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에서 가장 겁내는 단어는 아마 단절일 것이다. 문화재하면 보호, 보존이란 말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다분히 이런 강박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과하면 병이 되는 법. 여기도 마찬가지다.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생소하지만 흥미로운 전시가 열리고 있다. 중동과 지중해에서 제작된 고대 유리의 역사를 소개하는 전시다. 여기에 나온 레바논과 이란고원 유리들은 특히 눈길을 끈다. 이들은 신기하게도 신라의 유리와 몹시 닮았다. 경주의 서봉총이나 금관총, 황남대총에서 나온 유리잔과 유리완, 유리구슬은 이들과 거의 흡사하다.
신라 유리는 그동안 활발한 국제교역의 산물이라고 해석해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른 견해도 있다. 한 번에 수백 개씩 출토되는 것을 보면 신라 자체 제작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고대 유리제작 기법을 보면 의외로 간단하다. 신라라고 못 만들리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입증은 쉽지 않다. 고려, 조선에서 유리가 제작된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신라 유리는 어쨌든 역사 속에서 단절됐다.
단절에는 늘 아쉬움의 뉘앙스가 뒤따른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신라 이후 고려는 유리 대신 당시 떠오르는 세계적 첨단기술을 택했다. 도자기 제조법이었다. 그래서 분묘 속 최고급 부장품은 고려때 청자로 바뀌었다. 또 조선에서는 청자가 백자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오늘날에도 유행과 취향에 따라 자리바꿈을 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전통’이란 말이 붙으면 달라진다. 이 말은 죽는 자를 죽지 못하게 만드는 연명(延命)치료술 같은 주술을 발휘한다. 지난해 연말 전통 과잉보호에서 비롯된 한 가지 해프닝이 일어났다.
전승공예 경매에 올리려니···
지난해 11월 문화재청과 문화재보호재단이 공동주최한 ‘전승공예전-오래된 미래’전이 인사동 한 전시장에서 열렸다. 연례행사지만 작년은 문화재보호법 제정 50주년을 맞아 조금 특별했다. 그간의 보존성과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생각해본다는 의도가 담겼기 때문이다. 당연히 아이디어가 집중됐고 또 상당한 예산과 정성이 들어갔다.
매년 그렇지만 전승공예전은 전시가 전부가 아니다. 전시 뒤에는 기능보유자 작품을 문화재청이 구입한다. 기능보유자 지원에 겸해 기능전승 차원에서 해당 작품을 구입, 보존하는 것이다. 작년도 그랬다. 그런데 50년 절목(節目)인 만큼 고민 끝에 새 아이디어 하나가 제안됐다. 구입대상작을 경매회사의 경매에 올리자는 것이다.
먼저 출품작은 문화재청 구입가를 최저가로 판매를 보장한다. 그리고 미술애호가들 사이에 경합이 벌어졌을 때에는 올라간 낙찰금액 전부를 기능보유자에게 준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으로서는 일거양득의 묘안이었다. 전승 공예의 소원한 관심에 일반을 포함한 미술애호가들의 시선을 끌어들일 기회였다. 물론 반응이 좋으면 예산 절감도 기대해 볼만했다.
그런데 일자까지 잡아놓고 언론에도 고지된 이 이벤트는 결국 무산됐다. 출품 당사자인 기능보유자들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매회사에 내야 할 수수료를 거부했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나랏돈으로 제값을 쳐주는데 따로 수수료를 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말은 안 했지만 오랫동안 보호 울타리 안에서 잘 지내왔는데 새삼 경쟁무대에 노출되는 일이 마뜩잖았을 것이다. 문화재청의 난감했음은 짐작이 간다. 수십 년 동안 전통 보존에 노심초사해 왔는데 결과는 울타리 안에 과보호 꼴이 된 셈이다.
‘전통’이나 ‘보호’라는 명분이, 효심지극한 아들이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 전신마비 위에 꽂아놓은 과도한 연명장치가 아닌지 이제 진지하게 고려해볼 때가 됐다. 그런 점에서 과보호의 허상과 폐해를 체득한 것만으로도 작년 문화재보호법 시행 50년의 성과는 충분했다고 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