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최근에 ‘천금(天金)’이라는 말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가을 하늘을 천금이라고 부르고, 그래서 중국 그림을 보면 하늘에 금분을 살짝 뿌린 것도 있다고 합니다. 요새 날씨를 보면 진짜 천금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김  약간 미세먼지 있는 거 빼고요(웃음).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미술 행사가 엄청 많네요. 보복나들이라고 해야 하나, 그동안 못 푼 한풀이 하듯 놀러나가는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전시쪽도 그런 거 같은데요. 최  볼 만한 전시가 많습니다. 지방쪽에서 열리는 굵직한 전시들도 많아서 다 적어놓지도 못했어요. 

김  와중에 눈에 띄는 전시들이 있었어요. 서울대박물관에서 근역화휘를 보여주네요.(≪붓을 물들이다 : 근역화휘와 조선의 화가들≫) 고려대학교박물관에서도 술 주제로 고미술 기획전시를 하고 있고, 광주의 국립박물관과 시립미술관에서 이건희컬렉션을 나란히 순회전시 하고 있는데, 서울과 똑같지 않고 약간 개편을 해서 보여주는데, 이상좌 불화첩, 궁중숭불도 등 서울에서 못 본 것들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기 힘든 고미술 전시 풍성

윤  궁중숭불도 같은 것들은 보기 힘든 것이고, 근역화휘도 공개할 때 부지런히 봐둬야 합니다. 부산박물관도 흥미로운 전시가 열리고, 진주박물관에서도 작지만 재미있는 한국화 전시가 있고, 대학박물관들도 기지개를 펴는 모양새입니다. 전시 소식 외에 다른 소식들도 많은 거 같은데요.

최  김태호 작가, 노은님 작가께서 세상을 떠나셨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있었습니다. 

윤  많은 사람들이 놀랐을 것 같아요. 명복을 빕니다...
작가 소식 중에는 긍정적인 것들도 많이 보였는데, 박서보 선생님이 루이비통과 핸드백 제품을 콜라보했다는 소식이 눈에 띄었어요.

최  예뻐서 인기가 많을 것 같습니다. 루이비통 등 럭셔리브랜드가 여러 작가들과 콜라보하는데 이제는 한국 작가들도 하나쯤 끼는 것이 주목이 될 수 있는 문화 파워를 가지게 됐나봅니다, 한국미술로는 좋은 여건이에요.

윤  순수미술이 제품과 콜라보하고 영역을 확대하면 그저 디자인이 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예쁘기도 하고 럭셔리 제품과 작가들의 콜라보는 이제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서 부정적으로 볼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또, 김창열 선생은 아드님이 만든 다큐멘터리(<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로 상영관에 걸리기도 했는데 의외라고 여겨졌어요. 또 하나 화제거리는 모 갤러리가 도널드 저드 작품에 지문을 남겨 손상됐다고 재단에게 고소당했다는 내용이었어요. 

최  알루미늄이라서 산화되거나 하면 지워지지 않는 자국이 남을 수 있습니다. 

윤  작품 핸들링이나 관람객이 조심하도록 관리하는 면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미술이 아무리 작가의 창작, 고유성을 인정받는 영역이라고 하더라도 수용하는 사람들이 준비가 되지 않으면 존재 의미가 없구나, 하는 사건도 있었어요. 최  아, 네 부산에 있던 최정화 작품이 철거된 일 말씀이신가봅니다. 소쿠리 냄비 같은 것으로 만든 구조물이 국립현대 마당에 있을 때 사람들이 막 와서 사진 찍고 좋아했던 걸 본 적이 있거든요. 연장전시도 하고. 똑같은 건데...

김  모양이 똑같지는 않아요. 조금 덜 멋질 수도 있고. 장소도 길거리이고. 

최  그렇기는 한데, 유명 작가 작품이라는 것을 알렸을 텐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흉물로 느꼈다고 하니, 상황이 궁금하긴 합니다. 리처드 세라 조각도 한때는 지나다니는 데 방해된다고 철거 요청을 받은 적도 있고, 포스코 앞 아마벨도 흉물이라고 철거요청을 받는 굴욕을 겪기도 했잖아요.

김  근데 그걸 결국은 설득했죠.

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몇 년 전 서울역 앞 고가에 헌 신발로 만들었던 설치 작품도 수용하는 측에서는 거부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으니까요. 예술작품이라고 해서 권위를 당연히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최  지자체에서 돈을 수억 들여서 설치할 때 생각이 그에까지 미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주민들에게 설득하지 못하고 의견수렴이 덜 된 상태에서 유명한 작가라고 하니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윤  지나다 보면 어떤 거는 억지로 세워놓아 보기 싫은 조각들도 있고 어떤 설치물은 너무 구석에 있어서 끌어내어 좀 멋지게 보여줬으면 하는 것도 있죠. 도시가 멋지게 변하는 것에 대한 생각은 사람들마다 다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들이 모여드는 도시가 되려면

윤  어디서 보니까 요즘 핫한 도시로 베를린, LA, 그리고 서울을 꼽는다고 해요. 베를린은 젊은 작가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한달에 70~80만원 꼴로 지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코비드에서 1만 유로가 그냥 지원되기도 했고요. 외국 작가들이 모여들 수 있는 좋은 환경이 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외국 작가들이 모여드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네요. 

김  터키나 동남아계 등 얼마 안 되지만 그래도 있습니다. 

최  레지던시 명단을 보면 외국 작가들이 들어가 있는 경우들이 있어요. 

김  근데 독일이 구심점 역할을 한 건 꽤 되죠. 시장과 구매력도 있고. 

최  구매력이라고 하시니 이번 가을에 한국이 세계 5위가 되어서 독일보다 앞섰다는 기사도 있긴 했어요. 

윤  레지던시 같은 다양한 예술가 지원 제도가 결국 그 나라의 문화적인 인프라를 수출하는 겁니다. 소프트웨어 수출과 다름없는 거 아닐까 합니다. 

김  그 나라의 브랜드를 만들고, 다음에 그 나라 문화 상품 수출의 기반을 넓히는 거죠.


광주 비엔날레를 기대하는 사람들

최  내년 광주 비엔날레 관련해서 테이트에서 오신 이숙경 감독 인터뷰가 있었는데 주제가 ‘유약어수(柔弱於水).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라고 되어 있네요. 기대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윤   '유약어수'는 말 그대로 하면 물보다 약하다는 뜻인데.... 

김  매번 비슷한 주제들이 미술제에서 반복되는데, 환경, 기후변화, 지속가능, 난민, 마이너리티... 돌림노래 같은 것들은 이제 지겨워요. 아무튼 본진에서 활약하신 분이니 그쪽에서 보았던 분들을 다시 데려오실지, 진짜 새로운 흐름을 가져올지 기대 반 걱정 반입니다.

윤  고미술 전시 쪽에서는 박영택 선생의 신라 도기 컵 전시 재미있었어요. 너무 폭넓은 전시보다는 그렇게 좁고 아기자기하게 뻔하지 않은 주제로 보여주는 기회가 많은 건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최  신라시대에 그렇게 많은 손잡이 컵을 만들었다는 게 신기하고 예쁘기도 했어요. 이번에 책도 내셨다고 하는데 읽어보고 싶습니다. 재미있는 컬렉션이었어요. 

윤  전시는 아니지만 이번에 인사동 아라아트에서 열렸던 팔도명품전은 오랜만에 진행되는 고미술 화랑들의 연합 아트페어 형식이었어서 흥미로웠어요. 지방에서도 많이 올라오셨고. 의미있는 장터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저가의 고미술품들을 일반인들이 접할 수 있었고요. 하지만 디스플레이 전시 방법에 있어서는 조금 더 아이디어를 내야 할 것 같아요.

최  프리즈 서울과 함께한 키아프를 보고 바로 고미술 아트페어를 본다면 같은 협회 차원의 미술장터인데 너무 분위기가 다를 거 같다는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 민예품과 고가의 도자가 섞여서 전시되고... 회화는 좀 약해 보이고요. 

김  고미술쪽은 많이 보여주려고 하지 말고, 시장처럼 하지 말고, 좀 더 세련된 포장법을 연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윤  일단 더 추워지기 전에 전시를 많이 보러 다녀야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