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철규 代表/ koreanart21.com
윤철규 한국미술산책(18)
맴맴맴-.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댈때면 생각나는 게 있다. 오수(午睡)다. 갓난아이는 포대기 위에서 새록새록 잠이 들겠지만, 나이 좀 든 이들에게는 뒤창을 열어 놓은 대청마루 위에서 대자로 누워 목침을 베고 즐기는 오수야 말로 제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오수는 도시에서는 박물관급이 됐다. 그런데 오수와 짝이 되는 와독(臥讀)은 여전히 가능하다. 뒹굴뒹굴 방 안에 누워 읽는 와독이야말로 한여름에 나름의 진가를 발휘한다.
이 와독에 몇 가지 구비요건이 갖춰지면 금상첨화다. 첫째 바닥은 차가울 것. 그리고 화채 그릇 같은 장식물이 있어도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와독의 본질인데 『생활의 발견』의 저자 린위탕(林語堂)의 고언(高言)에 따르자면 ‘진정한 독서술이란 기분 내키는 대로 손에 잡히는 바로 그 책을 읽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대상은 적독 중에서 하나를 집어내면 된다. 적독(積讀)이란 독서의 대가들이 어느 경지에 이르면 행한다는 수행법 중 하나다. 이 말은 또 이들이 수행하면서 평소에 사놓고 꽂아두기만 한 책을 가리키기도 한다. 오수가 원래 목적이 아닌 이상 뽑아든 책은 약간 가벼울 것이 주의사항이다.
올 여름 권장 도서
한여름 매미 소리와 함께 벗하는 이 와독이 얼마나 근사하고 고상한지를 역설한다 해도 한국미술 쪽을 보면 좀 곤란하다. 누워서 읽을 만한 책을 그다지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와독 지지자로서 답답한 일인데 말을 꺼낸 이상 이번 여름용 와독 리스트를 애써 작성해보고자 한다.
와독이란 말할 것도 없이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의 독서이다. 따라서 입구 쪽에는 그에 걸맞게 쉽고 흥미로워야 한다. 이 방면에는 사람, 인물을 따를만한 주제가 없을 것이다. 컬렉션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또 어떤 유전(流轉) 과정을 겪었는가 하는 것도 적당할 것이다. 우선 간송미술관 설립자에 관한 평전 『간송 전형필』(이충렬)과 국립박물관의 산증인 『혜곡 최순우』(이충렬)의 평전을 꼽을 수 있다. 수집과 관련해서는 『한국미의 탐구자』(한영대)와 『조선의 그림 수집가』(손영옥)를 곁들여 읽으면 풍성해 질 수 있다. 절판됐지만 『한국문화재수난사』(이구열), 『백자에의 향수』(박병래)같은 책도 구할 수만 있다면 좋은 대상이 된다.작품 하나하나를 소개하는 쪽을 보면 단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최순우)가 꼽힌다.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면 빼어난 글 솜씨에 감격해 반드시 몇 번은 벌떡 일어나게 될 것이다.
감동의 근본까지 가보려는 사람이 있다면 『최순우 전집』이 있음을 부기한다. 그 외에 인기 강의를 글로 옮긴 『한국의 美특강』,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모두 오주석)이 있고 『국보순례』(유홍준), 『옛 그림보면 옛 생각난다』(손철주) 등이 있다. 문화재 쪽으로는 『유물의 재발견』(남천우)도 가능하다. 한국 미술에서 서화가로 이름을 남긴 사람은 2,260명 정도이다.(『역대서화가사전』참조). 그런데 화가든 서예가든 일반이 와독할만한 전기, 평전이 쓰여진 것은 드문 편이다. 대개 전문적이다. 『화인 열전』(유홍준) 같은 게 있지만 여기도 읽는 사람의 수준이 따른다.
최근 인왕산 밑 수성동이 진경산수화의 대가 정선의 그림대로 복원됐다는 기사를 읽은 사람이라면 『겸재의 한양 진경』(최완수)은 물론 곁들여 『겸재를 따라가는 금강산 여행』(최완수)도 제격일 것이다. 더 있을 터이지만 언제나 중도작파가 가능하다는 와독의 정신대로 나머지는 독자에 맡긴다. 참고로 지난해출판된 한국미술쪽 저술은 약 40여 종 정도이며 이 중에 와독 대상이 될만한 책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이러고 보면 한국미술의 인기 저하는 비단 일반인의 책임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