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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갤러리이주] 양재열 개인전 오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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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 양재열개인전 오롯
기 간 : 2020.7.29-8.19
장 소 : 갤러리 이주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 524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 B2 C-36









[비평] 인간의 삶이 결합된 ‘형성된 풍경’

전은자(이중섭미술관 큐레이터)


자연의 순환은 변화

  미적인 대상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단연 자연이다. 자연에는 인류와 연관된 오래된 기억이 내재해 있어서일까. 인간이 자연과 연관된 어떤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더라도 인간은 자연에 대해 경외감과 친근감을 갖는다. 태초로부터 인간은 자연을 이기려고 하지 않고, 비념(제주에서, 무당 한 사람이 요령만 흔들며 기원하는 작은 규모의 굿) 의식을 통해 생존의 지평을 넓혀왔다.

  만물은 다 지나간다. 그러나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없다. 그것의 흔적 위에 다시 흔적이 쌓이듯 만물은 엔트로피 과정을 통해 다른 것으로 변화할 뿐이다. 하물며 인간의 존재도 우주에서 사라지는 것 같이 보이지만 다른 물질로 변해 자연의 일부분으로 흩어져 존재한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인간에게 영혼이 있는 것처럼, 만물에게도 인간이 느끼지 못하는 어떤 영성(靈性)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이런 범신론적인 생각은 인간과 자연을 공생의 길로 이끌었다.

 
풍경을 보는 다른 시선

  제주도의 지형과 산세는 완만하다. 화산섬인 까닭에 육지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을 대할 수 있다. 제주에 사는 사람들의 눈에는 제주의 아름다움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제주의 자연과 한 몸으로 살면서 거리를 두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이 더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인지 모른다. 자신이 사는 곳에 대해 가치를 생각하지 않는 삶이란 자연적인 삶과 하나가 된다.

  자연의 풍경을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사람의 호흡이 닿지 않은 미지의 자연적 풍경과 자연 속에 인간의 삶이 결합된 ‘형성된 풍경’이 그것이다. 전자는 오지(奧地)나 심해(深海)를 말할 수 있고, 후자는 인간의 흔적이 오랜 시간 축적된 ‘장소 풍경’을 말한다. 이것은 다시 ‘바라보는 풍경’과 ‘개입된 풍경’으로 나눌 수 있다.

  양재열은 이 두 가지 의미의 풍경을 다루는 작가다. 먼저 ‘바라보는 풍경’으로서의 작업들은 자연 현상과 기후 변화에 의해 펼쳐지는 자연 풍경, 즉 해질녘의 경이로운 노을빛이나 소리쳐 우는 강렬한 파도의 흐름 등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양재열의 ‘개입된 풍경’ 작품은 인공이 결합된 공간으로서, 혹은 자연 공간이 특별한 장소성을 드러낸다. 이를테면 원담이 있는 해변에서 노는 사람들, 바다에서 윈드서핑을 하거나 거니는 사람들, 사람들이 가꾸어 놓은 농작물의 풍경, 오름에서 본 전경 등을 들 수 있다. 이는 인간이 개입된 자연으로서 지명(地名), 사람, 농사, 마을 모습, 배가 있는 바다 등 자연과 인간이 어울려 살아가는 공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양재열은 풍경에 말을 거는 작가다. 자연 현상으로서 ‘그대로의 풍경’이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보이는 풍경을 선별하기 보다는, 그것들을 사랑함으로써 새로운 해석적 관점을 보여준다. 그에게는 특별한 풍경이 따로 없는 것 같다. 모두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특별하다는 것에는 선별의 의미가 있는데, 그럴 경우 풍경에 대한 경계가 생긴다. 그 경계를 지우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선택된 풍경, 즉 선호하는 풍경만이 남게 된다.

  양재열은 특별한 풍경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의 풍경은 모두가 제주에 흔히 존재하는 상황적인 모습들이다. 상황은 같은 장소라도 시시각각 다양하게 변한다. 양재열은 풍경의 변화의 원리를 아는 작가다. 그래서 그는 풍경에 말을 걸 수가 있는 것이다. 양재열의 해석을 통해 말이 없는 풍경이 말을 하는 풍경으로 전환된다. 애초에 풍경의 특별함, 특별한 풍경이란 없다. 풍경을 보는 인식의 전환, 작가 자신의 감수성과 해석적 관점만이 있을 뿐이다. 

관리자 관리자
업데이트 2024.12.0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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