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메뉴타이틀
  • 국내외미술기사
  • 국내 미술기사
  •  해외 미술기사
  • 이슈
  • 국내외 전시일정
  • 국내 전시일정
  • 해외 전시일정
  • 보도자료
  • 미술학계소식
  • 구인구직 게시판
  • 공지사항
타이틀
  • [간송미술관] 사군자대전
  • 3139      

                                               ○전시제목 : 사군자대전
                                               ○전시기간 : 2011년 05월 15일(일)~29일(일)까지.
                                               ○전시장소 : 간송미술관
                                               ○입장시간대 : 오전10시부터 ~ 오후 18시까지


군자(君子)란 인(仁) 의(義) 예(禮) 지(智) 효(孝) 제(悌) 충(忠) 신(信)의 8덕(德)과 학문을 두루 갖추어 위험과 곤란에 처할수록 절의가 더욱 빛을 발함으로 뭇사람들의 존경을 일신에 모으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식물도 이와 같은 기질을 타고난 것이 있으니, 매화는 눈 속에서 꽃망울을 터뜨리어 방향(芳香)을 찬바람에 실어 보내고 난초는 바위나 돌틈에 뿌리 박고 척박하게 살아가나 사시사철 푸르름을 잃지 않고 곧은 꽃대 위에 수줍은 꽃을 피워 맑고 그윽한 향기로 산과 들을 가득 채운다. 국화는 서리 친 가을에 홀로 피어 오상고절(傲霜孤節)을 자랑하고, 대는 절도 있게 수직으로 자랐으되 속비고 껍질이 단단하여 설한풍(雪寒風)을 이기며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으니 절도와 불굴(不屈), 허심(虛心)의 상징이라 일찍부터 군자의 표상으로 꼽혀왔다.
그래서 유교문화권에서는 일찍부터 문사(文士)들이 매(梅) 란(蘭) 국(菊) 죽(竹)을 사군자(四君子)로 일컬으며 시화(詩畵)의 소재로 삼아 군자기상(君子氣像)을 그에 가탁(假託) 표출해 내고자 했다.
이에 우리나라에서도 문사 배출이 본격화되던 고려시대부터 사군자그림이 문사들 사이에 유행하게 되었다. 김부식(金富軾, 1075-1151)과 정서(鄭敍)가 대나무를 잘 그렸다던가 정지상(鄭知常, ?-1135)이 매화를 잘 그렸다는 등의 사실이 이를 증명해준다.
하물며 주자성리학을 국시(國是)로 천명하여 문사들이 사회주도층으로 부상하는 조선왕조에서야 사군자의 유행이 어떠했었겠는가. 화원(畵員) 선발 시험에서 대(竹) 그림을 1등으로 삼은 것이나 세종대 사대부화가의 대표인 인재(仁齋) 강희안(姜希顔, 1418-1456)이 대그림을 잘 그렸다거나 세종대왕과 성종대왕등이 난을 잘 쳤다는 사실 등으로 이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고려시대는 물론이거니와 조선 전기의 사군자 그림들조차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이 거의 없다. 잦은 전란과 보존의 소홀로 말미암은 현상일 것이다.  이에 간송선생은 일찍이 사군자의 중요성을 절감하시고 사군자 그림을 기회 닿는 대로 수집하셨으니, 우리는 그 동안 이를 바탕으로 1976년 10월의 제11회 ‘사군자전(四君子展)’과 2005년 10월의 제69회 ‘난죽대전(蘭竹大展)’을 개최했었다.
그런데 금년 봄전시회가 마침 제80회 정기 전시회가 되어 어느 분야든지 총 정리하는 성격의 전시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연구진들의 건의가 있어 ‘사군자 대전(四君子大展)’을 개최하기로 하고 본 미술관에 수장된 사군자 중 각 시기를 대표할 만한 작품을 선정해보니 탄은(灘隱) 이정(李霆, 1554-1626)으로부터 단안(斷岸) 옥봉(玉峯, 1913-2010)에 이르는 것들이었다. 임진왜란(1592) 이후의 작품들은 거의 총망라된 셈이다. ‘난죽대전’때 제외됐던 ‘매국’이 추가되었으니 훨씬 풍부한 내용이다. 
그런데 사군자라는 특정 소재를 한 자리에 모아 놓으니 그 그림들이 그려지던 시기의 문화성격이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드러난다. 조선 오백년을 통틀어 묵죽의 최고라는 탄은과 묵매의 최고라는 설곡(雪谷) 어몽룡(魚夢龍, 1566-1617)은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의 조선성리학 이념에 공명한 첫 세대로 사생을 통해 조선고유색을 표출했으므로 그들의 작품에는 초창의 이념미가 강하게 드러난다. 창강(滄江) 조속(趙涑, 1595-1668)과 미수(眉?) 허목(許穆, 1595-1682) 등은 이들보다 한 세대 뒤에 나서 이를 계승하고 있다.
그 다음 진경시대를 대표하는 수운(岫雲) 유덕장(柳德章, 1675-1756)은 탄은의 조선고유색을 계승하며 보다 사생적 회화미를 강조하여 진경풍속화풍과 보조를 맞추는데 묵헌(墨軒) 윤득신(尹得莘, 1669-1752)도 매화로 어깨를 나란히 한다.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1707-1769)과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은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이나 『십죽재화보(十竹齋畵譜)』등 중국화보를 통해 남종화풍을 수용하고 조선화시키는 데 앞장선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시기부터 묵국(墨菊)이 출현한다.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1806)에 이르면 다시 사생적 회화성이 강조되고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1847)는 표암의 조선남종화풍을 계승하며 청(淸)대 사군자화풍을 받아들이기 시작해 추사(秋史) 주도의 청조 문인화풍에 동조한다.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청조 고증학(考證學)을 완벽하게 수용하여 북학(北學)의 문호를 수립하고 서화동원론(書畵同源論)에 입각하여 추사체(秋史體)를 완성해 낸 일세통유(一世通儒)다. 따라서 그의 사란법(寫蘭法)은 예서(隸書) 쓰는 법식의 서예미가 중시되었다. 그의 제자 세대들이 모두 그런 그의 추상적 이념미 구현에 골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추사 이후 그 제자들 사이에서 매화사랑운동이 크게 확산되어 난초와 함께 많이 그려졌던 사실을 우봉(又峯) 조희룡(趙熙龍, 1789-1866)이나 석파(石坡) 이하응(李昰應, 1820-1898)등의 작품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추사 문하의 매화그림은 석련(石蓮) 이공우(李公愚, 1805-1877), 난석(蘭石) 방희용(方羲鏞, 1805-?), 소치(小痴) 허유(許維, 1809-1892) 등으로부터 역매(亦梅) 오경석(吳慶錫, 1831-1879), 균정(筠廷) 오경림(吳慶林, 1835-?) 형제에 까지 이른다. 
운미(芸楣) 민영익(閔泳翊, 1860-1914)은 국망기의 세도재상으로 추사화법을 계승했으나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포화(蒲華, 1830-1911)와 오창석(吳昌碩, 1844-1927) 등의 영향을 받아 추사 난죽법을 국제화시켰다. 이런 다양한 난죽화법의 전통은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일주(一洲) 김진우(金振宇, 1883-1950)를 거쳐 옥봉(玉峯) 조기순(趙基順, 1913-2010)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탄은 이후 각 시기를 대표하는 사군자그림 중 대표작만을 가려 뽑아 전시했으니 이를 통해 그 그림들이 그려지던 시기의 문화성격을 한눈으로 가늠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전통문화를 사랑하는 문화인들의 많은 참관 있으시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2011년 5월 일
한국민족미술연구소장 전영우

편집 스마트K (koreanart21@naver.com)
업데이트 2024.11.13 03:27

  

SNS 댓글

최근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