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진녕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을 장식한 작가 마크 브래드포드는 우리에게 낯익다면 낯익은 작가다.
그는 2012년 광주비엔날레에 미국 내 인종차별 주제를 다룬 <레드 라인>이라는 작품으로 참여했다. 그와 친분이 있는 마이클 주 역시 그해 광주 비엔날레에 출품했고 두 작가 모두 정체성이라는 주제를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 LA공항(LAX)을 이용해 본 사람이라면 보안 검색 지역의 천정에 서라운드 TV모니터처럼 걸린 마크 브래드포드의 작품 <벨 타워Bell Tower>를 봤을 것이다.
Mark Bradford, Bell Tower, 2014, Aluminum Structure, Wood/Paper Panels
아니면 2016년 영화 <녹터널 애니멀즈>에서 세속적인 성공이라는 외피 속에 찌들어가는 불안정한 심리를 대변하는 여주인공 수잔(LA의 사설 갤러리 관장)의 침실 벽에 걸린 그림이 바로 마크 브래드포드가 영화를 위해 제작한 작품이다.
에이미 애덤즈 뒤에 걸린 그림이 마크 브래드포드의 작품. 영화 <녹터널 애니멀즈Nocturnal Animals> 중.
이 세가지 사례에서 부분적으로 드러났듯 마크 브래드포드는 미국 LA 출신의 흑인인데다 게이이기도 한 마이너리티이고 미용사 경력을 갖고 서른줄에 미술대학에 진학한 늦깎이 작가지만 북미나 유럽에서 백인 화이트칼라 계층에서는 선호도가 높은 현대미술 작가라는 프로필의 소유자다.
그가 단독으로 꾸민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의 주제는 <투모로우 이즈 어나더 데이Tomorrow is Another Day>.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은 초입에 압도적인 크기의 반원형 구체를 천정에 붙어있는 형태로 설치한 에 눌려 벽에 바짝 붙어서 허리를 굽히고 이 작품을 아주 가까이서 볼 수 밖에 없다. 이 구체에는 브래드포드의 트레이드 마크격인 콜라쥬 기법을 선보이고 있다. 이어 검은 색을 변주하는 사이렌 시리즈와 종이관과 콜타르를 이용한 설치 작품 <메두사>, 원형 돔의 방을 <메두사>에 쓰였던 패턴을 적용해 굴처럼 꾸민 <오러클>, 광고 전단지의 색을 빼서 사용한 컬러풀한 평면 작업 <투모로우 이즈 어나더 데이Tomorrow is Another Day>, 마지막으로 흑인 특유의 걸음으로 걷는 흑인 청소년의 뒷모습을 무한 반복하는 동영상 <나이아가라> 등 마크 브래드포드가 즐겨 사용한 소재와 주제가 모두 펼쳐진다.
Mark Bradford(b.1961) Tomorrow Is Another Day 2016 Mixed media on canvas
그래서 관객은 미국관을 들어서는 순간 LA 빈민가 출신의 마크 브래드포드가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거기에서 출발한 문제의식을 펼쳐놓은 것을 보면서 예리하게 잘라낸 미국 사회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물론 마크 브래드포드를 향한 미국 주류 언론의 찬사는 대다수가 백인인 기존 화이트큐브의 참여자들의 ‘관습’이나 취향도 만족시켰다는 뜻일 것이다. 버락 오바마나 미셸 오바마가 정치에서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