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메뉴타이틀
  • 국내외미술기사
  • 국내 미술기사
  •  해외 미술기사
  • 이슈
  • 국내외 전시일정
  • 국내 전시일정
  • 해외 전시일정
  • 보도자료
  • 미술학계소식
  • 구인구직 게시판
  • 공지사항
타이틀
  • [국립중앙박물관]중국 법첩으로 만나는 역대 명필
  • 2282      
   

중국 법첩으로 만나는 역대 명필
서예의 길잡이 중국법첩中國法帖

ㅇ 전시기간 및 장소 : 2014.12.16.~2015.3.15. /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테마전시실
ㅇ 전시작품 : <순화각첩> 등 중국 법첩 30여 점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은 12월 16일(화)부터 테마전 ‘서예의 길잡이 중국 법첩中國法帖’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서예의 발전을 이끈 역대 중국 서예가들의 글씨를 담은 법첩 30여 점을 선보인다.

법첩은 옛 명필들의 글씨를 모사模寫하거나 탑본搨本하여 만든 서첩이다. 모사와 탑본은 전통 복제 방식이다. 법첩은 명필의 글씨를 안전하게 보존하며 감상하기 위해 글씨를 모사하여 부본副本으로 만든 것으로, 보다 편리하게 감상하고 보관할 수 있도록 책 모양으로 만들면서 발전하였다. 법첩을 통해 옛 명필의 글씨를 감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작품이 없어졌을 때는 진품眞品의 글씨를 확인할 수 있어 옛날에 만든 법첩일수록 특히 수장收藏 가치가 높다. 

서예가 법첩으로 제작한 것은 오대십국五代十國(907~960년) 시기 때부터이며, 북송北宋(960~1126년) 태종太宗 순화淳化 3년(992)에 발간된 《순화각첩淳化閣帖》은 법첩 제작의 기준이 되었다. 법첩은 원元(1206~1368년)과 명明(1368~1662년) 때 매우 활발하게 제작되었으며 청淸(1616~1911년)에 이르러도 계속되었다. 서예가들은 법첩으로 과거 명필의 글씨를 연마하는 동시에 법첩을 연구 영역으로 발전시켰으며 이러한 가운데 법첩의 제작도 활기를 띠었다. 청대에 이르면 법첩을 애호하는 분위기는 첩학帖學의 발전과 함께 하며 융성하였다. 이후 서예의 전통을 북위北魏(386~534년) 비석에서 찾아야 한다는 완원阮元(1764~1849년)의 「북비남첩론北碑南帖論」을 바탕으로, 법첩의 글씨는 모각을模刻을 되풀이하여 이미 원형에서 멀어졌다는 비판을 받았고 상대적로 낮게 평가되었다. 반면 고증학과 금석학을 기반으로 고대 중국 비석을 연구하는 비학碑學이 발전하면서 비석을 탑본한 비첩碑帖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런 가운데 근대적 인쇄술의 등장으로 전통적인 등장으로 전통적인 법첩은 더 이상 제작되지 않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법첩과 비첩을 아울러 모두 법첩이라 부르며 특히 서예 학습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된다. 
서예 공부의 기본이 되는 중국 법첩은 한국에도 보급되었다. 한국은 문文을 숭상하고 학문에 대한 존경심이 깊어 중국 서예를 중시하는 한편으로 한국의 역대 명필의 필적을 법첩으로 제작하여 한국 서예를 계승하기도 하였다. 

이번 전시에는 중국 역대 서가들의 필적이 담긴 《순화각첩淳化閣帖》을 비롯하여 왕희지王羲之(303~361년)의 행서行書를 집자集字한 <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敎序>, 구양순歐陽詢(557~641년)의 <황보탄비皇甫誕碑>, 안진경顔眞卿(709~785년)의 <다보탑비多寶塔碑> 등 중요 서예가의 법첩이 소개된다. 선조들이 실제 곁에 두고 감상하고 공부하던 법첩을 통해 서예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순화각첩淳化閣帖

Model letters from Chunhua Pavilion

북송北宋, 992년

28.5×20.0

구5541


《순화각첩淳化閣帖》은 순화 연간에 역대 글씨를 정리한 법첩法帖이다. 서예전집書藝全集의 성격인 집첩集帖으로 송宋 태조太祖 순화淳化 3년(992)에 최초로 만들어 졌다. 송 태종의 재위 초기부터 모은 중요한 황실 수장품을 왕저王著(928~969)를 통해 감정한 진본眞本 중심으로 모각模刻하여 탑본搨本 후 만든 법첩이다. 총 10권으로 구성되었는데 제1권은 역대제왕법첩歷代帝王法帖, 2~4권은 역대명신법첩歷代名臣法帖, 5권은 제가고법첩諸家古法帖, 6~8권 왕희지王羲之, 9~10권은 왕헌지王獻之 법첩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순화각첩은 명明 때의 복각본復刻本 법첩이며, 현재 10권 중에서 여덟 번째 권이 결실되어 총 아홉 권이다. 


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敎序

Stele inscription of the preface to sacred teaching of

Monk Sanzang of the Tang dynasty

당唐, 672년

왕희지王羲之(303~361) 행서行書 집자集字

행서行書

29.7×17.0

신수19836


왕희지 행서를 집자集字한 집자비集字碑이다. 장안(長安, 지금의 서안西安) 흥복사興福寺 승려 회인懷仁이 당 태종太宗의 명으로 왕희지의 행서를 20여 년간 정리하고 집자하여 완성한 것으로 더욱 유명하다. 이 비석은 현장玄奘이 인도에서 돌아온 후 불경의 번역을 끝내자 태종이 하사한 「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敎序」와 태자 이치李治(628~683, 고종高宗)의 「대당삼장성교서기大唐三藏聖敎序記」, 그리고 현장이 번역한 「반야심경般若心經」으로 구성되어 있다. 같은 글자라도 똑같은 글씨를 집자하지 않아 다양한 흘림체의 변화를 볼 수 있다. 대당삼장성교서는 행서의 교과서로여겨지고 있다.


황보탄비皇甫誕碑

Stele inscription for paying a tribute to Huangfu Dan

당唐, 정관貞觀 연간(627~649)

구양순歐陽詢(557~641)

해서楷書

33.5×19.4 

동원3444


구양순은 초당대의 서예가로 자는 신본信本이다. 우세남虞世南(558~638), 저수량褚遂良(596~658)과 함께 당의 서예를 대표하며 오늘날까지 최고의 명필로 추앙받고 있다. 황보탄비는 수隋의 대신으로 정권쟁탈 과정에서 죽은 황보탄皇甫誕을 위해 그의 아들 황보무일皇甫無逸이 당의 재상 우지녕于志寧(588~665)에게 글을, 구양순에게 글씨를 부탁하여 세웠다. 구양순의 글씨는 글자형이 단정하고 짜임새가 긴밀한 결구結構, 엄격한 점획 그리고 날카로운 운필로 서예의 모범이 된다. 




다보탑비多寶塔碑

Stele inscription of Duobao Pagoda

당唐, 752년

안진경顔眞卿(709~785)

해서楷書

34.8×20.5

동원3831


안진경은 당의 충신으로 당 현종玄宗(685~762) 개원開元 연간부터 관료였으며 강직한 성품을 지녔던 것으로 유명하다. 안진경은 평원平原 태수로 부임하기 전인 752년 44세 때 장안長安 천복사千福寺에 건립된 다보탑비多寶塔碑의 글씨를 썼다. 다보탑비는 안진의 초기 비석 글씨로, 단정한 자형에 정밀하고 변화가 큰 필획을 보여주고 있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07 14:28

  

SNS 댓글

최근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