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함께 예술가의 길을 걸었던 뒤피 형제와 카유보트 형제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가 파리에서 나란히 열리고 있다. 르피가로지는 이 두 전시회가 재능은 공평하게 나누어 가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재확인시켜주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한다.
위대한 예술가의 형제 자매들은 영원히 그 그늘에 묻혀있어야 하는 운명인가, 아니면 그들도 자기만의 명성을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역사적으로 보자면 대개 장남은 아버지의 아틀리에를 물려받았으며 동생들은 형의 곁에서 작품을 제작하거나 공동으로 작품을 하기도 했다. 합리적으로 시장을 분배한 형제들이 있는가 하면 서로 간섭하지 않고 제 길을 찾는 형제들도 있었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화가의 길을 함께 걷는 형제들 사이의 관계가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프란츠 자비에와 헤르만 빈터할터 형제는 서로를 아끼고 존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폴리트와 파울 플랑드랭 형제나 디에고, 알베르토 지아코메티 형제도 뗄레야 뗄 수없는 동지적 사이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반면 뒤상가의 형제들 중에는 가장 파격적인 작품을 제작했던 마르셀이 큰 비중을 차지하였으며 발투스와 피에르 클로소프스키 형제는 서로를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조르조 데 키리코의 동생 알베르토는 키리코 대신 사비니오라는 성을 사용했다.
그렇다면 뒤피 형제와 카유보트 형제는 어땠을까?
오는 6월 26일까지 파리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에서 전시될 예정인 《뒤피가》는 라울 뒤피와 쟝 뒤피 두 형제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고 있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라울 뒤피는 11살이나 차이가 나는 동생 쟝이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자 도약대 역할을 해주었다. 미술학교에서 정식 수업을 받았던 라울은 독학도인 동생에게 그림에 관한 조언 이외에도 몽마르트르의 예술가클럽에 동생을 소개시켜 주거나 자신에게 들어온 주문을 동생이 할 수 있도록 추천하는 등 힘을 보태주었다. 1936년 파리 전력공사가 다음해 열릴 만국박람회를 위해 거대한 벽화를 주문했을 때 라울은 동생 쟝에게 도움을 청했다. 뒤피 전시회를 주관한 샤를 살사씨에 따르면 동생 쟝은 역사적 자료 수집부터 화면 구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작업을 다 해냈다고 한다. 하지만 대단한 찬사를 받은 이 작품 《전기의 요정》을 언급할 때 라울은 한번도 동생의 이름을 거론한 적이 없었고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넨 적도 없었다. 이런 처신 때문에 쟝은 형 라울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이후 라울과 쟝은 공식적으로는 좋은 동지로 처신했으나 실제로는 가족 모임을 제외하고는 두번 다시 얼굴을 맞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그림에는 색상이나 모티브면에서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 많다.
카유보트 형제의 경우는 뒤피 형제와는 상반된 점이 많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1874년과 1878년 사이에 귀스타브와 마르시알 형제는 아버지, 형제인 르네 그리고 어머니를 차례로 잃는다. 이후 두 형제는 동생 마르시알이 결혼하기 전까지 함께 살면서 유산을 비롯, 모든 것을 함께 하였다. 같은 예술가 클럽을 다녔고 요트와 원예, 우표 수집 등 취미생활도 함께 했다. 귀스타브가 그림쪽이었던 반면 마르시알은 사진쪽으로 기울었으나 형의 기발하고 대담한 화면 구성을 추종하는 데에 그쳤다는 것이 피가로지의 평이다. 전시회는 7월 11일까지 자크 앙드레 미술관에서 열린다.