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오늘날 우리는 자하[紫霞]를 그리워하는가 - 자하 신위 탄생 250주년 기념 서화전 -
o 기 간 : 2019년 11월 5(화)~2020년 3월 8일(일)까지
o 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서화실
o 전시품 : <묵죽도> 등 25건 85점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배기동) 상설전시관 2층 서화실에서는 자하紫霞 신위申緯(1769~1847)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는 서화전 ‘자줏빛 노을에 물들다’(2019.11.5.~2020.3.8.)가 열리고 있다. 신위는 시・서・화 삼절三絶이자 조선시대 3대 묵죽화가로 이름 높지만, 그 삶과 예술의 깊이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신위의 인간적 면모와 고전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이번 전시에서 오늘 우리에게 전하는 자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시기 바란다.
표암, 추사도 이루지 못한 진정한 삼절三絶
시・서・화에 모두 뛰어난 인물을 삼절이라 하지만, 실상 세 가지를 모두 최고 수준으로 성취한 인물은 신위를 빼고 달리 찾기 어렵다. 조선후기 삼절로 꼽히는 강세황姜世晃(1713~1791)과 김정희金正喜(1786~1856)도 시만큼은 신위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생전에 이미 “두보杜甫의 시를 배우듯 신위의 시를 읽는다.”라 할 정도로 대가로 인정받았고, 20세기에 들어서도‘쇠퇴해가는 시대에 훨훨 날아오른 대가’라 하여 고전 문학의 마지막 거장으로 추앙받았다. 신위의 시는 청신하고 회화성이 넘친다. 그의 글씨와 그림에도 이러한 시적 정취가 깃들었으니, 시・서・화가 혼연히 하나 된 진정한 삼절이라 할 수 있다.
김정희金正喜(1786~1856)는 고대 비석 연구를 토대로 독특한 서풍을 창출했고, 신위는 왕희지王羲之(303~361)를 모범으로 삼아 우아한 서풍을 연마하여 서로 다른 개성을 보여주었다. 신위와 김정희는 모두 윤정현尹定鉉(1793~1874)을 위해 그의 호인 ‘침계梣溪’를 써 주었다. 김정희의 <침계>(간송미술관 소장)와 신위의 글씨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두 사람의 서예는 지향점은 다르지만 19세기 조선 문인이 다다른 최고의 경지를 보여준다.
예술로 꽃피운 가족의 정
신위는 당대의 명필 송하松下 조윤형曺允亨(1725~1799)의 딸을 배필로 맞았지만 아들을 얻지 못하고 부실副室 조씨趙氏에게서 네 서자를 얻었다. 평산신씨平山申氏 명문가라는 무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입양으로 적자를 잇지 않고 네 아들을 동등하게 길러내었다. 그는 자녀들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예술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기를 바라고 격려하였다. <시령도詩舲圖>에는 신위 부자의 가족애가 담겨있다. 문장과 산수화로 이름을 남긴 맏이 신명준申命準(1803~1842)과 화사한 꽃그림으로 일세를 풍미한 둘째아들 신명연申命衍(1809~1886)이 아버지 신위와 합작한 두루마리 작품으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처음 공개되는 신위의 필사본 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