 영화로는 역시 쥬세페 토르나토레(Giuseppe Tornatore, 1956~ )가 감독을 한 영화 <베스트 오퍼>(Best offer, 2013)가 단연 압권이다. '베스트 오퍼'란 미술품 경매나 기타 경매에서 최고의 가격을 부르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로 누군가가 최고의 미술품을 만났을 때 자신이 지불할 최고의 금액이라는 점에서 미술품에 대한 안목과 사랑을 함께 지닌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취미를 일컫는다.
영화는 세계적인 미술품 감정사인 동시에 경매사이기도 한 괴팍하면서도 결벽증이 있는 버질 올드만(제프리 러쉬 분,Geoffrey Roy Rush, 1951~ )이 정체를 모르는 어떤 여인 클레어 이벳슨(실비아 획스 분, Sylvia Hoeks, 1983~ )으로부터 오래된 빌라에 남겨진 고가의 가구와 미술품, 조각상등의 경매를 의뢰받아 이를 위해 감정과 목록화 등등의 작업을 진행하면서 점점 그 의문의 여인에게 빠져들어 결국에는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 사랑 때문에 큰 상처를 입는 미스터리 로맨스 물이다.
올드만은 고전 미술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감식안으로 미술품 감정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세계도처에서 감정의뢰가 답지할 만큼 성공한 인물이다. 하지만 자신의 일밖에 모르는 외골수로 사람들을 믿지 않아 가까이 하는 사람이 없는 폐쇄적인 인물이다. 그는 음식도 까다롭게 가리고 식사를 할 때도 장갑을 벗지 않을 정도로 결벽증을 지니며 자기세계에 갇혀 사는 완벽주의자이기도 한 사람이다. 물론 이런 외골수이니 자신의 분야에서 일인자가 되었겠지만 말이다.
세기의 경매사이고 예술품의 진품 여부를 단번에 알아볼 뿐만 아니라 그 가치까지 꿰뚫는 감정인이 극을 이끄는 주인공인 만큼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잘 모르는 세계인 '미술품 감정과 경매'가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기도 하다. 단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가치의 예술품들이 거래되는 긴장감 넘치는 경매장을 마치 중계하는 듯, 긴장과 긴박이 교차하는 현장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특히 극중 경매사로 노련한 카리스마와 긴장을 깨는 재치있는 입담으로 경매장을 장악하는 경매사의 모습은 영화의 또 다른 백미이다.
우리는 감정이란 일반적으로 진위만을 감정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지만 진위는 물론 예술적 감정과 자산 가치를 감정하는 것을 포함한다. 하지만 예술적 가치와 자산 가치는 일치하지 않는다. 자산 가치는 대중들의 인기, 선호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감정이란 감상과는 다르지만 감상이 배제된 감정이란 있을 수 없다. 어떤 작품이 감동이 적다고 가짜라 말 알 수 없고 예술성이 뛰어나다고 진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모든 작품의 감정에서 우선은 목감(目鑑) 즉 안목감정이 우선이다. 그리고 이를 증빙할 고증자료라든가 과학적인 방증자료를 참고로 한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안목감정이 우선되는 것도 또 과학적인 실험결과나 기타문헌자료가 안목감정에 우선할 수 도 없다. 어찌 보면 상호 보완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진위를 판별한다는 것은 안목감정과 고증의 절차를 거쳐야 하며 따라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영화 속에서 올드만은 오랜 경험과 안목으로 매우 간단하지만 적확하게 각각의 미술품에 대한 가치를 집어낸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감정가라는 그는 자신에게 다가온 이름 모를 위탁자와의 게임을 통해 예술적 가치처럼 모든 가치가 결국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이런 성공한 감정가이자 동시에 경매사이기도 한 그의 유일한 취미는, 화가지망생으로 예술을 사랑하고 그림을 그리지만 여전히 아마추어인 친구 빌리(도날드 서덜랜드 분, Donald Sutherland, 1935~ )와 함께 자신의 미술품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경매를 통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여성의 초상화를 낙찰 받아 자신만의 비밀스런 방에 벽면가득 걸어두고 혼자서 보며 즐기는 것이다.
원래 경매는 재산상속 분할을 위해서 사용되었다. 미술품 경매는 17~18세기 이래 서유럽에서 수요와 공급을 이어주는 거래방식으로 자리 잡아 특히 19세기 이후 특정 수집가, 화가, 화상들간의 작품 교환 수단으로 성행하여 지금도 미술품유통과 가격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보통 경매는 경매회사가 공개적으로 주최하며 경매를 진행하는 경매사 (auctioneer)가 가격을 부르면 이에 대해 객석에서 응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한 개인이 자신의 컬렉션 전체를 경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다수의 경매 기탁자들의 의뢰를 받아 모아서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경매는 기탁자의 요구에 따라 감정을 하고 최저 가격을 붙여 목록을 작성하고, 경매에 앞서 프리뷰 기간을 갖고 경매당일에는 경매를 통해 미술품을 구입하고자하는 이들이 경합을 벌여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하는 사람에게 낙찰된다.
대표적인 경매회사로는 소더비(Sotherby’s)와 크리스티(Christie’s)가 있는데 소더비사는 1744년 최초로 런던에서 서적 경매를 시작했지만, 미술품 경매는 20년 후에 설립된 크리스티가 먼저 시작했다. 전세계 미술품 경매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이 두 회사는 고가의 예술품에 대한 매매를 의뢰받아 자사의 감식능력과 신용을 바탕으로 구매자들에게 이를 판매하는 중개 역할을 한다. 이들 양사의 경매수수료는 낙찰금액의 20~25%로 낙찰자는 낙찰가에 수수료를 포함한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낙찰금액이 200만 달러를 넘을 경우 12%의 수수료를 부과한다. 국내 경매사의 경우 15~18%의 수수료가 부과된다. 미술품 경매제도는 숨어있던 미술품들을 세상에 나오게 하고 모든 사람에게 소유할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가진다는 점에서 그리고 위작(僞作)과 모작(模作)을 가릴 수 있기 때문에 미술품거래에서는 중요한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주로 경매방식을 통해 평생을 두고 모은 올드만의 여인 초상화 컬렉션은 엄청난 수와 가치를 자랑한다. 올드만이 비밀의 방 한가운데 흰 의자를 두고 방을 가득 채운 명화 속 여인들에 둘러싸여 혼자 감상하는 장면은 경매장의 낙찰 받는 긴장된 순간순간들이 전해지면서 가슴이 뛰지만 한편으로는 혼자 보고 있다는 이유로 짠해지는 장면으로, 명화의 아우라와 장소적 신비감이 더해지는 영화의 백미 중 하나이다. 영화는 세기의 명화들을 등장시켜 예술품의 진품과 위작을 사랑과 대비시키는 위험한 시도를 통해 사랑과 예술, 인생에 대한 절묘한 비유를 보여준다.
페트루스 크리스투스 <어린 소녀의 초상>
윌리암 아돌프 부그로 <비너스의 탄생> 1879
그의 초상화 컬렉션의 면면을 보면 실로 초상화미술관(Portrait Museum)이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이다. 페트루스 크리스투스(Petrus Christus, 1410~72)의 ‘어린 소녀의 초상’을 비롯해서 프랑스 아카데미즘을 대표하는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William-Adolphe Bouguereau, 1825~1905)의 ‘비너스의 탄생’, 보카치오 보카치노(Boccaccio Boccaccino, 1467~1525)의 ‘집시소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의 ‘엘스베트 투허의 초상’을 비롯해 라파엘, 티치아노, 브론치노, 모딜리아니, 르누아르 등이 망라되어 미술사를 관통하며 각 사조별로 각각 개성을 가지고 여성들을 표현 한 것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물론 영화라 오랫동안 비교감상하기에는 부족하지만 그 아쉬움을 엔니오 모리꼬네의 전설적인 현악기의 선율이 달래준다.
보카치오 보카치노 <집시소녀>
영화에서는 당대최고의 미술품 감정가인 올드만에게 미지의 여인으로부터 전화가 오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그 저택에 혼자 살고 있다는 여인은 개인적으로 은밀하게 그 빌라에 있던 각종 집기와 미술품등의 감정과 경매를 부탁하는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처음에는 무시했지만 호기심 때문에 그 집을 방문한다. 하지만 여인은 시종일관 전화로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나타나지 않는다. 무엇엔가 홀린 듯 돌아서려고 하면 불러 세우는 묘한 우연히 겹치면서 올드만은 그 여성으로부터 미묘한 호기심과 경쟁심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위탁받은 작품들의 감정을 빌미로 그 집에 드나들면서 광장공포증 때문에 방안에 숨어 지내는 얼굴모르는 여인과 문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거듭하면서 호기심은 커져간다. 영화가 꽤 진행되고 궁금증을 못 이겨 몰래 숨어서 여인을 훔쳐보게 되는 장면에서 처음으로 여주인공 클레어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를 계기로 괴팍하기 그지없는 독신남 올드만에게 클레어는 관심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알쏭달쏭한 말과 걸핏하면 말을 바꾸는 태도 때문에 돌아서기를 수십 번 하지만 그때마다 집사인 프레드(필립 잭슨 분, Philip Jackson, 1948~ )이 나타나 그를 붙잡고 결국 연민의 정을 느끼며 올드만은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 누구도 쉽게 믿지 않고 폐쇄적으로 살았던 올드만에게 베스트 오퍼의 기회가 온 것이다.
영화는 동시에 또 다른 전개과정을 통해 영화의 복선을 암시한다. 나타나지 않는 여자 클레어와 숨바꼭질 하듯 감정 일을 하면서 우연히 발견한 시계부속 같은 톱니바퀴를 찾고 모으고 때로는 몰래 집어 와 그의 거의 유일한 대화 상대이면서 올드만의 뒤 늦게 찾아온 사랑의 조언자로 기계라면 못 고치는 것이 없는 로버트(짐 스터게스분, Jim Sturgess, 1978~ )에게 맡겨 이를 복원해나간다. 퍼즐이 완성되듯 날이 지나면서 하나하나의 부속들이 추가로 발견되어 형체를 만들어가면서 영화의 전개와 비례해서 각 인물간의 관계가 발전되고 이야기가 완성되어 간다. 특히 부속의 녹 때문에 조작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다가 점점 클레어가 깔아 둔 아니 누가 만들어 놓은 복선인지는 모르지만 그 복선에 말려들 즈음 로버트와 올드만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1809~49)의 <멜첼의 체스 기사>(Maelzel's Chess-Player)를 두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