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결정력이 모든 곳에서 힘을 발휘하는 시대이다. 정치 얘기를 해서 뭐하지만 최근 중국지도자 교체에 온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운 것도 결국은 중국의 경제력 때문일 것이다. 문화가 시장의 영향 속으로 들어간 지는 이미 오래다. 시장을 추종만 해서도 곤란하지만 외면해서도 안 되는 그런 시대인 것이다.
그런데 정책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아 헷갈린다. 시장을 외면하는 일이 종종 있다. 미술 쪽은 더 심한데 미술품 거래에 양도소득세를 매기는 일도 그렇다. 이는 시장 원리보다 다분히 감정에 무게가 실린 정책이다. 한 해에 양도소득세 대상이 되는 미술품 거래라고 해봤자 고작 천억 원 내외에 불과하다. 이쯤 되면 병아리 잡는데 소 잡는 칼을 꺼낸 것이나 다름없다.
현대미술이 아닌 한국미술에도 시장과 동떨어진 정책이 많다. 건의와 개선 요구에도 변화는 지지부진하다. 그런데 최근에 현장 내에서 시장을 중시하는 일들이 하나둘 일어나고 있어 새로운 기미로 해석해보게 한다.
지난달 수원 경기도박물관에서 ‘경기스타일-전통목가구 특별전’이 열렸다. 강남스타일이라는 대박 타이틀에 덤으로 얹히려는 전시라고 힐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강남스타일에 기댄 것은 전체의 10%도 안 된다. 그보다는 시장속 시류 변화를 읽고 마련한 시의적절한 기획이다. 지난해부터 한국미술 시장에는 목가구 붐이 일었다. 반닫이에, 농에, 장에. 심플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조선시대 목가구가 현대미술과 잘 조화를 이루는 인테리어로 인기를 끌었다. 시장의 이런 흐름을 놓치지 않고 학술적으로 정리해 보인 것이 바로 이 전시다. 시장 보기를 돌보듯 해온 박물관의 모습치고는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사)답십리고미술회 출발
두 번째는 서울 답십리 일대의 고미술딜러들이 독립을 선언한 일이다. 이들 상인은 대부분 한국고미술협회에 소속돼있다. 말하자면 지부회원이다. 그런데 이들이 사단법인 답십리고미술회를 만들어 시대와 시장을 따라가지 못하는 기존 협회에 등을 돌렸다. 사실 시장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애호가층도 다양해졌고 감상하는 눈도 달라졌다. 하지만 기존 협회는 십몇 년째 동일한 집행부에 요지부동이다. 새로 설립된 사단법인은 고객 중심의 이벤트로 시장에 다가갈 계획이라고 한다. 그리고 유동인구가 많은 인사동에서 대대적인 설립기념전을 열었다. 새 단체가 시장에 얼마나 바람을 불러올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기존 협회가 변화 요구를 외면하는 한 독립운동은 다른 곳에서도 일어날 것이다. 애호가로서는 나쁠 것이 없다. 여럿이 경쟁하면 자연히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획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 결과, 한국미술 시장이 되살아날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세 번째는 미술품 거래를 떳떳하게 공개한 일이다. 한국미술에도 두 얼굴이 있다. 하나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고 다른 하나는 일부 컬렉터들만 즐기는 고가의 미술품이란 것이다. 이 두 얼굴은 세계 어디에나 있다. 성숙한 사회일수록 긍정적인 면을 더 선호할 뿐이다. 지난 10월 서울의 한 경매회사에서 겸재 정선의 『퇴우이선생진적첩(退尤 二先生眞蹟帖)』이 34억 원(수수료 제외)에 낙찰됐다. 그간 시중에는 누가 낙찰받았는지를 놓고 소문이 무성했다. 그런데 삼성문화재단이 지난달 말 자신들이 구입했노라고 정식으로 밝혔다. 구입 사실의 공개는 작은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방향으로 관행이 쌓일 수 있도록 물꼬를 튼 것은 적잖이 큰일이다. 시장 불신은 이런 공개를 통해 저절로 설 자리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내년쯤에는 이런 기미들이 실제적인 변화로 이어질 것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