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자신의 딸에게는 남자친구에게 너무 몰입하지 말라고 하면서 스스로는 죽은 남편 가렛의 환영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며 공허함과 아픈 추억 때문에 늘 함께 가던 미술관조차 가지 못한다. 남편이 바다에서 익사하고 나서는 수영조차 할 수 없었던, 잠자리에서도 남편이 죽은 멕시코 해변의 바다 소리가 들릴 정도로 남편과 사별한지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의 환영 속에서 살고 있는 여자 니키(아네트 베닝 분, Annette Bening, 1958~ ).
그는 어느 날 딸의 조언으로 남편과 자주 갔던 미술관을 다시 찾았다가 남편과 똑같이 닮은 화가 톰(에드 해리스 분, Ed Harris, 1950~ )을 만난다. 마치 죽은 남편이 환생해 돌아온 듯 그래서 그는 그 화가를 다시 만나기 위해 몇날 며칠을 기다리다 그를 찾아 나선다. 미술대학에서 강의 중인 그를 찾아가 청강을 신청하며 접근한다. 그리고 그에게 그림 그리는 개인교습을 받게 된다. 남편과 함께 찾던 초밥집 주방장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인사를 할 정도로 닮았다.
영화 속 미술관은 극중 배경이 되는 LA에 있는 로스엔젤리스 카운티 미술관(LACMA,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이다. 1910년에 개관한 이 미술관은 약 12만 점의 소장품을 자랑하며 고대로부터 근․현대까지, 고고학에서 현대미술에 이르는, 그리고 영화와 새로운 매체 예술까지 다양한 장르를 다루는 종합 박물관 성격의 미술관으로 매년 백만 명 이상이 찾는 대중적인 공간이다. 1980년대 접어들어 비약적인 발전을 한 LACMA는 기부금과 컬렉션을 획기적으로 늘렸고 새로운 건물들을 신축하면서 확장해 나갔다. 그 후 2004년 LACMA 이사회는 렌조 피아노와 렘 쿨하스 등 세계적인 건축가를 초치해서 대규모 확장과 리노베이션을 통해 오늘의 모습을 이루었다. 자연 채광과 오픈된 가변형 박물관의 전시 시스템은 LA주민의 자긍심이 되어주는 랜드마크이다.
로스엔젤리스카운티 미술관 LACMA
아무튼 영화 속 두 사람은 이렇게 미술관에서 만나 서로 다가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니키는 같은 남자면서 다른 남자인 톰을, 톰은 “같이 있으면 기분 좋은 고통”을 느끼는 니키와 점점 깊은 관계로 발전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니키는 같은 두 사람 사이에서 고민한다. 톰도 사랑하는 아내 앤(에이미 브렌너먼 분, Amy Brenneman, 1964~ )과 헤어진 상처를 지닌 남자다. 하지만 니키를 만나면서 앤의 미망에서 빠져나와 10여 년 전 아내와 헤어지며 접었던 그림을 다시 시작한다.
니키는 사랑하는 사람을 되찾았다고 생각하지만 고통스럽다. 영화는 묻는다. 과연 죽은 남편과 똑같이 닮은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니키의 사랑을 과연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 이런 사랑이 가능할까라고 말이다. 하지만 니키는 이런 환영 속 가렛과 실재의 톰 사이에서 자신의 사랑이 톰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가렛과의 사랑의 연장인지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면서도 환영 속 가렛도 실재의 톰도 모두 사랑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톰이 니키의 사랑 가렛의 대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까봐 전전긍긍한다. 아니 사랑하는 톰이 상처를 입을 까봐 니키는 그 사실을 애써 숨긴다.
그에게 톰은 부활한 가렛이었다. 이는 영화의 가장 큰 줄기로, 이미 니키가 다시 찾은 L.A 카운티미술관의 배경에서 이미 그 사실을 예고하고 있다. 이곳에서 톰을 만난 그날 그는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 van Rijn, 1606~69)의 ‘나사렛의 부활’(1630~31, 패널에 유화, 81.5cm x 96.2 cm, LACMA 소장)이라는 작품을 본다. 렘브란트는 빛과 그림자의 연극적인 대비를 통해 신비하며 극적인 화면을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그린 ‘나사렛의 부활’에서도 그의 이런 특징은 잘 나타난다.
The Raising of Lazarus. 1630, oil on panel,
96.2x81.5 cm,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예수의 절친한 친구였던 나사로가 죽은 지 3일째 되던 날, 예수가 “나사로야, 나오너라”고 말하자 나사로가 되살아나왔다. 죽은 자를 살린 이 기적은 요한복음 11장에 나오는 이야기다. 여기서 예수는 기적을 행하는 초연하고 무감각한 신이 아니라 감정을 지닌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예수가)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라는 구절과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는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이 기적을 전하는 복음서는 요한복은 뿐이지만 예수가 나사로를 되살려낸 내용의 소설과 희곡 그리고 그림은 매우 많다. 왜냐하면 최후의 심판을 통해 영원한 삶에 들게 되는 상징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림 속 나사로는 죽은 사람으로 부패한 신체에도 불구하고 창백한 얼굴로 다시 살아나 예수와 자매들을 만난다. 그림은 기적을 목도하는 마리아의 얼굴이 가장 빛나며 그 빛이 예수의 얼굴과 기적을 행한 오른손, 그리고 벽에 걸린 칼과 활로 이어지다가 결국 부활하는 나사로의 얼굴에 비춰진다.
영화는 또한 거장 감독 히치콕(Alfred Hitchcock, 1899~1980)의 영화 ‘현기증’(1958년작)에서 중요한 플롯을 빌려왔다. ‘현기증’에서 주인공은 친구의 부탁으로 그의 아내 매들린을 미행하다 강물에 뛰어든 그녀를 구하면서 사랑에 빠진다. 그 후 수녀원 종탑에서 그녀가 죽고 그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그녀의 흔적을 찾아 함께 했던 장소를 돌아다닌다. 그러다 그는 죽은 여자와 똑같이 닮은 여성 주디를 만나게 되면서 혼란에 빠지며 집착을 보이며 사건은 전개된다. 이런 소재를 가지고 히치콕 감독이 스릴러를 만들었다면 이 영화 ‘페이스 오브 러브’의 감독 아리 포신(Arie Posin)은 멜로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히치콕 <현기증>의 한 장면
영화는 단출하게 큰 배우 세 사람에 의해 이끌려나간다. 니키역을 아네트 베닝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중년의 사랑 아니 노년의 사랑을 맛깔나게 연기한다. 게다가 짧은 머리와 여전히 귀여운 미소가 젊은 날의 사랑을 이어가는 여성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톰과 가렛, 1인 2역을 맡은 애드 해리스의 선 굵은 얼굴은 멜로나 로맨스영화에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주름투성이의 눈가에서 인생의 경륜과 함께 자의식이 강한 화가로서의 성격이 확연히 드러낸다. 이 두 사람의 깊이있는 연기가 다소 뻔할 수 있었던 멜로영화를 심리적인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렸다.
톰과 가렛을 동시에 사랑하게 되는 니키는 톰의 옷차림까지 가렛화한다. 어느 날 니키는 톰의 집에 저녁 초대를 받아 방문하게 되는데, 그의 아틀리에에서 휘장에 감싸인 그림을 발견한다. 하지만 톰은 보여주지 않는다. 착란과 환상에서 톰은 늘 가렛이 되고 니키는 톰을 가렛이라 부르는 혼란 속에서 불안한 사랑을 이어간다. 그 와중에 남자친구와 결별한 딸이 집에 찾아오자 니키에게 가렛이었던 톰은 톰이 되어 집을 나간다.
니키는 상실감에 젖어 불현듯 남편과 자주 찾았던 멕시코 해변으로 떠난다. 집을 나서면서 찬장 문을 닫는데 도마가 튀어나와 문이 열리며 무언가 불길한 사건이나 사고를 암시하는 듯했지만 그녀는 그대로 떠난다. 멕시코 해변에 나타난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남녀 한 쌍, 하지만 날씨 탓에 바다가 거칠어져 수영을 할 수 없어 어느 바에 들른다. 그곳에서 톰은 니키와 전남편 가렛이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하고 니키의 자신에 대한 사랑의 실체, 본질을 눈치 챈다. 그는 니키에게 “나하고 닮았어요. 나하고 똑같더군요.”라고 말하며 그녀가 사랑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과 닮은 전 남편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나를 보면 죽은 남편이 떠오르나요?”라며.
죽은 남편과 똑같이 닮은 사람을 다시 만나서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하나로 생각했던 니키는 사랑의 착란과 들켜버린 절망에 남편이 익사한 그 바다에 죽으려고 뛰어들지만 톰이 발견하고 살려낸다. 이때 니키는 처음으로 톰의 이름을 부르며 “제발 날 두고 떠나지마, 여기 있다고, 내가 나쁜 건가요”라며 톰을 잡지만 톰은 니키를 떠나고 화면 속 바다는 파도가 매우 거칠다. 니키는 집으로 돌아와 다시 남편을 잃은 일상으로 돌아오고 늘 니키바라기로 그의 주변을 맴도는 로빈 윌리엄스(Robin Williams, 1951~2014)가 연기한 로저와 친구처럼 일상을 이어간다.
그리고 1년 후 미술관에서 온 “톰 영 추모전시회; 인생”이라는 초대장을 발견한다. 그리고 전시장을 찾아 톰이 죽고 나서 열리는 유작전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톰의 전 아내를 만나 그의 건강에 좋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전시장을 돌아보는 니키의 등 뒤로 커다란 작품 한 점에 줌 인하면서 영화는 마무리단계로 들어간다. 그 그림은 니키가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있고 그것을 지켜보는 톰과 창문에 비친 톰 아니 가렛이 있다. 그 작품의 제목은 영화제목과 같은 ‘페이스 오브 러브’이다.
그리고 자신의 집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면서 니키의 모습과 함께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전형적인 멜로물로 종말을 짓는다.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던 극락조(Bird of Paradise)의 “정열과 환상 그리고 영원한 사랑”이라는 꽃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