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의 와중에 있는 이탈리아를 구해줄 백기사 중 하나로 카라바지오가 떠오를지 모를 일이 일어났다.
텔레그라프는 로마발 기사를 통해 이탈리아의 미술사학자 두명이 지난 2년간 100점이 넘는 카라바지오의 미공개 회화와 드로잉을 찾아냈다고 주장한 내용을 전했다. 이 기사는만일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새로 발견된 작품가는 모두 7억 유로에 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브레시아 미술관재단의 베르나르델리 쿠루즈(Bernardelli Curuz) 관장과 공동조사자인 콘코티 페드리골리(Concoti Fedrigolli)는 최근 ANSA 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이 지난 2년간 젊은 시절의 카라바지오가 수업하고 일했던 공방의 자료 속에서 그의 미공개작을 다수 찾아내 엄밀한 검증과정을 거쳤다고 밝혔다.
이들이 찾아낸 자료는 당시 밀라노의 유명화가 시모네 페테르자니 공방이 있던 밀라노의 한 성, 카스텔로 스포르체스코(Castello Sforzesco)에 있던 자료로 여기에는 모두 1,378점에 이르는 회화 작품과 드로잉이 남아 있었다. 두사람은 2년 동안 카라바지오 관련 사실을 비밀로 하며 카라바지오의 공개 작품과의 이들의 대조 작업을 벌였는데 그 결과 이들은 카르바지오의 초기 드로잉과 회화로서 그의 유명한 <바울의 회심>이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 등에 보이는 인물 표현과 완전히 유사하다는 점을 밝혀냈다.또 조각에서 보이는 사인 역시 필체감정사의 의견을 통해 유사하다는 의견을 받아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찾아낸 내용을 6일 출판되는 6백 페이지 분량의 2권의 책을 통해 소개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밀라노市의 입장은 다소 냉담한 편이다. 엘레나 코넨나(Elena Conenna) 시문화위원회 대변인은 ‘만일 사실이라면 정말 기쁠 것이다. 그러나 스포르체스코 성은 비밀의 장소가 아니며 누구나 접근이 가능하고 자료 역시 항상 그곳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카라바지오는 르네상르 말기에 바로크 시대를 문을 연 거장이었지만 폭행과 살인 등 스캔들러스한 행동으로도 유명한데 죽은 지 수백년이 지나서도 학계에 여전히 큰 파문을 던진 셈이 됐다.
지난 4월 이탈리아의 한 학자는 그의 죽음에 관련해, 이제까지 시칠리아에서 로마로 오는 도중에 말라리아로 죽었다는 기존 학설을 부정하며 말타 기사단을 공격했던 일 때문에 이들에게 살해돼 로마 북쪽 치비타베치아 근처의 바다에 수장됐다는 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