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철규 代表/ koreanart21.com
윤철규 한국미술산책(14)
시샘이라. 소심할지라도 군자행(君子行)에 조준을 맞춰 살고자 하는 이에게는 행여 마음에 품어서는 안 될 소인사(小人事)이다. 그런데 멀고 먼 남의 나라 일이 아니라 바로 이웃의 일이어선지 살살 배가 아픈 게 어쩔 도리가 없다.
장따첸(張大千 1899-1983) 이야기다. 중국의 장따첸이 천하의 피카소를 누르고 지난해 전 세계 경매시장에서 낙찰총액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무려 5억 달러어치나 팔렸다는 소식이다. 화가 중의 화가는 으레 피카소인줄 알고 있던 상식으로는 못내 서운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장따첸 역시 전하는 바를 보면 비범하기 짝이 없는 천재다. 그는 구한말의 장승업처럼 한번 보면 못 그리는 그림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남이 가진 명작을 빌려다 공부 겸 베껴 그린 뒤에 주인에게는 자기가 그린 그림을 주고 명작은 그대로 수중에 두고 공부도 하고 감상도 했다는 일화가 있다.
명계에도 작금의 미술시장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면 피카소는 당연히 몹시 서운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늘 천재를 뽐내던 그였던 만큼 어쩌면 자신의 선견지명을 또 자랑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1956년 장은 단신 프랑스로 건너가 칸에 살고 있던 피카소를 찾아갔다. 당시 피카소는 76살이었고 장은 58살이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만나자마자 두 사람은 의기투합했다고 한다.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그림도 서로 한 점씩 주고 받았다. 원래객(遠來客)에 대한 배려였는지 이때 피카소는 장에게 ‘진정한 예술은 동방에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장의 주변에는 똥장시삐라는 말이 따라다니게 됐다. 마치 피카소 인증이나 되는 것처럼 서방에 피카소가 있다면 동에는 장따첸에 있다는 것이다.
다시 바톤 터치건으로 돌아가면, 피카소는 화가 중의 화가라 하지만 한국에서 보자면 생판 ‘남’이나 다름없다. 전쟁 이후 미술이 새로 뿌리를 내릴 때부터 피카소는 이미 손길이 닿지 않는 ‘저 높은 곳’에 있었다. 그래서 장에 앞서 피카소가 15년 동안이나 낙찰총액 1위를 고수했다 해도 해외토픽처럼 그저 그런가 보다 하는 심정이었다.
장따첸 작품 찾아내기
하지만 장의 경우가 되면 느낌이 좀 달라진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는 생전에 한국 땅을 찾아 전시를 하면서 작품이 팔리지 않아 ‘허허’하고 헛웃음을 터트린 적이 있었다. 1978년이 되어 시내 한복판 광화문에 시민회관을 대신해 세종문화회관이 근사하게 오픈했다. 이를 계기로 특별전들이 기획됐는데 당시 타이완에 있던 장따첸을 초대한 성대한 전시(11.15-11.23)도 열렸다. 출품작의 일부는 가져온 것이고 일부는 현장 휘호처럼 서울에 앉아서 그렸다. 이때 서울의 미술 시장은 붐을 맞이하고 있었다. 심하게 말해서 좀 깨진 청자도 손님들이 서로 찾았다고 했다. 6대가 그림은 아침에 구해 놓으면 해거름이 되기 전에 달라는 이가 나타났다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똥장시삐를 알지 못했던 당시 국내의 컬렉터와 딜러는 천하의 장을 외면했다. 전시회를 주최한 신문사(*주)는 난감하게 됐던 것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연줄을 총동원해 난처함을 모면하고 어색한 미소 속에 이 노화백을 전송(餞送)했다고 한다.
장이 피카소와 달리 가깝게 느껴지기는 것은 한국에 온 이 일 때문일 것이다. 또 이때 일로 인해 후회와 시샘이 묘하게 겹쳐지게 됐다. 근래 들어 인사동 딜러들은 장 찾기에 난리법석이란다. 당시의 도록을 복사해 옛 연줄을 거꾸로 탐문하면서 장의 세종문화회관 작품을 찾고 있는 것이다. 빙하 시대처럼 얼어붙은 미술 시장에 이것도 지푸라기처럼 보였을 것이다. 들리는 말로는 찾아낸 작품은 모두 대륙으로 보내진다고 한다.
실제 장의 낙찰총액 5억 달러 대부분은 중국 내에서 이뤄졌다. 인기를 끄는 데에는 몇몇 이유가 있다고 한다. 명목상으로는 먼저, 애국주의교육 덕분에 중화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란다. 그 다음이 많은 돈이 미술품 투자로 몰렸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시샘을 그만두고 우리쪽 사정을 보면 급박한 형국이다. 그렇지만 ‘애국 교육’을 꺼낼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뿐이다. 현재 코리안 디스카운트는 한국 미술에도 고스란히 적용되고 있다. 물량이 적은 대신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결정적 투자 비법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면 이상하달 수밖에 없다. 아니면 여전히 한국은 돈을 돌 보듯 하는 군자의 나라이든가.
※ 3월호에 실린 청자 양각모란연화 학수병(鶴首甁) 높이가 잘못 표기되어 높이 36.7cm로 정정합니다.
* 주 / 동아일보사(편집자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