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정보개발원 미술품 비자금 관련 긴급 좌담회 미술평론가 정준모 “‘미술=비자금’ 부풀려진 면 많아” 미술사학자 최열 “미술계 내부에도 자성 필요”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로부터 압수한 미술품이 수백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들 하는데 사실 별 것 없다. 줄잡아 최대로 계산해도 5억여 원이 될까 말까다. 그런 걸 ‘컬렉션’이라고 하는 것은 미술에 대한 모독이다.” 정준모 미술평론가(前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사진)가 지난 26일 서울 회현동 한국미술정보개발원 회의실에서 열린 긴급좌담회 ‘은밀한 돈과 미술품, 그 오해와 진실’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정 미술평론가는 “지난 19일 검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압수했다는 미술품 목록을 봤다. 현재 약 3백여 점을 압수했다고 하는데 쓸 만한 것은 1백여 점 정도”라면서 “나머지는 싸구려 액자 수준이다. 특히 서화나 골동품류의 경우 진품보다는 가품인 경우가 많다”면서 실제 미술품의 가치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CJ그룹 이재현 회장이 1400억 원어치의 미술품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미술품을 이용한 비리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앞서 2008년 삼성비자금 특검 때도 비자금으로 고가의 미술품을 구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정 미술평론가는 미술품이 곧 비자금이라는 인식에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씨는 “CJ건만 해도 이재현 회장은 구속됐지만 해당 화랑이 비자금 조성에 협력한 혐의는 발견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의 ‘행복한 눈물’ 사건도 그림과 비자금의 연관성은 밝혀내지 못했으며 오리온 비자금 사건도 미술품이 전면에 등장했지만 수사 결과 부동산거래로 비자금이 조성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정준모 미술평론가는 부동산이나 차명계좌 등 비자금을 조성하는 방법이 다양함에도 유독 미술품이 비리의 온상인 양 보도되는 세태가 안타깝다고 했다. 정씨는 “검찰이 미술품을 찾아내고 압수하는 것이 큰 공을 세우는 것처럼 보이는 면도 있다. 여기에 미술이 희생당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통장 몇 개를 보여주는 것보다는 미술품을 압수하는 모습이 시청자들이 보기에 ‘그럴싸하다’는 현실적인 지적이다.
또 유명 작가의 작품이 무조건 비싸다는 선입견도 사실과는 다르다고 했다. 이번에 전두환 일가가 소장하고 있던 영국 유명 미술가 데미안 허스트의 판화도 그리 비싼 작품이 아님에도 유명 작가라는 이유로 너무 쉽게 ‘고가’라는 이름표를 붙인다는 것. 이번에 발견된 ‘신의 사랑을 위하여’의 경우 다이아몬드가 박힌 원본은 940억 원에 이르는 고가지만, 판화는 에디션(Edition)이 많아 약 1천만 원 안팎으로 가격대가 형성돼 있다. 한편 이날 좌담회에 참석한 미술사학자 최열 씨는 미술계에도 자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최씨는 “미술계 이미지가 실추된 것에 대한 내재적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작가, 미술사학자, 이론가, 화상, 큐레이터 등 미술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했기에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게 됐는지 생각해 봐야한다”고 했다. 이어 최씨는 “지난 30년간 미술계를 살펴보면 그림을 중개하며 재물을 모은 사람은 수없이 많지만 사회에 기여한 사람은 많지 않다”면서 “이중섭의 작품을 공짜나 다름없이 소장한 뒤 되팔아 돈을 챙긴 사람들 중 기부한 사람은 시인 구상과 맥타가트 전 영남대 교수 두 명 뿐이다. 언론이나 검찰 탓만 할 것이 아니라 미술계의 자기반성과 성찰이 필요한 때”라고 덧붙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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