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기슭
웃대 중인(中人)을 아시나요?
서울역사박물관, 7월 26일~9월 18일 「웃대 중인전」 개최
‘서울’만의 특징인 중인의 존재와, 그들이 꽃피웠던 웃대문화 조명 |
서울성을 드러내는 전시를 꾸준히 선보인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네 번째 서울 2000년 역사문화특별전으로「웃대(上村) 중인(中人)전」을 7월 26일(화)부터 9월 18일(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후기 한양의 웃대 중인들이 펼쳤던 시사(詩社)를 비롯한 웃대 문화를 다각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중인들의 시사는 ‘서울’만이 갖고 있던 독특한 문화현상이었으며, 중인의 존재 역시 ‘서울’만의 특징이었다.
전체적인 전시 구성은 먼저, 오늘날 서촌(西村)으로 불려지고 있는 경복궁 서쪽과 인왕산 동쪽 기슭의 웃대지역이 갖고 있는 역사성을 돌아보고, 다음으로 중인문화의 절정이었던 옥계시사(玉溪詩社)를 비롯하여 조선후기 웃대만이 갖고 있었던 특징적인 문화현상들을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웃대 문화를 이끌어간 주인공으로서, 시사문화의 주체이자 서울만의 특징이었던 중인의 존재와 이들이 꿈꿨던 새로운 시대를 조명해 본다.
웃대(上村)란, 인왕산 기슭 일대를 이르는 우리말 |
웃대는 청계천 윗 지역으로 보통 경복궁 서쪽으로부터 인왕산 기슭에 이르는 지역을 말한다. 이곳은 현재 경복궁 서편에 자리하고 있어 서촌이라고 불리는데, 해당 행정동은 많지만 인왕산 지역을 제외하면 실제면적이 여의도 절반을 약간 넘는 정도이다. 예부터 광통교를 기준으로 청계천 하류지역을 ‘아랫대[下村]’로,
중인문화의 절정! 옥계시사(송석원시사) |
중인들의 문화적 역량은 조선 후기 웃대 시사를 통해 밖으로 표출되었다. 시사(詩社)란 시를 짓고 즐기기 위하여 모인 모임으로, 1786년 규장각 서리를 중심으로 결성된 옥계시사(玉溪詩社,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라고도 함)는 중인 시사의 절정을 보여준다. 이후 옥계시사는 30여 년 동안 모임을 이어가면서 중인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이들의 활동상은 《옥계십이승첩(玉溪十二勝帖)》,《옥계청유첩(玉溪淸遊帖)》등의 기록을 통해 상세히 알 수 있다.
중인들은 또한 이름도 벼슬도 없는 자신들과 선대 중인들이 쓴 시(詩)들이 시간이 지나갈수록 잊혀지는 것을 걱정하여 돈을 모아 공동시집을 간행하였다.
첫 공동시집인 소대풍요昭代風謠는 1737년 간행되었다. 이 책의 편찬을 계기로 60년마다 공동시집을 간행하는 관례가 생겨났는데, 이후 『풍요속선風謠續選(1797년)』과 풍요삼선風謠三選(1857년)』으로 이어지면서 중인 문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중인은 조선시대 ‘서울’의 중산층이자 최고의 전문직종 종사자! |
중인은 양반과 평민의 중간에 위치하는 계층이다. 좁게는 역관譯官과 의관醫官, 율관(律官), 음양관(陰陽官), 산관(算官), 화원(畵員) 등 기술직 중인을 말하는데 이들은 오늘날로 보면 의사, 법관, 통역사, 천문학자, 화가 등 최고의 전문직종에 해당된다. 또한 넓게는 기술직 중인 이외에 경아전(京衙前) ․ 서얼(庶孼) 등이 포함한다. 이밖에 조선 후기에는 향촌에 거주하는 교생을 비롯하여 향리를 중인으로 보기도 하였지만 대개는 서울지역에 거주하는 기술관원이 주축을 이루었다. 이들은 인구비중은 높지 않았으나 전문적 지식과 세련된 언행 그리고 교양을 갖추고 있었고 경제적인 부를 갖추었으며, 예술과 문학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이러한 중인들은 조선 후기에 들어와 당대의 문화를 대표하는 주요 계층으로 성장하였다.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했던 중인들의 통청운동(通淸運動) |
중인들은 자신들을 신분적 제도적으로 얽매이는 구체제에 반발하여 신분향상 운동을 전개하였고 결과적으로 근대화 과정에서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통청운동이다. 관직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청직(淸職)에 나아갈 기회를 요구하였던 통청운동은 관상감(觀象監) · 사역원(司譯院) · 전의감(典醫嵌) · 혜민서(惠民署), 도화서(圖畵署) 등 중인들이 종사했던 대표 관청들에서 일어났는데 이들은 모여서 거사를 담당할 총책임자를 뽑고 1,670여명의 중인으로부터 거사자금도 걷었다. 이러한 준비과정을 거쳐 임금에게 글을 올리는 등의 방법으로 자신들의 신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