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철규 代表/ koreanart21.com
윤철규 한국미술산책(11)
새해다. 여기 앉아서는 짐작만 할 뿐인데 동해 바다를 벌겋게 물들이면서 바다 저 끝에서 서서히 둥근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장관일뿐더러 조금쯤 경건해질 것 같다. 이런 마음은 새로 시작되는 시간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약간 격식을 갖춰 맞이하고자 하는 자기식 배려라 할 수 있겠는데 물론 이런 때에는 당연히 다짐도 뒤따른다. 평소의 삼일거사(三日居士)일지라도 새로운 계획을 세워보기 마련이다. 절주에, 독서에, 그리고 말로만 그친 어학 등등. 물론 운동도 성의를 보여 왕(王)자는 아니더라도 허리띠 구멍 하나는 조일 정도의 욕심은 품음직하다.
용의 해에 왕에 대한 기대라. 심상치 않다. 돌아온 정치의 계절에 비전공자의 췌언(贅言)까지 덧붙일 용의는 없지만 저의가 걱정되는 바가 없지는 않다. 지망생, 입후보자의 공약은 지금까지 보아온 바에 따르면 숱하게 대개가 ‘짓겠습니다’, ‘유치하겠습니다’, ‘놓겠습니다’였다. 그마저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었다. 때가 문화의 시대라고 누누이 말 되고 있는 만큼 이번에는 100년짜리 아니 10년, 20년은 내다보는 문화 메니페스토를 부디 한번쯤 들어보고 싶다.
이쯤에서 뼈아픈 사례를 들어야 하는데 용의 해이므로 용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용 이야기라고 해도, 용은 형체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원래는 신령의 정기(精氣)이며 그리고 속설에는 비늘이 있는 것은 교룡(蛟龍)이고 날개가 있는 것은 응룡(應龍)이며 뿔이 있는 것은 규룡(虯龍)이되 뿔이 없는 것은 이룡(螭龍)이며 하늘에 오르지 못한 용은 반룡(蟠龍)이며 물을 좋아하는 것은 청룡(蜻龍)이라 하고 불을 좋아하는 것은 화룡(火龍)이고 소리를 지르기를 좋아하는 것은 명룡(鳴龍)이며 싸움을 즐기는 용은 석룡(蜥龍)인데라는 식의 옛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용의 나라 중국 이야기이다.
경제로 이미 세계 2등의 자리에 오른 중국은 문화에도 무진 애를 쓰는 듯하다. 지금까지를 보면 착착 여간 일사분란하지 않아 모르긴 해도 어느 높은 곳에서 만들어진 일관된 폴리시가 있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이다. 컨퓨시어스 인스티튜트(Confucius Institute). 우리말로 하면 공자학원인데 중국어는 물론 곁들여 중국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지난 2004년 서울에 처음 만들어진 뒤에 지난해 가을까지 전 세계에 332교나 만들었다. 또 몇 년 전에는 ‘TV 공자학원’도 만들어 위성방송으로 세계를 향해 중국 문화를 심고 있다.
본국에서도 한때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1,000개의 미술관/ 박물관을 만들어놓겠다는 야심찬 사업이 진행중이다. 일환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으나 세계 5대 박물관에 새로 이름을 올릴 작정으로 메인홀 천정높이만 25미터나 되는 거대한 국가박물관도 증축 오픈했다. 그리고 해외의 중국 소개전시도 정책적인 듯하다.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황제만의 낙원(The Emperor’s Private Paradise, 2011.2.1-3.1)’이 있었고 파리 루브르에서는 ‘프랑스왕과 중국 황제들(Empereurs de Chine et rois de France, 2011.9.29-1.9)ʼ을 열고 있다. 지역 안배인데 일본도 들어있다. 올해 중일수교 40주년을 기념해 베이징 고궁박물원에 있는 중국 국보(1급유물) 200점을 추려 정초부터 도쿄국립박물관에 보내 전시하고 있다.
일당 지배의 중국처럼 계획적일 수는 없지만 이 편은 말이 좋아 순발력이고 적응력이지 평소에는 손 놓고 지내다 허겁지겁 즉흥이고 임기응변이다. 얘기하면 올해는 일본처럼, 한·중 수교 20주년 되는 해이다. 하지만 주도면밀하게 뭘 준비했다는 얘기는 없고 10월쯤에 저장성(浙江省)박물관 소장품전에 양주팔괴전 정도가 들려올 뿐이다. 스스로를 쉽게 생각해서 그렇지 실상은 시설도 있고 인원도 있고 예산도 그만하면 갖춘 편이다. 없는 것은 넓게 보고 크게 생각하고 길게 행동하는 중후장대형 자세이다. 떠오르는 중국과 세계 속에 이미 개성을 심어놓은 일본 사이에 놓여있는 걸 생각하면 정녕 갈 길이 만만치 않다. 용꿈도 좋겠지만 이무기에서 용이 되는 것처럼 차원이 전혀 다른 등용(登龍)의 큰 비전이 정말 끽긴(喫緊)한 때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