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에서 미술품이 대거 나왔다. 사회적 이슈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미술품은 비자금 또는 범죄의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윤철규(56) 한국미술정보개발원 대표, 정준모(56)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조은정(51)·최열(57) 미술평론가가 ‘은밀한 돈과 미술품, 그 오해와 진실’을 주제로 최근 긴급토론회를 가졌다. 주요 내용을 지상 중계한다.
# 또 다시 도마 위에 오른 미술품
△윤철규=전 전 대통령 추징금 환수에 나선 검찰이 압수 미술품 목록을 작성하고 있다죠. 국민들은 전 전 대통령 일가가 가지고 있던 고가(?)의 미술품을 압수해서 추징을 할 수 있을까 기대하고 있는데요. 이런 일들이 한두 번이 아니니 미술 작품을 자주 접하고 아끼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조금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정준모=압수 미술품 목록을 보니 별 게 없더라고요. 약 300점을 압수했다고 하지만 작가나 작품 제목을 밝힐 수 없는 장식용, 액자류, 서화, 골동류가 3분의 1 정도 되는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림값이 100억대라며 말들이 많았지만 최대로 계산해도 5억원이 될까 싶어요. 문제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왜 미술이 매번 동네북이 되느냐는 겁니다.
△조은정=전재국씨가 운영하는 시공사는 화집 ‘아르비방’을 내기 이전에 이미 미술사를 전공한 친구를 출판사에 고용하기도 했었어요. 아마도 처음부터 미술출판이나 그림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압수 품목 가운데 미술품이 세간의 관심으로 떠오른 건 ‘행복한 눈물’ 파문에서도 그랬지만 ‘미술품=돈’이라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최열=미술품 압류는 조심해야 될 문제가 많은데 검찰이 특공대처럼 쳐들어가서 안타까웠어요. 미술품을 사들이고 후원하는 것을 비난한다면 미술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전전 대통령 일가의 미술품 수집은 천박하다는 생각입니다. 떳떳하다면 왜 감추는 건가요? 미술품 애호가랄 것도 못 되는 거죠.
# 미술품에 대한 인식전환 해법은 없나
△윤철규=전재국씨는 홍대 앞 미술서점 아티누스를 내기도 하고, 화랑을 열기도 했죠. 검찰은 전씨가 그림 가격을 부풀려서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보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그림 하면 왜 ‘깜짝 놀랄만한 고가’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선입견과 오해는 미술계 내부에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역할을 했다고 봐요. 미술계가 반성해야죠.
△정준모=검찰 수사 얘기만 나오면 으레 ‘미술작품이 비자금 조성용으로 쓰였다’는 게 기정사실화 돼요. 만일 비자금 조성으로 쓰인 것이라면 관련된 화랑 등도 자세히 조사받아야 되는데 사실 그렇지도 않거든요. 검찰은 작품도 보지 않고 박수근 천경자 등의 그림이 나왔다고 발표했잖아요. 국민들이 무조건 비쌀 거라고 믿어버리는 거죠.
△조은정=1970년대 미술품 구입을 위해 계하던 부인들이 있었죠. 작품을 예술이 아니라 투자로 여긴 거죠. 몇 년 전 기획전에서 한 관람객이 “야∼저게 7억이래”하는 거예요. 그림을 보고 ‘느낌’을 얻는 것보다 ‘비싼 작품’을 직접 확인했다는 걸 중요시한 거죠.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는 광고처럼 그림도 ‘얼마짜리’로 받아들이는 게 문제예요.
△최열=미술품이라는 게 일률적으로 값이 오르는 게 아닌데도 너무 물신주의로 접근하는 것 같아요. 오늘날 그림 자체가 존경과 감동을 불러오지 않아요. 미술 공동체가 사회와 국민들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을 만큼, 감동을 줄 수 있을 만큼 장치와 행위들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지난 30년 동안을 작가, 미술사학자, 화상, 큐레이터 등 미술계가 성찰해야 해요.
정리=이광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